- 5월을 걷는 길, 서산 개심사에서 문수사까지

 

개심사(사진=김관수)
개심사(사진=김관수)

[CEONEWS=김관수 기자] 5월의 곳곳에는 감사함을 전하는 날이 많다. 초록을 입은 땅의 풍경이 헛헛했던 마음을 녹여내고, 그 자리에 감사함을 전할 수 있는 넉넉함을 만들어주어서일까. 그런 때가 오면 보고 싶은 작은 절집이 있다. 서산의 개심사. 마음을 열러 가는 길 그리고 마음을 열고 나오는 길 곳곳에서 계절의 여왕 5월이 펼쳐진다.

개심사(사진=김관수)
개심사(사진=김관수)

4, 대한민국이 지천을 분홍빛으로 물들인 벚꽃과 함께 활짝 피어났다. 충청을 대표하는 사찰 중 하나인 서산 개심사도 상춘객들의 발걸음을 끌어 모으는 벚꽃 명소다. 뒤늦은 꽃망울을 틔워 전국에서 가장 늦게 벚꽃이 피는 지역으로, 5월 중순까지 벚꽃을 볼 수 있는 해도 있다. 진정한 벚꽃 엔딩을 즐길 수 있는, 봄의 기운이 오래도록 머물다가는 공간이다.

 

개심사 행 버스가 서는 신창리 마을 입구에서 절집까지 이어지는 보행로는 깔끔하고 호젓하다. 변함없이 따스한 모습으로 마을을 지키고 있는 시골집들, 길을 포근히 감싸 안으며 늘어선 완만한 언덕의 목장 그리고 풍경의 마지막 조각을 완성하는 신창저수지가 개심사로 접어드는 일주문 앞까지 차근차근 이어진다. ‘마음을 여는 곳이라는 개심의 의미를 오롯이 느껴보려면 그 길 약 3km를 걸어야 한다. 특히 지금 이 계절에는 더욱 더.

신창제(사진=김관수)
신창제(사진=김관수)

신창제는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풍경에 촉촉한 윤기를 더해준다. 하지만 이 무렵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은 신창제 너머 다른 저수지로 침투한다. 본래 이름은 용유지이지만 용이 날아가는 형상이라고 해서 흔히들 용비지(龍飛池)라고 부르는 곳. 농업용 저수지인 용유지는 사계절 몽환적인 아름다움을 연출하며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3대 저수지로 꼽히기도 한다. 특히 벚꽃이 활짝 핀 봄에는 그 모습을 담으려는 진사님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고. 안타깝지만 용유지는 출입이 금지된 출입통제 구역으로 욕심을 내려놓아야 하는 곳이다. 눈앞에 그득하게 펼쳐진 신창제를 따라 개심사로 가는 길도 충분히 아름답다. 신창제 뒤로 우두커니 서 있는 메타세콰이어 나무들. 그쯤에 있을 용유지의 5월을 마음으로 그려보자.

신창제(사진=김관수)
신창제(사진=김관수)

마음 급한 벚나무 몇 그루가 먼저 꽃을 피운 건지’, ‘마음 급히 찾아온 이들을 위로하려고 누군가 몇 그루의 꽃을 먼저 피워 놓은 건지’. 개심사는 그렇게 4월을 시작한다. 성급한 관광객들은 못내 안타깝기만 하다. 왕벚꽃과 청벚꽃 나무가 이곳을 찾게 만든 가장 큰 이유겠지만, 그네들은 아직까지 꽃을 피우지 않고 늑장을 부릴 뿐이다.

개심사 경내로 들어서는 길, 연못과 범종각이 눈길을 잡는다. 직사각형의 작은 연못에 걸쳐진 나무다리 위에서 연인들의 다정한 포즈가 연출되고, 범종각의 나무 기둥들은 제각기 다른 형상을 한 채 오묘한 자태로 그 자리를 지킨다. 꼼꼼히 들여다보면 제 맘대로 곡선을 그리며 휘어진 나무 기둥들을 심검당과 몇몇 공간 속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국내 어느 사찰에서도 볼 수 없는 오직 개심사에만 존재하는 유일한 모습이다. 보통의 나무기둥처럼 나무를 곧게 깎아서 사용하지 않고, 껍질만 벗겨서 본래의 모양을 그대로 사용한 것인데, 백제 의자왕 재위 시기 지어졌으니 그 이유는 무려 천오백 년 가까이 풀지 못한 수수께끼다.

개심사(사진=김관수)
개심사(사진=김관수)

휘어진 나무 기둥에서 느껴지는 익숙하지 않은, 낯선 편안함을 다른 곳에서도 찾을 수 있다. 안양루에 걸린 현판의 뭉퉁뭉퉁한 글씨, 아담한 대웅보전과 그 아담함에 맞춰진 앞마당의 아늑함 그리고 이곳에 사는 이가 써서 걸어놓았을 그대 발길을 돌리는 곳입니다라는 글귀까지. 사찰이라는 느낌보다는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의 기운이 발목을 붙잡는다. 이 집에 살고 있는 모든 나무들이 꽃을 활짝 피우는 그날까지 묵어가고 싶어진다.

목장(사진=김관수)
목장(사진=김관수)

욕심을 조금 더 부려 옆 마을로 넘어가도 좋다. 개심사보다 더 작은 절집 문수사와 명종대왕태실이 자리 잡은 태봉리까지. 두 마을 사이로 5월이 오기만을 기다려온 풍경, 초록 서산 한우목장이 너른 품을 내어준다. 여의도의 4배에 이르는 광대한 면적 위에 펼쳐진 초지는 공식 명칭인 농협경제지주 한우개량사업소가 아닌 서산 한우목장또는 이 목장을 만든 이의 이름을 딴 김종필 목장으로 불린다. 한우 개량을 위한 목장으로 다양한 조건의 우수한 씨수소를 계획적으로 키우고 정액을 국내 대부분의 축사에 공급한다. 국내에서 태어나는 대부분의 소의 아빠들이 이곳에 있는 셈이다.

목장(사진=김관수)
목장(사진=김관수)

뾰족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둥글둥글한 언덕들은 개심사의 원초적 모습 그대로의 나무기둥만큼이나 부드러운 감성을 담고 있다. 햇살이 조금씩 따스해지는 만큼 눈동자의 온도는 높아진다. 길은 또 다른 마을로 이어지고 축사 안에 머무르고 있는 소들이 눈을 마주친다. 커다란 눈망울에 유독 듬직해 보이는 잘생긴 수소들. 곧 연두와 하늘색 두 색만이 존재하는 풍경 속을 거닐며 영화 속 한 장면을 연출할 배우들이다. 개심사에서 마음이 열렸다면 서산 한우목장에서는 두 눈이 열린다. 시원하게 뻥 뚫릴 눈과 마음, 곧 다가올 5월을 어찌 기대하지 않을 수 있을까.

명종대왕태실(사진=김관수)
명종대왕태실(사진=김관수)

목장 삼매경에서 빠져나오면 태봉리를 만난다. 개심사가 있는 신창리에서 약 4~5킬로미터 떨어진 이 마을에 조선의 13대 왕 명종대왕의 태실을 모신 명종대왕태실 및 비와 고려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는 문수사가 있다. 왕의 태실을 모실만큼 기운이 좋은 명당이지만, 서산 한우목장 내부에 들어앉아 있어 사람의 발걸음이 차단 됐던 특수한 지역이다. 보물 제1976호 명종대왕태실과 비는 태봉산 위를 지키고 있는데, 누군가 알려주지 않으면 그냥 지나쳐도 전혀 이상할 것 없어 보인다. 아무도 찾지 않는 하늘 아래 외롭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명종대왕태실과 비는 대체 언제부터 이런 대접을 받았을까. 마을과 어색한 동거를 하고 있는 것 같아 서운해지는 마음을 늠름하고 패기 넘치는 귀부(거북 모양 비석 받침돌)가 달래준다. 태실과 비석, 그 속에 새겨진 작은 조각 하나하나에서 느껴지는 대왕의 품격은 전 세계 어디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클래스를 갖췄다. 사방을 시원하게 조망할 수 있으니 대왕의 태실이 이곳에 자리를 잡은 이유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문수사(사진=김관수)
문수사(사진=김관수)
문수사(사진=김관수)
문수사(사진=김관수)

태실에서 마을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면 문수사다. 길 따라 목장은 계속 이어지고 문수사의 일주문이 가까워지면서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꽃길이 열린다. 겹벚꽃으로 유명한 곳이다. 개심사보다도 작은 사찰 문수사이기에 한눈에 경내가 모두 들어온다. 마당에 우두커니 선 나무 한 그루가 만들어주는 절집의 운치, 키 작은 석탑이 보여주는 소소한 단정함, 석등 안에 누군가 가져다 놓은 소망의 표시들이 문수사가 보여주는 전부인지도 모른다. 안내판에 쓰인 문수사에서 발견된 여러 귀중한 유물보다 눈에 담긴 풍경이 더욱 문수사를 소중하게 만드는 보물이 아닐까. 태봉리가 서산에서 그러하듯, 문수사는 태봉리에서 또 그런 존재인 것 같다.

문득 5월의 감사한 마음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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