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IT 산업의 두 거장(巨匠)이 그려낸 미래
[CEONEWS=이재훈 대표기자] 용호상박(龍虎相搏), 혁신으로 대륙을 평정한 두 남자
거대한 용이 승천하고 호랑이가 포효하는 대륙의 땅. 그곳에서 새로운 경제 질서를 재편한 두 명의 '영웅'이 있다. 한 명은 '알리바바'라는 거대한 전자상거래 제국을 건설하며 중국인들의 소비 습관을 송두리째 바꾼 마윈(馬雲). 또 한 명은 '샤오미'라는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로 스마트폰 시장을 뒤흔들며 '대륙의 스티브 잡스'로 불리는 레이쥔(雷軍)이다.
지난 5회에 걸쳐 우리는 글로벌 IT 거인들의 숨겨진 DNA를 분석해왔다. 1화 일론 머스크 vs 젠슨 황의 '미래를 향한 대담한 도전', 2화 제프 베이조스 vs 팀 쿡의 '파괴적 혁신과 완벽주의', 3화 사티아 나델라 vs 순다 피차이의 '플랫폼 전쟁의 지략', 4화 마크 저커버그 vs 리사 수의 '실리콘밸리의 승부수', 그리고 5화 샘 올트먼 vs 리드 헤이스팅스의 'AI 시대의 새로운 리더십'. 이제 그 시선을 동쪽으로 옮겨, 중국 IT 생태계를 주도하는 두 거장의 리더십을 해부하려 한다.
마윈과 레이쥔. 그들은 단순히 기업의 성공을 넘어, 중국의 IT 산업을 세계 무대의 중심으로 끌어올린 주역이다. 동시에 이들의 리더십은 완전히 다른 DNA를 가지고 있다. ‘선지자적 통찰’로 미래를 예견한 마윈과 ‘현실에 최적화된 전략’으로 승부한 레이쥔. 이들의 서로 다른 경영 DNA는 과연 무엇이었으며, 어떻게 중국 IT 산업의 판도를 바꾸었을까.
■마윈의 DNA='위기'를 '기회'로 바꾼 선지자의 통찰
마윈의 삶은 역경의 연속이었다. 세 번의 입시 실패, 수십 번의 취업 낙방. 그가 '알리바바'를 창업하기 전까지 겪은 좌절은 그의 독특한 경영 철학의 밑거름이 되었다. 그의 DNA를 가장 잘 보여주는 단어는 바로 '위기 예측과 대담한 비전'이다.
마윈은 인터넷이 막 태동하던 시기, 중국의 무역업자들이 겪는 어려움에 주목했다. '중소기업들이 손쉽게 해외로 물건을 팔 수 있는 플랫폼'이라는 비전으로 '알리바바'를 창업한 것이다. 당시만 해도 인터넷은 낯선 개념이었고, 전자상거래는 더욱 불가능한 일로 여겨졌다. 그러나 마윈은 “사람들이 인터넷의 가치를 모른다면, 바로 그 점이 우리에게 기회가 될 것”이라며 직원들을 설득했다. 그의 선지자적 통찰은 2003년 사스(SARS)가 중국을 덮쳤을 때 빛을 발했다. 사람들의 외출이 급격히 줄어들자 오프라인 상점들은 매출 급감을 겪었다. 이때 마윈은 '타오바오(Taobao)'를 런칭하며 새로운 국면을 열었다. "오프라인 쇼핑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온라인 쇼핑은 최고의 대안이 될 것"이라는 그의 판단은 적중했다. 타오바오는 사스라는 '위기'를 타고 폭발적으로 성장하며 중국 전자상거래 시장의 패권을 장악했다.
마윈의 DNA는 '관우상(觀雨傘)'이라는 고사성어와 닮아있다. 비가 오기 전에 미리 우산을 준비하는 것처럼, 남들이 보지 못하는 미래를 예측하고 먼저 행동하는 것이다. 그는 알리페이를 통해 금융 시장을 혁신했고, 클라우드 컴퓨팅과 물류 산업에도 과감하게 투자했다. 이는 알리바바를 단순한 전자상거래 기업이 아닌, 거대한 ‘디지털 인프라’ 기업으로 진화시킨 원동력이 되었다. 하지만 그의 '대담한' 비전은 때론 과도한 자신감으로 비춰지기도 했다. 2020년, 중국 당국을 향한 쓴소리는 그를 권력의 정점에서 끌어내리는 계기가 되었다. 기업가로서의 자유로운 정신과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 그의 DNA는 결국 중국의 시스템과 충돌한 것이다. 그의 은둔은 '혁신가'가 가진 리스크를 보여주는 사례로 남았다.
■레이쥔의 DNA='파괴적 가성비'로 시장을 해체한 현실주의자
'대륙의 스티브 잡스'로 불리지만, 레이쥔의 DNA는 마윈과는 사뭇 다르다. 그가 샤오미를 창업할 때 내세운 슬로건은 "싼 가격에 좋은 품질"이었다. 이는 당시 스마트폰 시장을 주도하던 애플과 삼성전자의 프리미엄 전략과는 정반대의 길이었다. 그의 DNA를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는 '가성비(價性比) 기반의 파괴적 혁신'이다.
레이쥔은 인터넷 시대의 가장 큰 특징인 '정보의 평등'을 기업 경영에 적극적으로 적용했다. 그는 최고급 부품을 사용하면서도 유통과 마케팅 비용을 최소화하는 '린(Lean)' 경영 모델을 도입했다. 온라인 직판(直販) 전략으로 오프라인 매장의 수수료를 없앴고, 바이럴 마케팅과 팬덤을 활용해 광고비를 절약했다. 이러한 전략은 '미(Mi)'라는 샤오미의 팬덤을 탄생시켰다. 레이쥔은 팬들과 직접 소통하며 제품에 대한 피드백을 수용했고, 이를 통해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만들어냈다. 이는 단순히 제품을 판매하는 것을 넘어, 고객을 '샤오미 생태계'의 일원으로 끌어들이는 영리한 전략이었다.
레이쥔의 DNA는 '모사재인 성사재천(謀事在人 成事在天)'의 현대판이다. 모든 계획을 사람이 치밀하게 세우되, 결과는 하늘에 맡긴다는 의미의 이 고사성어처럼, 그는 시장의 흐름을 냉철하게 분석하고 현실적인 전략을 실행했다. 프리미엄 시장에서 애플과 정면으로 부딪히기보다, 중저가 시장의 틈새를 파고들어 빠르게 점유율을 늘리는 '우회 전략'을 선택했다. 또한 그의 야망은 스마트폰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샤오미는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가전제품, 웨어러블 기기, 심지어 전기차까지 아우르는 '하드웨어 생태계'를 구축했다. 이는 마윈의 '플랫폼 생태계'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시장을 장악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레이쥔의 전략 역시 한계에 부딪혔다. '가성비'라는 강력한 무기는 경쟁자들이 쉽게 모방할 수 있는 양날의 검이었다. 화웨이, 오포, 비보 등 다른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들이 비슷한 전략을 구사하면서 샤오미의 성장세는 한때 주춤하기도 했다. '제2의 스티브 잡스'라는 별명에도 불구하고, 샤오미는 아직 프리미엄 시장에서 애플의 아성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두 거장을 관통하는 공통 DNA=‘이용자 중심 혁신’과 ‘생태계 구축’
겉보기에는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온 두 거장이지만, 이들의 성공 뒤에는 놀랍도록 비슷한 DNA가 숨어있다. 바로 '이용자 중심의 혁신'과 '강력한 생태계 구축'이다.
마윈은 알리바바라는 플랫폼을 통해 '중소기업과 소비자가 손쉽게 연결되는' 환경을 만들었다. 그는 IT 기술이 소외되었던 사람들을 돕는 도구여야 한다고 믿었다. 알리페이가 탄생한 배경도 마찬가지다. 온라인 거래의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 마윈은 소비자의 결제 안전을 보장하는 에스크로(Escrow) 시스템을 도입했다. 이 모든 혁신은 '이용자의 불편함을 해소하는 것'에서 출발했다.
레이쥔 역시 마찬가지다. '가성비'라는 강력한 무기 뒤에는 '이용자가 원하는 제품을 저렴하게 제공한다'는 철학이 있었다. 그는 샤오미의 팬덤인 '미(Mi)'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하며 제품을 개선했다. 이용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은 마윈과 레이쥔 모두에게 가장 중요한 성공 전략이었다. 이러한 이용자 중심의 사고는 자연스럽게 '생태계 구축'으로 이어졌다.
마윈은 알리바바를 중심으로 알리페이(금융), 차이냐오(물류), 알리클라우드(클라우드) 등 거대한 플랫폼 생태계를 구축했다. 이는 단순한 쇼핑 경험을 넘어, 금융과 생활 전반에 걸친 '알리바바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결과를 낳았다. 레이쥔 역시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가전, 웨어러블, 심지어 전기차까지 연동되는 '샤오미 생태계'를 만들어냈다. 이는 고객이 한 번 샤오미 제품을 사용하기 시작하면, 그들의 생활 곳곳에 샤오미 제품이 스며들게 만드는 락인(Lock-in) 효과를 창출했다. 결국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사업 모델로 출발했지만, '이용자를 핵심에 두고, 그들을 중심으로 거대한 생태계를 만들어낸다'는 동일한 DNA를 공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재무적 성과로 본 두 거인의 명암(明暗)
이들의 리더십 DNA가 실제 기업 성과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비교하는 것은 흥미로운 분석 포인트가 된다. 두 기업의 실적을 통해 그들의 명암을 명확히 확인할 수 있다. 알리바바(Alibaba)는 마윈의 대담한 비전 아래 거대한 몸집을 불려왔다. 알리바바의 매출액은 2010년대 중반 이후 매년 폭발적인 성장을 기록했다. 특히 전자상거래 부문인 타오바오와 티몰(Tmall)이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며 캐시카우 역할을 톡톡히 했다. 여기에 금융 자회사인 앤트그룹(Ant Group)은 2020년 IPO를 앞두고 기업가치 3000억 달러 이상으로 평가되며, 알리바바 제국의 화룡점정(畫龍點睛)을 찍는 듯했다. 그러나 마윈의 '쓴소리' 이후 중국 정부의 규제 철퇴를 맞으며 앤트그룹의 IPO가 무산되었고, 알리바바의 주가는 급락했다. 마윈의 공백 이후 알리바바는 과거와 같은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샤오미(Xiaomi)는 레이쥔의 '가성비 전략'을 바탕으로 빠른 성장을 이뤄냈다. 2010년 창업 후 불과 몇 년 만에 중국 스마트폰 시장의 강자로 부상했으며, 이후에는 인도, 유럽 등 글로벌 시장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2024년 기준 샤오미는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 삼성에 이어 3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이는 '싼 가격'이라는 무기로 전 세계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레이쥔의 전략이 통했음을 보여준다. 특히 샤오미는 스마트폰 사업 외에 TV, 공기청정기, 로봇청소기 등 다양한 가전제품을 성공적으로 출시하며 매출원을 다각화했다. 2024년 첫 전기차 SU7을 선보이며 또 다른 성장 동력을 확보하려는 그의 행보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두 거장의 DNA가 만들어낸 ‘중국식 혁신’의 그림자
마윈과 레이쥔. 두 사람은 '알리바바'와 '샤오미'라는 각자의 제국을 건설하며 중국 IT 산업의 역사를 새로 썼다. 마윈이 '플랫폼'이라는 가상의 공간에서 금융, 물류 등 사회 인프라를 혁신했다면, 레이쥔은 '하드웨어'라는 현실의 제품을 통해 소비자의 삶을 파고들었다. 마윈의 DNA는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선지자적 통찰'이었고, 레이쥔의 DNA는 '가성비를 무기로 한 현실 최적화 전략'이었다. 둘 다 혁신을 추구했지만, 그 방식은 완전히 달랐다. 마윈은 보이지 않는 미래를 향한 과감한 투자로 승부했다면, 레이쥔은 눈앞의 시장을 파고드는 치밀한 전략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흥미로운 점은 두 사람의 성공 DNA가 '중국식 혁신'이라는 공통된 그림자를 드리웠다는 점이다. 이는 국가 주도의 시장 질서와 민간 기업의 혁신이 충돌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다. 마윈은 정부에 대한 비판으로 몰락했고, 레이쥔은 '짝퉁'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했다.
이들의 이야기는 단순히 한 기업의 성공 스토리를 넘어, 거대한 시장과 권력 사이에서 '혁신가'가 겪는 도전과 좌절을 동시에 보여준다. 그들이 남긴 DNA는 앞으로 중국 IT 산업의 미래를 읽는 중요한 키워드가 될 것이다. 이제 중국의 다음 세대 CEO들은 마윈의 '대담한 비전'과 레이쥔의 '현실적 전략'을 어떻게 결합하여 새로운 혁신을 만들어낼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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