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새재, 고갯길에서 만나는 오래된 생명의 기운들

[CEONEWS=김관수 기자]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들다고 했던 고갯길을 지키고 있는 것들은 옛 선비들의 이야기뿐만이 아니다. 사람의 발걸음을 편안하게 맞아주는 황톳길과 그 길의 곁에서 귓가를 적시는 물길이 함께 살고 있다. 깊은 숲 속에서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생명들의 아롱아롱한 숨소리가 가슴 속에 차분히 스며들었다.

3관문(사진=김관수 기자)
3관문 [사진=김관수 기자]

문경새재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조령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문경새재는 한양의 한강과 영남의 낙동강 유역을 이어주던 영남대로에서 가장 높고 험한 고개였다. 영남과 한양을 오갈 수 있는 길은 조령, 죽령 그리고 추풍령까지 세 갈래 길이 있었는데,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가는 선비들은 아무리 먼 길을 돌아가더라도 길이 험하기로 소문난 문경새재를 통했다.

추풍령을 넘으면 추풍낙엽처럼 떨어지고, 죽령을 넘으면 미끄러진다고 하는 금기 때문에 과거급제를 위해 문경새재를 넘었던 것. 문경의 옛 이름인 문희(聞喜)의 의미가 경사스러운 소식을 듣는다라고 하니 이 길을 넘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을 것이다.

이렇듯 많은 선비들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문경새재는 1981년부터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문경조령관문, 문경새재 옛길, 주흘산 조령관문 등의 문화재들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옛길박물관과 드라마 세트장, 생태공원 등이 들어서면서 다양한 테마를 갖춘 관광지로 발전했고, 자연의 신비가 살아 숨 쉬는 현장으로 건강한 기운을 충만하게 안겨준다.

탐방로는 편도 6.5km의 구간에 조성되어 있으며, 1관문에서 제2관문까지 약 3km, 다시 제2관문에서 제3관문까지 약 3.5km에 이르는 길로 완만한 경사의 언덕길로 정돈되어 있다.

황토길(사진=김관수 기자)
황토길 [사진=김관수 기자]

맨발로 느끼는 황톳길

문경새재 입구와 제1관문인 주흘관(主屹關) 사이에서 먼 길을 시작하기 위한 특별한 채비를 한다. 마음 급해 그대로 통과하더라도 큰 문제는 없지만, 옛길박물관에 들러 고갯길의 이야기들을 미리 듣고 간다면 더욱 풍성한 여행이 될 것이다.

백두대간의 산세가 주흘관의 성벽을 포근히 감싼다. 그 모습이 장엄해보이기도 하고 엄마 품처럼 따스해 보이기도 하여 벌써부터 반갑고 감사하다.

주흘관으로 들어서면 잠시 고민에 빠진다. 도란도란 앉아 발을 담그고 앉은 이들이 정겨워 보이는 발 씻는 곳’, 이곳에서부터 황톳길이 종점까지 이어진다.

낙동강발원지(사진=김관수 기자)
낙동강발원지[사진=김관수 기자]

맨발로 걷기가 건강에 좋다는 것은 아이들도 다 아는 사실, 게다가 문경새재를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가장 완벽한 방법이기도 하니 생각지도 못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

과연 길의 끝까지 맨발로 걸어도 괜찮을 만큼 길이 좋을까라는 의심은 어쩌면 당연하다. 대답은 ‘Yes'.

본래의 모습을 지금도 보존하고 있는 옛 과거길로 스스로 우회하지 않는다면 맨발로도 충분하다. 이 길을 맨발로 걷는 건, 문경새재에서 나를 사랑해줄 수 있는 가장 쉬운 최선의 길이다.

시시각각 바뀌는 물소리

황톳길 못지않게 고마운 건, 역시 길의 마지막까지 동행 하는 물소리다. 우거진 숲속을 채워주는 물소리가 이렇게 깔끔하게 들리는 길이 또 있을까 싶으면서, 그 소리가 함께해주니 가는 길이 고되거나 지루하지 않다.

낙동강의 3대 발원지 중 하나로 알려진 문경초점의 물줄기는 산길을 따라 묵묵히 흘러내려 곳곳에서 계곡을 이루고 때로는 작은 못을 만들기도 하며 또 좁은 수로를 따라 흐르면서 끊임없이 길동무가 되어준다. ‘또르르흐르는 물줄기 소리가 조금씩 잦아드는 것 같으면 마치 당연하기라도 한 듯 평화로운 못이 잠깐의 휴식을 부른다.

정자에 앉아 있으면, 생명이 꿈틀대는 소리들을 들을 수 있다. 어느새 콸콸콸물소리가 들리면 가던 길도 포기한 채 발 담그고 놀고 싶은 바위 계곡들이 보인다. 잠시 앉아 땀방울을 식히는 순간, 가슴은 넉넉해진다.

폭포(사진=김관수 기자)
폭포 [사진=김관수 기자]

그뿐만이 아니다. ‘첨벙첨벙물장구치는 소리, ‘우르르쾅쾅내리쏟는 폭포 소리, 못 안에 가득한 올챙이를 바라보며 신기하다고 소리치는 아이들의 환호, 약수의 시원함에 절로 나오는 아저씨의 감탄사, 어느 계곡 앞에 남겨 놓은 한 시인묵객의 감상문까지. 깊은 산 속에 숨겨진 물이 만들어 내는 소리를 하나하나 채집하는 즐거움으로 걸음은 더욱 명랑상쾌해진다.

Info. 낙동강 발원지, 문경초점

조선 초기의 지리서인 세종실록지리지에는 낙동강은 그 근원이 셋인데, 하나는 봉화현 북쪽 태백산 황지에서 나오고, 하나는 문경현 북쪽 초점에서 나오며, 하나는 순흥 소백산에서 나와서 물이 합하여 상주에 이르러 낙동강이 된다라고 기록했다. 문경초점은 문경새재의 옛 지명으로, 3관문 근방에 그 발원지가 있다.

3관문풍경(사진=김관수 기자)
3관문풍경 [사진=김관수 기자]
1관문 주흘관 [사진=김관수 기자]
1관문 주흘관 [사진=김관수 기자]

옛 사람의 흔적들

문경새재에는 수많은 발자국이 새겨져 있다. 과거를 위해 한양을 오가던 선비와 한양과 영남의 문물교류를 책임졌던 상인들, 일본을 왕래하던 조선통신사 일행도 이 길을 넘었다. 사람들의 왕래는 험한 산 속에 많은 시설을 필요로 하게 했고, 그렇게 생겨난 것들이 긴 세월을 지나 지금까지 남아있기도 하다.

문경새재의 세 관문인 주흘관, 조곡관, 조령관은 그중에서도 가장 아픈 사연을 지녔다. 임진왜란이 발발한 뒤 빠르게 북상하던 왜군들은 한양으로 진격하며 이곳 조령에서 부대들이 합류했다. 조선의 신립 장군은 이곳에서 적을 물리쳐줄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충주로 후퇴하여 왜군에게 그만 길을 내어주고 만다.

이후 충주에서 일어난 의병장 신충원이 지금의 제2관문 자리에 성을 쌓고 교통을 차단하며 왜병을 기습하였으며, 군사적 중요성을 뒤늦게 깨달은 조정은 3중의 관문을 설치하게 된다.

각 관문의 사이에는 숙소와 주막, 유적지, 그리고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노래와 이야기들이 남아있다.

숙소로 사용됐던 조령원터, ·취임하는 경상도관찰사가 관인을 주고받은 것으로 전하는 교귀정, 국내 유일의 순수 한글 비석인 <산불됴심비> 등은 옛 이야기들을 궁금하게 한다. ‘산불됴심’, 그 의미는 알면서도 안내문을 읽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왕복 약 5시간, 길속에 세상의 이치가 숨어있는 듯하다.

산뷸됴심비(사진=김관수 기자)
산뷸됴심비 [사진=김관수 기자]

Info. 호머 헐버트와 아리랑 그리고 문경새재" 대체 무슨 관계?

문경새재도립공원 내 옛길박물관 야외전시장의 비석에는 선교사 호머 헐버트의 얼굴과 아리랑의 서양식 악보가 그려져 있다. 우리 문화에도 깊은 관심을 보인 헐버트는 1896<조선유기>란 잡지에 ‘Korean Vocal Music’이란 제목으로 <아리랑>을 해외에 처음 알렸다.

헐버트와아리랑비(사진=김관수 기자)
헐버트와아리랑비[사진=김관수 기자]

헐버트는 이 기사에서 아리랑이 1867년 있었던 경복궁 중수가 끝난 뒤부터 유행했다고 전했는데, 당시 중수에 끌려간 여러 지방의 장정들이 한양을 오가는 길에 넘던 험한 문경새재를 그들이 부르던 노래 가사에 넣어 부르던 것이 유행했고, 헐버트는 그들의 노래를 듣고 그가 만든 아리랑 악보에 가사를 옮겨 넣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악보에 아라릉 아라릉 아라리오 아라릉 얼싸 배 띄워라 문경새재 박달나무 홍두깨 방망이 다 나간다란 가사가 영어식으로 표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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