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영화 『엽기적인 그녀』

 

영화를 말하다

영화 엽기적인 그녀는 곽재용 감독의 연출작으로 2001년 개봉했다. 차태현, 전지현이 주연을 맡았으며 19998월부터 PC통신 나우누리 아이디 견우74’ 본명 김호식씨가 썼던 동명의 소설을 영화화했다. 두 남녀의 엽기발랄한 러브스토리는 대중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으며 우리나라를 넘어 일본, 대만, 홍콩 등에서 개봉했었다. 특히 중화권에서 인기가 많았으며 중국 배우 장백지가 왜 우리는 저런 영화를 만들지 못하냐고?” 불평한 일화도 유명하다. 미국, 인도, 중국 등에서 리메이크되었고 많은 시리즈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동서양을 불문하고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이지만 재미있게도 몽골과 캄보디아에서는 그렇지 못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본다면 차태현, 전지현, 곽재용 모두에게 인생을 바꿀 만큼의 출세작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차태현에게는 각종 시상식에서 신인상을 전지현은 제39회 대종상영화제 여우주연상, 감독 곽재용은 각색상을 받았다.

 

 

리와인드

추억은 컴퓨터 앞에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천리안, 나우누리, 하이텔 등 학창시절 학원을 다녀오면 PC통신에 습관적으로 접속해서 사람들과 소통하며 지냈다. 나우누리를 이용했으며 누나와 전파뚱땡이란 아이디를 공유해서 사용했다. 어떤 아이디로 가입할지 누나와 한참을 상의했고 당시 텔레토비가 큰 인기를 끌고 있었다. 북한말로 텔레토비전파뚱땡이라며 누나가 가입란에 기입했는데 기억에 의하면 4글자까지만 가능했기 때문에 결국 전파뚱땡이 우리의 아이디가 되었다. 나우누리는 당시에 미성년자도 많이 즐겼으며 대학생들이 많아 다른 통신사와 달리 젊은층이 주를 이뤘다. 지금처럼 초, , 고등학생이 욕설을 남발하거나 설쳐대는 경우는 없었다. 서로 예의를 지켰으며 그런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생각해보면 재미있는 일이다. 철없던 시절. 분위기 파악을 잘 했던 것은 아닐까? 한편으로는 교육과 사회적 분위기가 중요하다는 생각.

아이디를 공유하다 보니 누나에게 온 쪽지를 읽는 경우가 많았다. 어느 날 유머란에서 엽기적인 그녀를 읽어보라는 내용의 쪽지를 받았는데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엄청난 글이 유머란을 통해서 쏟아졌는데 읽을거리가 넘쳐났다. 그 시절의 감성이지만 지금 생각하면 너무 착하고 유치한 내용도 많았다. 어느 날 등굣길을 나서는 누나의 발걸음이 무겁게 느껴졌고 이유를 물어보니 밤새 한 남자가 끄적여 놓은 글을 읽었다고 했다. 당시에 대부분 취미나 동갑내기로 이루어진 띠 동호회는 하나쯤 가입했었는데 친구가 알려줬다고 한다. 너도 읽어보라며 권했던 연애담이 엽기적인 그녀였다. 나 역시 빠져들었고 PC통신에 미쳐버린 남매는 전화비 과금이라는 업적을 달성하며 부모님에게 호되게 혼나기도 했다. 기억에 의하면 소설과 영화의 차이점이 분명했는데 캐릭터의 성격 그리고 결론이 많이 달랐던 것으로 기억한다.

기억은 기억이고 찾아보니 소설의 결말은 두 사람이 완전히 헤어지게 된다. 영화의 후반전까지가 소설의 내용이라 생각하면 될 것이다. 영화의 엔딩은 연장전으로 표현되고 그들이 잘 될 것이라는 암시를 남기고 끝난다. 차태현이 연기한 견우는 주책맞고 재미있는 캐릭터이지만 소설 속 주인공과는 차이가 있다. 전지현이 연기한 그녀 또한 엽기적이긴 하나 소설 속 인물은 발랄하진 않다. 각각의 에피소드 또한 차이가 있다. 어쩌면 감독은 당시 특유의 통신체를 최대한 살려 캐릭터에게 활기를 불어넣었던 것은 아닌가 생각해본다.

 

 

스크린 속 현실 속

영화를 선택하고 여행을 계획하는 과정에서 즐거움이 많이 따랐다. 먼저 가고 싶은 곳이 많았고 두 남녀가 대학생으로 설정되어 전국 각지 대학교에서 촬영되었다. 그래서 영화 배경 속 대학교만 찾아다니는 기획도 고려했지만 곧 생각을 바꿨다. 캐릭터가 강해서 인물에 집중되는 영화이지만 아름다웠던 배경 역시 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영화 속 촬영지를 대부분 방문한 상태라 편안한 여행이 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러나 연일 코로나 19 감염자가 속출한 민감한 시기에 여행은 제동이 걸렸고 가까운 곳으로 떠나야 했다. 축적된 여행 경험과 사진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소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영화를 감상한 사람들은 소나무 한그루를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견우와 그녀가 나무 아래 타임캡슐을 묻은 장소다. 탁 트인 전경이 특히 인상적이었는데 당시에는 정선 백운농장으로 찾아가야 했다. 지금은 타임캡슐공원으로 정비되었으며 관람은 무료다. 영화의 영향으로 소나무 아래는 나 또는 우리만의 캡슐을 보관할 수 있으며 타임캡슐은 대여 또는 구매할 수 있다. 여전히 멋진 경관을 자랑하는 곳으로 길도 잘 닦여있기 때문에 방문하기가 수월해졌다.

 

 

영화 내내 엽기적이고 터프한 모습을 드러냈던 전지현이 갸날픈 모습으로 수많은 남성을 설레게 했던 장소로 떠나보자. “견우야 미안해. 나도 어쩔 수 없나 봐라며 흐느꼈던 곳은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에 위치한 오봉산이다. 낙동강 물줄기가 부산으로 흘러나가는 곳으로 빼어난 경치를 자랑한다. 당시와 달리 지금은 데크가 깔려 전망대가 생겼다. 해 질 녘에 가면 감동을 선사할 만큼 아름다우며 등산이 힘든 여행자라면 자동차, 자전거, 오토바이 등을 이용하여 임경대에 방문해서 경치를 감상하는 방법도 있다.

물을 무서워한다. 그런 만큼 얼마나 깊을까? 견우야 들어가봐라며 물속으로 밀어 넣는 영화 속 에피소드는 충격적이었다. 그녀가 견우를 불러낼 때마다 데이트 내용은 기대되고 매번 당하는 차태현의 모습에 관객은 웃음 짓게 되지만 그 순간만큼은 측은했다. 목숨을 좌지우지할 만큼 그녀는 엽기적이다. 깊은 물에서 허우적대다가 의식을 점점 잃어갈 때 그녀가 물에 뛰어드는 장면은 경기도 하남시에 위치한 미사경정공원조정카누경기장에서 촬영되었다. 견우가 물에 빠진 장소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깊고 물은 차다. 운동을 즐기는 시민들과 나들이객으로 활기찬 장소다. 수많은 연인 중 누군가는 그들처럼 데이트를 즐기고 있지 않을까?

그녀에게 깜짝 생일 선물을 선사하기 위해서 계획을 짜고 만반의 준비를 끝내며 불러낸 장소는 놀이공원으로 설정된다. 늦은 밤, 담을 넘어 놀이공원으로 진입하는 그들은 탈영병과 마주한다. 웃음과 감동을 끌어내는 에피소드로 분위기 파악 못 하고 시끌벅적 화려하게 터지는 폭죽이 인상적인 장소는 경기도 과천에 위치한 서울랜드다.

 

 

대학생으로 설정된 주인공들이기 때문에 교정으로 안내하지 않으면 안 될 거 같다. 처음 영화를 감상했을 때는 연세대에서 모두 촬영된 영화라 생각했다. 이름도 알지 못하는 연세대의 유명한 건물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인데 착각이었다. 총 다섯 곳에서 촬영되었는데 경인여대, 아주대, 연세대, 청주대 마지막으로 청주 대성여자상업고등학교에서 촬영되었다고 한다. 견우가 그녀를 위해서 배달원으로 속여 여대로 진입한 장면이 있다. 장미꽃을 건네고 그녀가 캐논 변주곡으로 화답한 장소가 경인여대이지 않을까? 이런 식으로 유추하는 재미도 있었다. 직접적으로 간판을 노출하는 장소들도 있는데 신도림역, 부평역, 밀양역, 베스킨라빈스, 술에 취한 그녀를 업고 들어갔던 억수장이 있다. 억수장의 경우 현재는 폐업 후 다른 건물이 들어섰다. 전국 각지 다양한 곳에서 촬영된 영화 엽기적인 그녀이다.

 

여행의 시간

코로나 19의 영향은 크다. 안정적인 것을 넘어 종식을 앞두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은 큰 착각이었다. 변수는 언제나 존재하기 나름이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클럽 사태 이후 우리나라는 경악을 넘어 냉각되었고 행동에 민감이라는 말을 더하는 시기가 다시 찾아왔다. 싱그러운 봄날의 영화 촬영지를 담고 싶은 욕심은 사그라들었다. 다만 틈틈이 찾아다녔기 때문에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어디론가 오토바이를 타고 출발해야 했다. 장거리는 무리가 따를 거 같았고 사진 자료가 없는 미사경정공원조정카누경기장으로 향했다. 입구로 진입하며 주춤했다. 생각보다 많은 인파가 있었고 입구를 봉쇄하고 지키는 사람들이 부담스러웠다. 고민도 잠시 스로틀 그립을 감는다. 정지를 의미하는 손짓에 따라 안내에 따른다. 체온계가 나의 머리로 향하고 온도를 측정한 후 경기장으로 진입했다. 가족, 연인, 운동을 즐기는 인파로 가득했다. 영화 속 그녀가 나를 물로 밀어 넣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많은 고민을 하고 나왔는데 그들도 그런 것은 아닐까라는 최면을 걸었다. 신속히 촬영만 하고 자리를 떠났다. 정문을 나서면서 허무함이 밀려왔다.

 

 

영화 촬영지 중 타임캡슐공원에 방문했을 때다. 탁 트인 경치와 소나무에 감탄하며 사진 촬영을 마친 후 지도를 보면서 불행은 시작되었다. 수많은 갈래길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공원 뒤로 이리저리 휘저으며 길을 따라가다가 산길로 진입하게 되었다. 비포장로 진흙탕에 오토바이가 빠져 오지도 가지도 못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혼자 낑낑대며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빼내려고 했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앉아 물을 마시며 긴급출동을 불러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트럭 한 대가 눈앞에 나타났다. 마구 손을 흔들며 다가갔다. 신의 존재 여부는 크게 관심이 없는 사람이지만 그 순간 백발노인의 모습은 나에게 신으로 기억된다. 줄을 앞바퀴에 동여매고 트럭과 연결하여 겨우 빼낼 수가 있었다. 그날의 기억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고개를 몇 번이고 숙여야 했다. 괴테는 말했다. “고난이 있을 때마다 그것이 참된 인간이 되어가는 과정임을 기억해야 한다.” 난 이날 고난을 만드는 어리석은 인간이 되지 말자는 생각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사람은 고쳐 쓰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 와닿는다. 지금도 여행 중 비슷한 상황들이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확실한 건 고난도 반복되면 그것을 해결하려는 당사자도 성장한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영화 촬영지를 여행하는 동안 많은 생각과 경험을 한다는 것을 돌아본다. 감사한 일.

 

영화 촬영지를 남긴다.

신도림역, 부평역, 억수장 여관, 경인여자대학교, 롯데월드 수영장, 마포 스포츠시티, 미사리조정경기장, 방배경찰서, 베스킨라빈스, 부산 나팔꽃 레스토랑, 서울랜드, 서울특별시도시철도공사, 소주를 찾는 사람들 대학로점, 압구정점, 소풍 김밥전문점, 시두스 나이트 클럽, 신동양, 신촌 쫄병 부대찌개, 씨네플러스, 씨네플러스 INTO 카페, 아주대학교, 양수리 동남장, 양수리 종합촬영소, 양정모 체육관, 연세대학교, 옥골해장국집, 철도청, 청주 필란 레스토랑, 청주 대성여자상업고등학교, 청주대학교, 카나디안 클럽 대학로점, 호산 산부인과 병원, 밀양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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