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30년 전쟁, 2025 HBM 패권의 주인은?

곽노정 SK하이닉스 사장과 전영현 삼성전자 부회장이 HBM 시장을 두고 양보할 수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HBM 4를 누가 선점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곽노정 SK하이닉스 사장과 전영현 삼성전자 부회장이 HBM 시장을 두고 양보할 수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HBM 4를 누가 선점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CEONEWS=이재훈 대표기자] "과거의 영광은 잊어라. 지금은 생존의 시간이다."

2025년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은 전례 없는 지각변동의 중심에 섰다. 만년 2위로 여겨지던 SK하이닉스가 AI 반도체인 HBM(고대역폭메모리) 시장을 선점하며 시가총액과 영업이익에서 삼성전자를 위협하는 '이변'이 일상이 된 시대. 삼성전자는 '반도체 신화'의 주역인 전영현 부회장을 구원투수로 등판시켰고, SK하이닉스는 곽노정 사장 체제 하에 '기술 독주'를 굳히고 있다. 본지는 대한민국 경제의 심장인 반도체 패권을 놓고 벌어지는 두 수장의 리더십과 경영 DNA를 심층 분석한다. '초격차 회복'을 노리는 삼성 전영현의 '원칙주의 DNA'와 '1등 굳히기'에 나선 SK 곽노정의 '소통형 승부사 DNA'의 정면충돌이다.

■뒤집힌 운동장, 그리고 HBM4

오랫동안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공식은 '삼성의 압도적 1위, SK의 추격'이었다. 하지만 AI 시대가 도래하며 이 공식은 파기됐다. 엔비디아라는 거대 고객사가 요구하는 맞춤형 HBM 시장에서 SK하이닉스는 기민하게 대응하며 시장의 표준이 되었고, 삼성은 타이밍을 놓쳤다. 2025년 1분기, SK하이닉스는 33년 만에 D램 시장 점유율 1위를 달성했다. 시가총액은 200조 원을 돌파했고, 반도체 비수기임에도 영업이익 7조4000억 원을 기록하며 삼성전자 전사 영업이익을 능가했다. 이제 전장은 6세대 HBM인 'HBM4'로 옮겨갔다. 삼성이 기술적 자존심을 회복하느냐, 아니면 SK가 메모리 시장의 새로운 패왕으로 등극하느냐가 결정되는 '골든타임'이다.

■삼성전자 전영현 부회장, "기본으로 돌아가라"  '기술 원리주의 DNA'

전영현 삼성전자 DS부문장 부회장
전영현 삼성전자 DS부문장 부회장

 

삼성전자 DS부문장 겸 대표이사 전영현 부회장의 별명은 '전설'이다. 과거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장으로 재직하며 D램 신화를 썼던 그가 2024년 5월 삼성SDI에서 7년 만에 친정으로 복귀했을 때, 시장은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보냈다. 그리고 그가 보여준 첫 번째 행보는 놀랍게도 '반성문'이었다.

▲리더십 키워드=직설화법, 현장중시, 근본주의

전 부회장은 기술 전문가 출신답게 실용성을 중시하고 꼼꼼한 성격으로 알려졌다. 보고서 제출 시 형식보다 요점을 분명히 드러내야 한다고 강조하며, 데이터나 숫자가 틀린 보고에는 특히 엄격한 모습을 보인다. 그의 DNA는 화려한 수사보다 투박한 '기술적 진실'을 추구한다. 전 부회장은 회사 경쟁력 약화의 원인으로 부서간 소통의 벽, 문제를 숨기거나 회피하는 문화, 희망치만 반영된 비현실적 계획을 꼽으며 "직급과 직책에 관계없이 안 되는 것은 안 된다고 인정하고, 투명하게 소통하는 반도체 고유의 치열한 토론문화를 재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무적 성과를 위해 기술적 완성도를 타협했던 과거의 관행을 끊어내고, 엔지니어링의 본질인 '수율'과 '성능'에 집착하는 '기술 원리주의자'의 면모다. 그의 전략은 명확하다. 단기적인 주가 부양이나 보여주기식 마케팅을 배제하고, R&D 조직을 쪼고 또 쪼아 HBM 기술 격차를 단숨에 좁히는 것이다. 이는 삼성 특유의 '관리의 삼성' DNA를 '기술의 삼성'으로 되돌리는 고통스러운 쇄신 작업이다. 그에게 HBM4는 단순한 신제품이 아니라, 삼성의 잃어버린 자존심을 되찾는 성배다. 2024년 11월, 전 부회장은 대표이사로 내정되며 메모리사업부장과 삼성종합기술원 원장을 겸임하게 되었다. 반도체, 특히 메모리 경쟁력 회복에 총력을 기울인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SK하이닉스 곽노정 사장, "우리는 원팀이다"  '스킨십 전략가 DNA'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이사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이사

반면, SK하이닉스 곽노정 사장의 리더십은 '유연함'과 '정교함'으로 요약된다. 1994년 현대전자(현 SK하이닉스)에 입사한 이래 30여 년간 현장을 떠나지 않은 그는 뼛속까지 '하이닉스맨'이다. 엔지니어 출신인 그는 기술을 잘 알면서도, 그것을 구현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라는 점을 간파하고 있는 리더다.

▲리더십 키워드=소통왕, 맞춤형전략, 동맹구축

곽 사장의 리더십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는 '사람'이다. 그의 DNA 핵심은 '소통과 협업'이다. 곽 사장은 2021년 12월부터 SK하이닉스의 신설 조직인 '안전개발제조총괄'과 '기업문화 업그레이드TF'를 맡았다. 구성원 간 소통을 강화해 글로벌 기업 수준의 일하는 문화를 구축하려는 의도였다. 이러한 유연한 조직 문화는 SK하이닉스가 경쟁사보다 빠르게 의사결정을 내리고, 엔비디아-TSMC와 탄탄한 '반도체 삼각동맹'을 구축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곽 사장은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수익성이 부진한 사업은 접고 AI 메모리 사업에 역량을 모은 '선택과 집중' 전략을 통해 경영 능력을 입증했다. 더욱 주목할 점은 반도체 불황에도 연구개발(R&D) 비중을 꾸준히 늘려, 2024년 R&D 비용으로만 4조9544억 원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이는 역대 최대 금액으로, 이러한 선제적이고 지속적인 R&D 투자가 SK하이닉스의 HBM 기술력으로 결실을 맺었다. 그는 '만년 2위'의 설움을 '1등의 자신감'으로 바꾸어 놓았다. 단순히 기술만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사가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파악하여 적기에 공급하는 '토털 솔루션 프로바이더'로서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곽 사장에게 HBM4는 추격자를 따돌리고 'SK 메모리 제국'을 완성하는 마침표다.

■'절박함'과 '자신감'의 대결

곽노정 SK하이닉스 사장과 전영현 삼성전자 부회장이 HBM 시장을 두고 양보할 수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HBM 4를 누가 선점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곽노정 SK하이닉스 사장과 전영현 삼성전자 부회장이 HBM 시장을 두고 양보할 수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HBM 4를 누가 선점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2025년, 두 CEO의 승부처는 명확하다.

전영현의 삼성. 압도적인 자본력과 생산 능력을 앞세운 '규모의 반격'이다. HBM4 개발에 성공만 한다면, 삼성만이 가능한 대량 생산 체제로 시장 판도를 단숨에 뒤집겠다는 계산이다. 특히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 사업만 하는 SK하이닉스와 달리 반도체 생산의 모든 과정을 진행하는 종합반도체기업(IDM)으로, 패키징 사업에서 HBM과 GPU를 통합하는 기술이 핵심 경쟁력이 될 수 있다.

곽노정의 SK. 고객 맞춤형 소량 생산과 높은 수율을 무기로 한 **'속도의 수성'**이다. SK하이닉스는 현재 HBM3E 물량의 약 75%를 담당하고 있으며, 2025년 3월 세계 최초로 HBM4 12단 샘플을 주요 고객사들에 제공했다. 이미 구축된 신뢰 관계를 바탕으로 차세대 칩 시장을 선점하고, 삼성의 물량 공세가 시작되기 전에 기술 장벽을 더 높게 쌓는 전략이다.

곽 사장의 다음 목표는 '풀스택 AI 메모리 프로바이더'다. AI 기술에 필요한 모든 메모리 반도체 영역에서 고객의 니즈를 충족시키겠다는 의미다. SK하이닉스는 2028년 하반기부터 미국 인디애나에서 차세대 HBM 양산을 시작하고, TSMC와의 협력으로 또 한번의 기술 혁신을 준비하고 있다.

■CEO DNA 분석 결론

삼성전자 전영현 부회장의 눈에는 '절박함'이, SK하이닉스 곽노정 사장의 눈에는 '자신감'이 서려 있다. 애널리스트의 관점에서 볼 때, 전영현 부회장의 과제는 경직된 삼성의 조직 문화를 얼마나 빨리 유연한 엔지니어 중심 조직으로 되돌리느냐에 있다. 기술은 있는데 조직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거함의 침몰'을 막을 수 없다. 전 부회장은 2025년 3월 주주총회에서 "AI 경쟁 시대에 HBM 시장 트렌드를 조금 늦게 읽는 바람에 초기 시장을 놓쳤지만, 지금은 조직 개편이나 기술 개발 토대는 다 마련했다"고 밝혔다. 반면, 곽노정 사장의 과제는 '성공의 덫'을 피하는 것이다. 1등이 된 순간 찾아오는 안주함과 삼성의 파상공세를 버텨낼 체력을 증명해야 한다. SK하이닉스는 2025년 현 체제를 유지하며 이미 검증된 곽 사장 리더십으로 안정성과 연속성을 확보했다.

곽노정 SK하이닉스 사장과 전영현 삼성전자 부회장이 HBM 시장을 두고 양보할 수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HBM 4를 누가 선점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곽노정 SK하이닉스 사장과 전영현 삼성전자 부회장이 HBM 시장을 두고 양보할 수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HBM 4를 누가 선점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 30년 전쟁의 역사에서 2025년은 가장 치열한 한 해로 기록될 것이다. '근본으로 돌아가 왕좌를 탈환하려는 자'와 '혁신으로 새로운 제국을 건설하려는 자'. 이 드라마틱한 승부의 끝에 대한민국 경제의 미래가 달려 있다.

CEONEWS는 국제 의료 NGO ‘한국머시쉽‘의 활동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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