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외환은행 사태' 종지부...시스템 개혁없인 반쪽 승리

대한민국 정부가 론스타펀드와의 국제투자분쟁 4000억 소송에서 승리했다. 하지만 향후 시스템 보완없이는 반쪽 승리에 불과할 것이다.
대한민국 정부가 론스타펀드와의 국제투자분쟁 4000억 소송에서 승리했다. 하지만 향후 시스템 보완없이는 반쪽 승리에 불과할 것이다.

[CEONEWS=배준철 기자] 2025년 11월 18일, 대한민국 정부는 론스타펀드와의 국제투자분쟁(ISDS)에서 최종 승소했다.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 취소위원회가 2022년 중재 판정의 절차적 위반을 인정하며, 2억 1650만 달러(약 3200억 원)에 달하는 배상금 지급 의무가 소멸된 것이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금융주권의 승리"라며 환영 입장을 밝혔고, 법무부는 "새 정부 출범 이후 외교적 쾌거"라고 자평했다. 표면적으로 이는 완벽한 승리다. 4천억 원 가까운 혈세 지출 위기에서 벗어났을 뿐 아니라, 론스타 측이 우리 정부의 소송 비용까지 부담하게 됐다. 그러나 샴페인을 터뜨리기 전, 우리는 냉정히 물어야 한다. 이것이 정말 자랑스러운 승리인가, 아니면 애초에 치르지 않았어야 할 전쟁의 끝인가. 2003년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부터 시작된 이 긴 여정은, 단순한 법적 분쟁을 넘어 한국 금융 시스템의 후진성과 관치 금융의 그림자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이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승전보의 환호가 아니라, 이 사태가 던진 묵직한 질문들에 대한 정직한 답변이다.

■법적 승리 이면의 사회적 손실

대한민국 정부가 론스타펀드와의 국제투자분쟁 4000억 소송에서 승리했다. 하지만 향후 시스템 보완없이는 반쪽 승리에 불과할 것이다.
대한민국 정부가 론스타펀드와의 국제투자분쟁 4000억 소송에서 승리했다. 하지만 향후 시스템 보완없이는 반쪽 승리에 불과할 것이다.

4천억 원을 지키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를 위해 우리가 치른 보이지 않는 대가는 결코 적지 않다. 지난 22년간 정부와 금융당국이 쏟아부은 행정력, 법률 비용, 외교적 노력은 천문학적이다. 더 큰 문제는 정량화하기 어려운 무형의 손실들이다. '먹튀 외자' 논란은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한국을 불확실한 시장으로 각인시켰다. 글로벌 금융사들 사이에서 회자된 "코리아 리스크"는 단순한 수사가 아니었다. 투명하지 않은 규제, 예측 불가능한 행정 처리, 그리고 여론에 휘둘리는 정책 결정이라는 이미지는 한국 금융시장의 할인율을 높이는 요인이 됐다.

한 외국계 투자은행 임원은 당시를 이렇게 회고한다. "론스타 사태 이후 우리 본사는 한국 투자안건을 검토할 때마다 '정치적 리스크 프리미엄'을 추가로 고려하게 됐다. 법이 아니라 여론과 정치 논리로 결정이 뒤집힐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안 준 돈'과 '번 돈'의 차이

정부는 이번 결과를 성과로 제시하지만, 엄밀히 말해 우리는 돈을 '번' 것이 아니라 '안 줘도 되게' 된 것이다. 이는 마치 화재를 겨우 진압한 후 "집을 지켰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중요한 질문은 "왜 불이 났는가"다. 경제학자 김상조 교수는 지적한다. "승소 자체는 다행이지만, 애초에 이런 분쟁이 발생하지 않도록 시스템을 설계했어야 했다. 4천억 원을 방어한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왜 우리가 이런 방어전을 치러야 했는지에 대한 성찰이다."

■규제의 이중성이 만든 분쟁

론스타가 ISDS를 제기한 핵심 논리는 "한국 금융당국의 부당한 매각 승인 지연"이었다. 비록 최종 판결에서 우리가 이겼지만, 그 과정에서 드러난 금융당국의 행보는 뼈아프다. 2006년부터 2012년까지 이어진 외환은행 매각 심사 과정은 법적 근거보다 정무적 판단이 우선시된 전형적 사례였다. 당시 여론은 론스타를 '먹튀 투기자본'으로 규정했고, 금융당국은 국민 정서를 의식해 명확한 기준 없이 승인을 지연시켰다. 법리보다 '눈치'가 앞섰던 것이다. 금융위원회 전직 고위 관계자는 익명을 전제로 말한다. "당시 실무자들은 법적으로 승인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위에서는 '정치적으로 부담스럽다'는 이유로 계속 심사를 늦췄다. 결국 그 '정치적 부담'이 4천억 원 소송으로 돌아온 것이다."

■재량권의 남용, 글로벌 스탠다드와의 괴리

문제는 이런 관행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이다. 기업들은 명문화된 법규보다 정부의 '말 한마디'를 더 두려워한다. 규제 당국의 재량권이 지나치게 넓어, 같은 사안도 상황에 따라 다르게 처리된다. 한 대기업 법무팀장은 토로한다. "해외에서는 법조문을 보면 가능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법뿐 아니라 '분위기'도 읽어야 한다. 이게 진정한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본질이다."

■구조적 개혁 없는 승소의 한계

대한민국 정부가 론스타펀드와의 국제투자분쟁 4000억 소송에서 승리했다. 하지만 향후 시스템 보완없이는 반쪽 승리에 불과할 것이다.
대한민국 정부가 론스타펀드와의 국제투자분쟁 4000억 소송에서 승리했다. 하지만 향후 시스템 보완없이는 반쪽 승리에 불과할 것이다.

이번 승소가 의미 있으려면, 제2, 제3의 론스타 사태를 예방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돼야 한다. 그러나 현재까지 정부가 내놓은 후속 조치는 미흡하다. 전문가들은 세 가지 핵심 과제를 제시한다. 첫째, 금융규제의 명확한 법제화다. 당국의 재량권을 최소화하고, 승인 기준과 절차를 명문화해야 한다. 둘째, 정책 결정 과정의 투명성 확보다. 특정 사안에 대한 판단 근거와 과정을 공개해, 자의적 해석 여지를 줄여야 한다. 셋째, 국제 투자 분쟁 예방 시스템의 강화다. 외국인 투자 관련 정책을 수립할 때부터 국제 규범과의 정합성을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정치권의 소모적 공방을 넘어

론스타 사태를 둘러싼 정치권의 공방도 여전하다. 일각에서는 당시 금융당국의 판단을 옹호하며 "국익 수호"였다고 주장하고, 다른 쪽에서는 "무능한 행정이 빚은 참사"라고 비판한다. 하지만 이런 이분법적 프레임은 본질을 흐린다. 필요한 것은 과거에 대한 정치적 단죄가 아니라, 미래를 위한 시스템 개선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금융 선진화를 위한 초당적 합의가 절실한 시점이다.

■승리가 아닌 각성의 계기로

대한민국 정부가 론스타펀드와의 국제투자분쟁 4000억 소송에서 승리했다. 하지만 향후 시스템 보완없이는 반쪽 승리에 불과할 것이다.
대한민국 정부가 론스타펀드와의 국제투자분쟁 4000억 소송에서 승리했다. 하지만 향후 시스템 보완없이는 반쪽 승리에 불과할 것이다.

구론스타 사태는 끝났지만, 그것이 남긴 질문들은 여전히 우리 앞에 놓여 있다. 한국은 정말 예측 가능한 시장인가. 법과 원칙이 정치 논리보다 우선하는가. 외국 자본은 한국을 신뢰할 수 있는가. 이번 승소를 단순한 법적 승리로 끝낼 것인가, 아니면 금융 시스템 전반을 혁신하는 전환점으로 삼을 것인가. 선택은 우리 몫이다. IMF 외환위기 당시 외환은행을 헐값에 넘겼던 과거, 그리고 그것을 되찾으려다 20년 소송전을 치른 현재. 우리는 이제 진정한 '금융주권'이 무엇인지 깨달아야 한다. 그것은 특정 판결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분쟁이 발생하지 않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론스타라는 긴 터널을 빠져나온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승전보의 환호가 아니라 뼈를 깎는 성찰이다. 4천억 원의 청구서를 피했지만, 더 큰 숙제는 아직 남아 있다. 그 숙제를 외면한다면, 이번 승리는 일시적 안도감에 불과할 것이다.

CEONEWS는 국제 의료 NGO ‘한국머시쉽‘의 활동을 응원합니다.
저작권자 © CEO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