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스스로 만든 이미지, 언론 스스로 외면한 본질

이재현 DJ파티 후속 보도가 없는 이유는 언론 스스로에게 자문해 봐야한다.
이재현 DJ파티 후속 보도가 없는 이유는 언론 스스로에게 자문해 봐야한다.

[CEONEWS=배준철 기자] 한바탕 '클럽'을 뒤집어 놓았던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DJ 파티' 보도가 홀연히 사라졌다. 초기 '충격', '파격'이라며 호들갑을 떨던 언론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침묵에 들어갔다. 이 기묘한 '보도 증발' 현상을 두고 해석은 분분하다. CJ그룹의 막강한 영향력을 동원한 '언론 플레이'가 성공했다는 음모론부터, 애초에 법적 하자가 없는 '사생활' 영역이라 후속 보도의 가치가 없었다는 현실론까지 다양하다. 하지만 오늘 '픽뉴스'는 타 언론이 외면하는, 그 침묵의 본질을 다른 시각에서 들여다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번 사태는 CJ의 '압력'이 성공했다기보다, 언론 스스로 '물러설 명분'을 찾은 결과에 가깝다.

■'광고주' CJ의 보이지 않는 손

가장 손쉬운 분석이다. CJ그룹은 대한민국 미디어 시장의 '큰손'이다. CJ ENM, Tving, CGV 등 콘텐츠 공룡부터 CJ제일제당이라는 막강한 '광고주'까지, CJ의 영향력은 방송, 신문, 온라인을 가리지 않는다. 한 재계 관계자는 "초기 보도 이후 CJ 홍보 라인이 총동원돼 '그룹 총수의 사생활' 영역임을 강조하며 보도 자제를 요청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사실상의 압박이다. 실제로 미디어 입장에서 '총수가 DJ를 했다'는 가십성 기사 한 줄을 더 쓰는 이익보다, 거대 광고주와의 관계 악화라는 손실이 훨씬 크다. '총수의 일탈'이라는 자극적인 헤드라인은 초기 클릭 장사로 소임을 다했고, 굳이 '광고주'를 자극하며 후속 탐사까지 이어갈 동력이 부족했다는 분석이다.

한 중견 일간지 데스크는 "CJ가 직접 압력을 넣지 않아도, 연간 수십억 원의 광고비를 집행하는 거래처와의 관계를 생각하면 편집국 스스로 자제하게 된다"고 솔직히 털어놨다. 이는 한국 언론과 대기업의 '불편한 공생' 관계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다.

CJ는 영리했다. 조악한 '보도 금지' 압력을 행사하지 않았다. 그저 "관계를 생각해 달라"는 우회적 메시지만 전달했고, 언론은 알아서 물러났다. 광고비는 명시적 압력이 아니라 '관계'라는 이름으로 작동했다.

■'법'의 잣대로는 문제없다는 명분

두 번째 시각은 '법적 위반'이 없다는 점이다. 이 회장의 파티가 마약, 횡령, 배임 등 과거 재벌 총수들의 '범죄'와 연결됐는가? 아니다. 업무 시간을 유용한 것도, 회사 자금을 동원한 것도 (아직까지는) 아니다. 한 사회부 기자는 "이걸 파고들려면 횡령이나 마약 같은 '범죄' 혐의점이 나와야 하는데, 단순 취미 생활이나 사교 활동을 두고 '부적절하다'는 도덕적 비판 기사를 연속으로 쓰는 것은 한계가 명확하다"고 말했다. 언론 역시 '사생활 침해'라는 역풍을 맞을 수 있다. 법적 하자가 없는 사안에 대해 '국민 정서'만을 이유로 비판을 이어가는 것은 언론에도 부담이다. CJ가 "법적으로 문제 될 것 없다"는 방어막을 치는 순간, 미디어는 더 이상 공격할 무기를 잃게 된다.

실제로 CJ그룹 홍보팀이 언론사들에 배포한 '비공식 입장문'의 핵심은 간단했다. "총수의 사적 여가 활동에 불과하며, 회사 업무나 자금과 무관하다." 취재 결과, 이 회장의 DJ 활동은 주말이나 휴가 기간에 이뤄졌고, 그룹 자금이 직접 사용됐다는 증거는 없었다.

한 법조인은 "회사 자금 유용, 업무 시간 중 이탈, 마약 등 불법 행위가 확인되지 않는 이상 법적으로 건드릴 수 없다"고 설명했다. 결국 언론은 '법'이라는 명분 앞에서 스스로 물러섰다. 하지만 과거 다른 재벌 총수들의 '사생활'은 이토록 관대하게 다뤄졌던가?

■침묵의 본질, '이미지 공범' 관계

이재현 DJ파티 후속 보도가 없는 이유는 언론 스스로에게 자문해 봐야한다.
이재현 DJ파티 후속 보도가 없는 이유는 언론 스스로에게 자문해 봐야한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아는 이야기다. '배준철의 픽뉴스'가 주목하는 지점은 따로 있다. 언론의 침묵은 CJ의 압력이나 법적 명분 때문이 아니라,  언론 스스로가 CJ의 '이미지 메이킹'에 동조해 온 '공범'이었기 때문이다. 언론은 그동안 이재현 회장을 '병약한 총수' 혹은 'K-컬처 전도사'라는 극단적인 이미지로 소비해왔다. CJ그룹이 원하는 '문화 대통령' 이미지를 비판 없이 받아쓰며 CJ의 '소프트 파워'를 찬양하는 기사를 쏟아냈다.

지난 5년간 주요 언론의 이재현 회장 관련 기사를 분석하면, "K-컬처 전도사", "문화 대통령", "콘텐츠 제국의 설계자" 같은 찬사가 넘쳐난다. CJ그룹 홍보실이 배포한 보도자료를 거의 그대로 받아쓴 기사가 수두룩하다. 'DJ 이재현'이라는 소재 역시, 만약 CJ그룹의 경영 성과가 좋았다면 '역시 문화 대통령', '파격의 리더십'이라며 긍정적으로 포장됐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2019년 이 회장이 전자음악 페스티벌에 참석했을 때는 "문화를 즐길 줄 아는 총수"라는 호평이 쏟아졌다.

■타이밍이 문제였다 vs 서사가 무너졌다

문제는 타이밍이었다. CJ ENM의 실적 부진, Tving의 막대한 적자, CJ올리브영의 과징금 이슈 등 그룹 내외부의 위기 상황에서 '파티하는 총수'의 이미지는 그들이 만든 '문화 대통령' 서사와 정면으로 충돌했다. Tving은 출범 3년 만에 누적 적자 4000억 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CJ ENM의 영업이익률은 5% 미만으로 추락했다. 올리브영은 뷰티 시장 점유율 50%를 넘기며 공정위로부터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문화 제국'은 돈을 벌지 못하고 있고, 독과점 논란에 시달리고 있다.

언론은 당황했다. 자신들이 일조해 만든 '파격의 총수' 이미지가 '철없는 총수' 이미지로 반전되는 순간, 언론은 스스로의 논리에 갇혔다. 'DJ 파티'를 비판하는 것은, 그동안 자신들이 CJ의 홍보 논리를 답습해 온 과거 보도를 부정하는 셈이 된다. 결국 언론의 침묵은 '보도 자제' 요청에 굴복한 것이 아니라, 더 큰 비판을 피하기 위한 '전략적 후퇴'다.

■가짜 문제로 진짜 문제를 덮다

더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다. CJ그룹의 진짜 문제, 즉 위기 상황에서의 리더십 부재, 올리브영의 독과점 논란, 그룹의 미래 성장 동력 같은 '진짜 뉴스'에 대해서는 그동안 침묵해왔던 언론이, 고작 'DJ 파티'라는 가십성 '일탈'을 물고 늘어지는 것 자체가 모순이기 때문이다.

본지가 확인한 CJ그룹의 '진짜 문제'는 명확하다. 첫째, 리더십 공백이다. 이재현 회장은 건강 문제로 일상 업무에서 손을 뗀 지 오래다. 하지만 후계 구도는 불명확하고, 전문 경영인 체제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DJ 파티'가 아니라 '누가 CJ를 이끄는가'가 진짜 질문이다. 둘째, 사업 부실이다. Tving은 OTT 경쟁에서 뒤처지고 있고, CJ ENM은 콘텐츠 투자 대비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다. '문화 제국'의 실상은 적자 누적이다. 셋째, 독과점 논란이다. 올리브영의 뷰티 시장 지배력, CGV의 극장 과점은 공정경쟁을 저해한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이런 '무거운 의제'는 취재에 시간과 자원이 든다. 광고주와의 정면 충돌도 불가피하다. 반면 'DJ 파티'는 가볍고, 클릭도 잘 나오고, 깊이 파지 않아도 된다. 언론은 'DJ 파티'라는 가벼운 소재에서 손을 떼는 대신, CJ의 경영 본질이라는 무거운 주제에 대해서도 계속 침묵하는 '편안한 길'을 택했다.

■침묵의 진짜 이름은 '자기 검열'

이재현 DJ파티 후속 보도가 없는 이유는 언론 스스로에게 자문해 봐야한다.
이재현 DJ파티 후속 보도가 없는 이유는 언론 스스로에게 자문해 봐야한다.

 

이재현 회장의 DJ 파티 후속 기사가 없는 이유, 그것은 CJ가 두려워서도, 법적으로 문제가 없어서도 아니다. 진짜 문제를 다루지 않았던 언론이, 가짜 문제(가십)마저 다룰 명분을 잃었기 때문이다.

한 원로 언론인은 한탄했다. "과거 같으면 이런 사안은 기획 취재팀이 달라붙어서 3개월은 팠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언론은 '싸우지 않는 법'을 너무 잘 안다. 광고주와 싸우지 않고, 법적 리스크와 싸우지 않고, 자기 모순과도 싸우지 않는다. 그게 바로 자기 검열이다."

CJ그룹은 영리했다. 오랜 시간 언론과 '관계'를 쌓고, '이미지'를 함께 만들고, 적절한 순간에 '법적 명분'을 제시했다. 그러자 언론은 알아서 물러났다. 이것이 2025년 한국 언론과 재벌의 공생 구조다. 독자들에게 묻는다. 지난 한 달간 CJ그룹에 대한 어떤 기사를 읽었는가? 'DJ 파티'라는 가십 외에, CJ의 리더십 공백, Tving의 적자 책임, 올리브영의 독과점 문제를 다룬 심층 기사를 본 적 있는가? 아마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기사는 쓰이지 않았으니까. 언론이 'DJ 파티'를 떠들다 침묵한 진짜 이유는 간단하다. 처음부터 진짜 문제를 다룰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배준철의 픽뉴스'는 계속해서 다른 언론이 외면하는 진실을 파헤칠 것이다. 그것이 언론의 책무이기 때문이다.

CEONEWS는 국제 의료 NGO ‘한국머시쉽‘의 활동을 응원합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CEO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