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NEWS=박수남 기자] 중국의 금 시장이 다시금 들썩이고 있다. 지난 2024년 봄 상하이선물거래소(SHFE)의 공격적인 매수세로 시작된 대규모 금 가격 상승은, 잠깐 숨을 고르는 듯하더니, 최근 들어 더 강력한 파급 효과로 금값을 온스당 3,000달러 이상으로 끌어올릴 것이란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마치 역사의 어느 순간마다 인류가 금을 찾아 눈이 반짝였던 것처럼, 중국 투자자들은 또 한 번 ‘황금’이라는 단어에 자신들의 미래를 거는 모양새다.
봄바람과 함께 시작된 상승 랠리
돌이켜 보면, 지금의 열풍은 꽤 이른 시점부터 예고됐다. 2024년 3~4월, 상하이선물거래소에서 거래되던 금 선물 가격이 불과 6주 만에 400달러 이상(약 23% 상승) 뛰어오르며 국제 금 시장까지 동반 상승시켰다. 그 무렵, 서구 투자자들은 상대적으로 관망세였지만, 중국 내 개인 및 기관 트레이더들은 저마다의 가정(假定)을 뒤로하고 공격적인 매수를 이어갔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당시 상황을 두고 “중국 투기꾼들, 금 랠리를 초고속으로 추진(Chinese Speculators Super-Charge Gold Rally)”이라고 보도했다. 상하이선물거래소 금 선물의 거래량이 무려 400% 급증하며, 금값이 역사적 고점을 계속 경신했다는 것이다. 이후 한동안 진정 국면에 접어드는 듯했지만, 전문가들은 중국발 매수세가 다시 돌아올 것이며, 그 시점에 금값은 이전 상승폭을 훌쩍 뛰어넘을 것으로 내다봤다.
최근 시장 분위기의 급변—우상향으로 굳어지는 차트
그 예측이 최근 들어 점차 실현되는 듯하다. 상하이선물거래소 금 선물 차트를 보면, 한동안 거래량이 비교적 낮은 수준에서 꾸준히 상승해 오다가, 최근 몇 주 사이 거래량이 급증하면서 금값도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온스당 위안화 기준 금 현물 가격 역시 가속도가 붙은 상승 흐름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중국 본토 금 가격의 프리미엄(국제 현물 가격 대비)이 다시 플러스 영역으로 돌아온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지난해 하반기 한때는 본토 가격이 국제 가격보다 낮게 거래되기도 했으나, 지금은 반대로 국제 시세보다 높은 가격이 형성되며, 그만큼 현지 투자 심리가 뜨겁다는 방증이 되고 있다.
중국 정부의 ‘금 사수 작전’?
중국 정부가 최근 여러 정책을 통해 금 투자 확대를 장려하고 있는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중앙은행(인민은행, PBOC)의 금 매입 재개: 6개월간 매입을 중단했던 PBOC가 11월에 금 매입을 다시 시작해, 약 24톤을 추가 확보했다. 중국 당국이 공식적으로 매입 사실을 공개했다는 것은, 전략적으로 국내외에 ‘금 보유’를 알리겠다는 의도가 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보험사의 금 투자 허용: 2024년 2월, 중국 정부는 보험사에 금 투자를 허용하는 대대적인 정책 변화를 발표했다. 이는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거대 자금이 새롭게 금 시장으로 유입될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처럼 중앙은행에서 민간 기업, 개인에 이르기까지 금 투자를 독려하는 중국 정부의 행보는, 갈수록 불안정해지는 글로벌 법정화폐 및 국채에 대한 대응책으로 읽힌다. 미국 달러 및 국채 의존도를 낮추고, “실물 자산”인 금을 전략 물자로 다루겠다는 노선이 뚜렷해 보인다.
중국 국민의 ‘황금’에 대한 애착과 경제적 불안
중국인들의 금 선호는 단순한 재테크 수단을 넘어, 문화적·역사적 뿌리를 가진다. 금은 전통적으로 예물에서부터 재산 보호 수단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활용돼 왔다. 최근에는 더욱 심각해진 경기 침체와 부동산·주식 시장 급락이 이 같은 경향을 가속화했다.
일각에서는 부동산과 주식 시장 폭락으로 인한 가계자산 손실 규모가 18조 달러(약 2경 4,000조 원)에 달할 것이란 추정치를 내놓는다. 중국판 ‘2008년식 금융위기’라 불릴 만한 수준이다. 여기에 국채 금리가 사상 최저치로 떨어지며 디플레이션 압력이 커지다 보니, 이자를 지급하지 않는 금이라도 심리적 기회비용이 낮아져 더욱 매력적인 투자처로 부각되는 셈이다.
게다가 조만간 중국 정부가 ‘대규모 경기부양책(바주카)’을 시행할 수 있다는 관측이 있는데, 이는 금·은 같은 원자재 가격에 강력한 상승동력이 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 국채도 흔들…“안전자산”의 위기?
금값 상승의 또 다른 불쏘시개는 미국 국채(Treasury) 시장의 불안정으로 보인다. 통상적으로 주식이 하락할 때 국채는 ‘안전자산’ 역할을 하며 가격이 오르지만, 이번에는 주식과 함께 국채도 하락세를 보였다. 일부 전문가는 트럼프 행정부의 고율 관세 정책에 대한 보복 조치로 중국이 미 국채를 대규모로 매도하고 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미 국채는 현재 37조 달러(약 4경 9,000조 원)에 달하는 천문학적 연방 부채와, 연간 1조 1천억 달러 이상의 이자 비용을 동반한다. 이자 지출만 해도 이제 국방비·보건복지예산 등을 추월해, 사회보장제도(Social Security)에 이어 연방 정부 지출 항목 중 두 번째로 큰 덩어리가 됐다. GDP 대비 부채 비율도 역사적으로 위험 수위에 달해 있으니, 국가 채무 불이행(디폴트) 위험이 전혀 없는 자산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렇듯 안전자산으로서의 국채 위상이 흔들리는 사이, 6,000년 넘게 인간이 가치 저장 수단으로 선호해 온 금이 상대적으로 매력적인 대안이 되고 있다. 이는 중국이 금 매입에 더욱 박차를 가하는 직접적인 동력 중 하나일 수 있다.
3,000달러를 넘어서는 금값, 어디까지 오를까
중국발 ‘금 매수’ 열기는 현재진행형이며, 상하이선물거래소에서는 거래량과 가격 모두가 큰 폭으로 뛴 상태다. 아직 시장 참여가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는 만큼, 상승 모멘텀이 한동안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힘을 얻는다.
뿐만 아니라, 중앙은행은 금 매입을 이어가고, 보험사는 물론 기타 대기업들도 “금 수요”를 새롭게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이를 통해 금값이 온스당 3,000달러 선을 넘어서는 것은 물론, 그 이상으로 치솟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다.
중국이 이처럼 금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장려하는 모습은 서구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달러 패권과 국채 중심의 금융 구조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서구 국가들 역시 어쩔 수 없이 금의 전략적 가치를 재평가하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 설득력을 얻는다.
‘황금’의 역사와 우리의 현재
금은 인류가 수천 년 동안 명예와 부의 상징으로 대우해 온 원소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극심한 경제적 혼란 속에서도 제 몫을 했던 금이, 이번에는 중국이라는 거대한 시장의 ‘집단적 갈망' 을 통해 다시 한 번 화려한 포물선을 그리고 있다.
세계가 요동칠 때마다 빛났던 금은, 때로는 맹목적 투기의 대상이 되기도 했고, 때로는 국가와 개인의 자산을 보호하는 ‘최후의 보루’로 기능하기도 했다. 중국발 금 열풍이 어디까지 지속될지, 그리고 이로 인해 국제금융 질서가 어떤 변화를 맞이할지는 누구도 섣불리 단정 지을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우리는 다시 한 번 ‘대 황금 시대’의 문턱에 서 있다는 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