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과 집중의 뚝심경영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

변화를 즐기고 과감히 도전하라

지난 9월 5일, 용산에서 창립 74주년을 맞아 기념식을 가진 ‘아모레퍼시픽’.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은 창립기념사를 통해 그 어느 때보다 단호한 표정으로 고객중심 경영과 글로벌 확장 가속화, 지속가능경영 및 행복한 일터 만들기를 언급했다. 이어서 “변화를 즐기고 과감히 도전하자”는 말로 특유의 승부사적 기질을 드러냈다. 세계 속에 아모레퍼시픽 화장품을 각인시킨 서경배 회장은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 이재용 부회장의 바로 뒤를 잇는 주식 부자다. 특유의 리더십을 바탕으로 숱한 위기를 헤치고 대양으로 나아간 아모레퍼시픽의 오늘을 만든 주인공이다. [CEONEWS=장용준 기자]

서경배 회장은 1963년 1월14일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 경영학과와 미국 코넬대학교 경영대학원을 나왔다. 아모레퍼시픽의 서성환 창업주의 차남이었던 그는 34세 되던 해부터 아모레퍼시픽을 이끌어왔다. 이례적으로 빠른 승계과정이었음에도 결과적으로 회사를 키운 결정이었다.

창성상점으로 시작해 태평양...아모레퍼시픽에 이르기까지
 
아모레퍼시픽의 시작은 해방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성환 창업주와 모친 윤독정 여사가 개성에서 동백기름을 재료로 크림을 만들어 팔던 ‘창성상점’이 그 모태가 된다. 그리고 1945년 해방을 맞이한 뒤 서울로 이전해 화장품을 제조해 판매하는 ‘태평양 화학공업사’로 이름을 바꾸고 현대적 화장품을 유통하면서 성세가 이어져 1961년 ‘아모레’라는 토종브랜드를 탄생시킨 것이 지금까지도 태평양화장품을 기억하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당시 태평양의 성공 요인으로는 1964년부터 일본 유명화장품회사인 시세이도와 손을 잡고 선진기술을 도입했다는 것과 함께 방문판매를 시작했다는 점이다. 일정한 장소에 가게를 차리고 판매를 하던 기존 회사들과 달리 방문판매 대리점을 모집하고 야쿠르트아줌마와 함께 쌍벽을 이루는 아모레아줌마를 탄생시킨 것이다. 당시 바깥출입이 어려웠던 여성들에게 직접 가정으로 방문해 화장품을 소개하고 화장법을 알려주며 자연스레 판매로 이어지게 한 방문판매 제도는 획기적인 아이디어였다. 

방문판매 제도는 지금도 ‘아모레 카운슬러’라는 이름으로 이어지고 있다.

또 1973년 기업공개 이후 1974년 장원산업을 설립하고 화장품, 패션 분야 기업들을 인수하면서 몸집을 불려나가며 1991년에 이르러 21개 계열사를 거느린 그룹으로 성장했다. 1993년 주식회사 태평양이라는 상호를 내걸었다.

지금의 태평양이 있기까지 주력 사업은 화장품이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태평양이 그룹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위기감을 느낀 것도 화장품 사업이었다. 1986년 화장품 시장이 개방되어 당시만 해도 브랜드 파워와 상품의 질에서 우위를 자랑하던 수입화장품과 국내 신진 화장품회사들의 거센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태평양의 위기의식은 내부적으로 상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바로 이 위기 상황에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이 등장한다. 

서경배 회장의 등장과 구조조정

서경배 회장은 1987년 태평양화학에 입사해 1990년 기획조정실장으로 재직 중, 당시만 해도 낯설던 구조조정을 시작했다. 그의 구조조정 핵심은 ‘선택과 집중’이었다. 그의 마음속엔 태평양이 영속하기 위해서는 문어발식 사업화장보다는 본업이랄 수 있는 화장품 사업으로 돌아가야만 한다는 선견지명이 자리 잡고 있었다. 부친인 창업주 서성환 회장을 설득한 끝에 태평양은 금융, 투자관련 기업은 선경그룹에, 당시 운영하던 태평양 돌핀스 야구단은 현대그룹으로 넘겼다. 태평양증권, 태평양패션, 태평양여자농구단, 한국태양잉크, 동방상호신용금고, 동방기획 등 화장품 사업과 관련이 없는 계열사들을 매각하고 태평양시스템, 태평양정보통신 등을 청산했다.

태평양화학은 1993년 태평양으로 이름을 바꾸고 2005년 지주회사로 전환했다. 2006년 태평양에서 식품, 화장품, 생활용품 부문을 분할해 아모레퍼시픽이 탄생했다. 태평양은 2013년 아모레퍼시픽그룹(아모레퍼시픽G)로 이름을 바꿨다. 그의 선택은 결국 IMF 외환위기를 헤쳐 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서경배 회장은 창업주의 ‘차남’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는다. 하지만 이는 삼성그룹의 이병철 창업주가 3남인 이건희 회장에게 경영권을 승계한 사례와는 다르다. 태평양은 창업주가 장남 서영배 회장과 차남 서경배 회장에게 경영권을 승계하면서 계열분리를 하고 오히려 장남에게 더 많은 주식을 승계했다. 오히려 서경배 회장이 자신의 경영능력으로 차후에 더 큰 성공을 이룬 것이다. 

‘태평양’이라는 사명은 2002년까지 사용되었다. 지금의 ‘아모레퍼시픽’은 태평양화학의 독립 브랜드 ‘아모레’와 태평양의 영어명 ‘퍼시픽’이 합쳐진 사명으로 2006년 6월 1일 새롭게 탄생했다. 주력인 화장품 사업과 식품, 생활용품 부문을 담당하는 자회사로 탄생한 아모레퍼시픽이 큰 성공을 거두면서 자연스레 지주회사인 ‘태평양’이라는 이름도 ‘아모레퍼시픽그룹(아모레G)’으로 변경됐다.

1997년 34세라는 젊은 나이로 태평양의 대표이사가 된 서경배 회장은 아모레퍼시픽의 오늘을 만든 선택과 집중의 뚝심경영이라는 찬사를 받게 됐다. 현재 아모레퍼시픽 전체 매출의 약 97%가 화장품 부문에서 발생하고 있으며, 2018년 매출액은 6조 291억 원, 영업이익은 7,315억 원이며 여기에서 높은 비중을 아모레퍼시픽, 이니스프리 등의 화장품 브랜드들이 차지하고 있다. 

R&D와 글로벌 사업으로 일군 성공

아모레퍼시픽은 이른 구조조정으로 탄력을 받고, IMF 외환위기를 넘기면서 2000년대 이르러 명실공히 국내 최고의 화장품 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무엇보다 계열사 정리를 통해 자산을 늘리고 R&D와 글로벌 사업으로 재투자하는 혜안을 발휘했다. 제품 연구개발과 브랜드 마케팅의 성과로 ‘설화수’ ‘아이오페 레티놀 2500’등의 히트상품을 개발하고 높은 매출을 올렸다. 이를 바탕으로 해외 사업에 눈을 돌려 2013년부터는 연 평균 49% 성장률을 기록하며 기반을 마련했다.

또 다른 선택, 동남아시아 진출

서 회장은 최근 사드 문제로 인해 아모레퍼시픽그룹 해외매출의 80%를 차지하던 중국사업의 성장세가 주춤해지자 동남아시아 진출로 눈을 돌리고 있다. 

사드 문제가 해결되더라도 중국 시장이 예전 같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에 치우친 매출을 다각화하기 위해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에 아모레퍼시픽 화장품 브랜드 매장을 늘려가는 선택을 한 것이다.

아모레퍼시픽은 2018년 8월 베트남 현지법인 설립, 2019년 1월 필리핀 수도에 라네즈 매장 1호점 개설, 필리핀 온라인 쇼핑몰 입점 등 발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서 회장은 아시안 고객과 시장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유수의 해외 연구기관과 공동연구를 추진하고 현지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생산설비 구축을 준비하는 등 다각도의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5월 동남아시아 이커머스 시장을 선도하는 라자다(LAZADA)그룹과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한 것은 디지털 사업 영역을 강화하고 현지 고객들의 경험을 강화하기 위한 포석이다.

중국도 포기할 순 없다...출점 강화

그렇다고 서 회장이 중국 시장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그는 중국 시장 실적을 회복하기 위해 아모레퍼시픽 화장품 브랜드 매장을 중소도시까지 확대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의 중국 내 매장 수는 지난 9월 기준 ‘설화수’ 브랜드 194곳, ‘이니스프리’ 브랜드 65곳으로 지난해에 비해 23곳, 99곳 각각 늘었다.

중국 시장에서도 역시 디지털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는데 최근 ‘프리메라’ 브랜드를 티몰에 단독 출시했다.
 
서 회장은 평소에도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에서 화장 인구의 증가속도도 눈부시다고 표현하곤 했다. 그런 시장을 놓칠 리가 없다는 것이 업계의 평이다. 

과거의 숙원을 푼 유럽과 북미 시장 진출

서 회장은 유럽을 비롯한 북미, 오스트레일리아 등에도 아모레퍼시픽의 깃발을 꽂고자 한다.
아모레퍼시픽은  4월 유럽에서 화장품 편집숍인 ‘세포라’와 손잡고 18개 국가에 라네즈 제품을 입점하기로 했다.

서 회장이 기획조정실에 근무하던 1988년 당시 태평양은 종합병원 피부과 전문의들과 공동개발한 화장품 브랜드 '순'을 들고 프랑스 진출을 시도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또, 1990년 ‘리리코스’도 현지인들의 관심을 끄지 못하고 결국 1995년 프랑스 철수를 선언했다. 당시의 실패가 서 회장에겐 오랜 숙제로 남아 있었다.

서 회장은 결국 지난 2017년 9월 프랑스에서 가장 큰 백화점체인인 갤러리라파예트에 설화수 단독매장을 열고 갤러리라파예트의 온라인몰에도 입점시키면서 숙원을 풀 수 있었다. 2018년 3월에는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두바이에 에뛰드하우스 1호점을 열었다.

서 회장은 “미국을 한국과 중국, 아세안시장에 이어 아모레퍼시픽그룹의 4번째 기둥으로 만들 것”이라는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미국 시장 진입이 어려움을 이야기하면서 나온 말이기돈 한데, 아모레퍼시픽은 2018년 3월5일 대표 브랜드 ‘마몽드’를 미국 화장품 전문점 ‘얼타’의 200여 개 매장에 입점했다. 미국진출에 앞서 현지 소비자 분석과 사전 상품 테스트를 통해 스킨케어제품 21개와 색조제품 6개를 비롯해 모두 27개 품목을 선정했다.

2018년 이후 찾아온 위기

아모레퍼시픽그룹은 지난 2018년부터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18년 연결기준으로 매출 6조782억 원, 영업이익 5495억 원을 냈다. 2017년보다 매출은 1% 상승한 반면 영업이익이 25%나 급감했다.

주요 뷰티 계열사인 아모레퍼시픽은 2018년 매출 5조2778억 원, 영업이익 4820억 원을 냈다. 2017년보다 매출은 3%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19% 줄었다.

이니스프리와 아모스프로페셔널, 에스트라는 2018년에 영업이익 804억 원, 171억 원, 9억 원을 냈다. 전년보다 이니스프리 영업이익은 25%, 아모스프로페셔널 영업이익은 2%, 에스트라 영업이익은 73% 줄었다.

2017년까지 승승장구하던 아모레퍼시픽에 닥친 위기는 성장 정체기로 보는 전문가들이 많다. 업계 관계자는 “지금까지 중국 사업이 성장하며 폭발적으로 성장한 아모레퍼시픽은 현재 성장 정체기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중국인 관광객 유입 감소가 내수에 큰 영향을 주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는데, 작년 국내 사업은 국내 면세 채널 및 주요 관광 상권 내의 영업 부진으로 매출이 역신장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서 회장과 아모레퍼시픽그룹 역시 위기의식을 가지고 있다. 실적 개선을 위해 해외시장 진출을 다변화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지금까지 태평양 성공신화를 이끌어 온 서 회장이 위기를 헤쳐 나가기 위해 또 어떤 선택과 집중을 할까? 이런 시점에서 “변화를 즐기고 과감히 도전하라”는 서 회장의 74주년 창립기념사는 뜻하는 바가 많다. 그의 선택과 집중은 단순히 아모레퍼시픽의 성세가 아니라 K-뷰티 시장의 미래가 함께 달린 것이기에 더욱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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