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의 아버지에서 AI 비전가로

래리 핑크 블랙록 창업자
래리 핑크 블랙록 창업자

[CEONEWS=이재훈 대표기자] 2025년 오늘, 세계 금융시장의 심장부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블랙록(BlackRock)'의 창업자이자 CEO, '래리 핑크(Larry Fink)'를 지목할 수 있다. 그가 쥐고 있는 자산 규모만 10조 달러, 한국 GDP의 6배에 달하는 천문학적 숫자다. 그러나 그의 이름이 단순히 '월가의 거인'으로만 기록되는 것은 아니다. 핑크는 금융 패러다임을 ESG(환경·사회·지배구조)와 AI라는 새로운 축으로 전환시키며, 21세기 자본주의의 미래를 재설계하는 리더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평범함에서 시작된 비범한 여정

1952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난 래리 핑크는 유대인 중산층 가정의 아들로 자랐다. 그의 아버지는 신발 가게를 운영했고, 어머니는 영어 교사였다. 화려한 금융 가문의 배경도, 막대한 초기 자본도 없었다. 그가 어린 시절부터 배운 것은 부의 세습이 아닌, 노력과 성실함의 가치였다.캘리포니아대학 로스앤젤레스캠퍼스(UCLA)에서 정치학을 공부한 뒤 경영대학원에서 MBA를 취득한 그는 곧바로 금융업계에 발을 들였다. 초기 경력에서 그는 모기지 채권 시장에 탁월한 재능을 보였지만, 1986년 한 차례 큰 손실을 경험했다. 1억 달러에 가까운 거액이었다. 이 실패는 그에게 치명적일 수도 있었지만, 오히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리더십의 원천이 되었다. "실패는 가장 좋은 스승"이라는 그의 철학이 바로 이때 형성됐다. 이후 그는 자산운용 업계의 빈틈을 간파하고 1988년 블랙록을 창업했다. 불과 10여 명의 직원으로 시작한 회사는 37년 만에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로 성장했다.

■ '투자의 민주화'를 외치다

핑크의 리더십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책임 있는 자본주의"다. 그는 매년 전 세계 CEO들에게 보내는 연례 서한(Annual Letter)을 통해 기업의 존재 이유를 단순한 이윤 창출이 아닌, 사회적 가치 창출에 두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2018년 그가 CEO들에게 보낸 편지의 한 구절은 지금도 회자된다. "기업은 주주뿐 아니라 모든 이해관계자에게 가치를 제공해야 한다. 사회적 목적 없는 회사는 장기적으로 번영할 수 없다." 이 메시지는 단순한 구호가 아니었다. 실제로 블랙록은 투자 포트폴리오에서 탄소 배출 기업 비중을 대폭 줄이고, 재생에너지·친환경 산업에 대한 투자를 확대했다. 석탄 화력발전 관련 기업들은 투자 제외 대상으로 분류했고, ESG 평가가 낮은 기업들의 주주총회에서는 경영진을 상대로 강력한 개선 요구를 내놓았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글로벌 대기업 CEO들이 '핑크의 편지'를 두려워하고 동시에 존경하게 됐다. 블랙록의 자본이 곧 '세계 시장의 심판'이기 때문이다.

■데이터로 무장한 집단지성 리더십

래리 핑크 블랙록 창업자
래리 핑크 블랙록 창업자

래리 핑크의 경영 스타일은 강력한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과 투명한 신뢰 구축으로 요약된다. 그는 조직 내부에서 "집단지성"을 강조하며, 단일 리더가 아닌 팀 전체가 함께 리스크를 관리하는 문화를 만들었다. 블랙록의 대표 시스템인 '알라딘(Aladdin)'은 전 세계 금융 데이터를 실시간 분석해 리스크를 조율하는 AI 플랫폼으로, 그의 경영 철학을 가장 잘 보여주는 상징적 산물이다. 현재 알라딘은 블랙록뿐 아니라 전 세계 200여 금융기관에서 25조 달러 규모의 자산을 관리하고 있다. 그는 직원들에게 늘 "실패를 숨기지 말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초기 실패를 발판으로 세계 최대 금융회사를 일군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된 철학이다. 실제로 블랙록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등 격동의 시기에도 비교적 안정적인 수익률을 유지해왔다.

■AI 시대의 '지능 자본주의' 설계자

핑크의 눈은 이미 AI(인공지능)로 향해 있다. 그는 최근 여러 연설에서 "AI는 금융뿐 아니라 전 세계 자본주의 구조를 송두리째 바꿀 기술"이라고 단언했다. 올해 초 다보스포럼에서 그는 "AI는 산업혁명 이후 가장 큰 변곡점"이라며 "기업과 정부는 이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블랙록은 이미 AI를 활용한 자산운용 자동화, 리스크 예측, ESG 데이터 분석 등에서 선도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특히 그는 AI가 투자와 고용, 사회 구조에 미칠 파급력을 냉철하게 분석하며, 단순한 효율성 제고를 넘어 "지능 자본주의(Intelligent Capitalism)"라는 새로운 프레임을 제시했다. 이는 데이터·AI·자본이 융합해 지속 가능한 미래를 만드는 패러다임으로, 그가 앞으로 펼칠 리더십의 방향을 예고한다.

■"서울을 아시아의 AI 수도로 만들자"

래리 핑크 CEO와 이재명 대통령이 만나 AI 협력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래리 핑크 CEO와 이재명 대통령이 만나 AI 협력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최근 뉴욕에서의 만남이다. 9월 이재명 대통령이 유엔총회 참석차 뉴욕을 방문했을 때, 래리 핑크와의 특별 대담이 성사됐다. 이 자리에서 그는 한국을 "아시아의 AI 수도"로 만들자는 제안을 내놓았다. "한국은 반도체, 5G 인프라, 우수한 인재 등 AI 생태계 구축에 필요한 모든 조건을 갖춘 나라입니다. 블랙록은 한국이 아시아에서 AI 허브로 도약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의 발언은 단순한 외교적 수사가 아니다. 이미 블랙록은 국민연금공단, 삼성, SK 등과 전략적 협력 관계를 맺고 있으며, 한국 내 AI·그린테크 스타트업에 수십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집행했다. 특히 한국 정부가 추진 중인 'K-반도체 벨트' 'AI 국가전략' 등과 맞물리면서, 글로벌 자본과 국가 전략의 시너지가 새로운 성장동력을 창출할 수 있다는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논란과 비판, 그리고 대응

물론 그의 행보가 모든 찬사만 받는 것은 아니다. 일부에서는 블랙록의 막강한 영향력이 "그림자 정부" 수준에 이른다며 우려를 표한다. 전 세계 주요 기업들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어 사실상 글로벌 경제를 좌우할 수 있다는 비판이다. 또한 ESG 투자가 정치적 편향성을 띤다는 보수층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일부 미국 공화당 주 정부들은 블랙록과의 연기금 운용 계약을 해지하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핑크는 이런 비판에 일관되게 대응해왔다. "우리는 정치적 의제가 아닌, 장기적 투자 수익률을 추구할 뿐"이라며 "ESG는 리스크 관리의 핵심 요소"라고 반박한다. 실제로 블랙록의 ESG 펀드들은 전통적인 펀드 대비 안정적인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한국 경제에 던지는 메시지

유엔총회 기간 중 이뤄진 뉴욕에서의 대담에서 핑크가 강조한 것은 단순한 투자 유치를 넘어선 "패러다임의 전환"이었다. 그는 한국이 제조업 기반에서 AI·데이터 경제로 전환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고 평가했다. "한국은 이미 메모리 반도체에서 세계 1위이고, 시스템 반도체에서도 빠르게 추격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풍부한 데이터와 우수한 엔지니어링 인력이 결합되면, 실리콘밸리에 버금가는 AI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특히 한국의 강점으로 '빠른 의사결정'과 '정부-민간 협력'을 꼽았다.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규제 개선과 인프라 구축이 신속하게 이뤄질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이라는 것이다.

■미래를 설계하는 자본의 철학자

래리 핑크는 단순한 금융가를 넘어선 존재다. 그는 실패에서 배운 교훈을 바탕으로 세계 최대의 자산 제국을 일궈냈고, ESG 혁명으로 자본주의의 본질을 바꿨으며, 이제 AI 시대를 설계하는 비전가로 나아가고 있다. 73세의 나이에도 그의 열정은 식을 줄 모른다. 최근 인터뷰에서 그는 "나의 마지막 도전은 AI와 지속가능성이 결합된 새로운 경제 모델을 만드는 것"이라고 밝혔다. 뉴욕에서 이재명 대통령과 만나 그가 던진 "AI 수도 서울" 발언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글로벌 자본과 기술 패권이 교차하는 새로운 게임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금융의 심장에서 울린 그의 메시지는 곧 한국 경제, 나아가 아시아의 미래 전략과 직결된다.

"자본은 언제나 미래를 향한다. 그리고 나는 그 미래에 한국이 반드시 포함되기를 원한다."

핑크의 이 한마디가, 오늘날 우리가 그를 스페셜리더로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그의 선택이 곧 세계 경제의 방향이 되는 시대, 한국이 그 중심에 서길 바라는 그의 비전이 현실이 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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