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는 얼었지만 생태계는 진화 중
[CEONEWS=김소영 기자] 한때 ‘제2의 벤처붐’이라 불리며 질주하던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가 지금은 차가운 현실 앞에 서 있다. 투자금은 줄고, 실리콘밸리의 유동성 축소 여파는 동아시아까지 미쳤다. 그러나 2025년, 한국 스타트업은 여전히 ‘위기 속의 기회’를 증명 중이다. 빙하기는 왔지만, 생태계는 멈추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재정비의 시간이다.
얼어붙은 투자시장… “이제는 진짜 실력이 필요한 시기”
올해 들어 스타트업 업계가 피부로 느끼는 변화는 명확하다.
‘돈이 돌지 않는다.’
특히 초기 창업 기업과 딥테크 이외 분야는 투자 유치가 하늘의 별따기가 되었다. 유망하다고 평가받던 기업들도 기업가치를 낮춰서라도 자금을 끌어와야 하는 상황. 다운라운드와 구조조정이 일상이 됐고, 인력 유출과 리스크 회피가 맞물리며 많은 기업들이 “생존 전략”에 들어갔다.
하지만 이 냉각기 속에서도 살아남은 기업들의 면면은 단단하다. 단순한 아이디어가 아닌, 시장성과 기술력, 글로벌 비전을 갖춘 기업들이 점차 업계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허울뿐인 ‘스타트업 포장지’는 이제 통하지 않는다.
정부는 발 빠르게 움직였다… ‘정책은 유일한 벤처캐피탈’이 되다
이러한 현실을 감지한 정부는 움직였다. 민간 자금이 머뭇거리는 사이, 정부 주도의 펀드와 프로그램이 스타트업 생태계의 혈류 역할을 자처했다. 수천억 원 규모의 펀드가 신속히 조성되었고, 인공지능(AI), 바이오, 로봇, 우주 등 전략 분야에 대한 자금이 우선적으로 투입됐다.
투자만이 아니다.
글로벌 진출을 위한 지원도 체계화됐다. 해외시장에 이미 발을 디딘 스타트업에게는 R&D 비용을, 국내에서 시작해 세계를 겨냥하는 팀에게는 맞춤형 사업화 자금이 제공됐다.
‘한국에서 창업하고, 세계로 나가라’는 구호가 정책이 되고 있다.
돈보다 중요한 것, 연결과 신뢰
2025년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의 가장 큰 변화는 숫자가 아니라 ‘관계’다.
대기업은 이제 스타트업을 단순한 외주 업체로 보지 않는다. 삼천리, LG, 포스코, SK 같은 전통 산업의 강자들이 스타트업을 기술 동반자, 시장 확장의 열쇠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S-Together'나 'POSCO IMP', 'C-Lab' 등 투자와 공동 사업화가 연결된 플랫폼들이 연이어 출범한 것도 이 변화의 흐름 위에서다.
그 결과, 스타트업은 이전보다 훨씬 빠르게 실제 산업 현장과 연결되고 있다.
실험실을 넘어 공장으로, 발표장을 넘어 소비자의 손에 기술이 전달되는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다.
생태계는 다시 숨을 쉰다… 관건은 ‘속도’가 아닌 ‘방향’
2025년, 스타트업 생태계는 단순히 크고 많은 창업이 아닌, 지속가능한 성장을 추구하는 체질 개선기에 접어들었다. 단기 투자 회수보다는 장기 비전이 중요해졌고, 정부와 기업, 창업가 사이의 신뢰 관계가 곧 생존 조건이 되었다.
한국 스타트업의 다음 단계는 기술력도, 투자 유치도 아닌 ‘글로벌 포지셔닝’ 이다.
단순히 한국 시장에서 끝나는 기술이 아니라, 아시아를 넘어 미국·유럽까지 진출할 수 있는 확장성 있는 사업모델이 필요한 시점이다.
빙하기는 춥지만, 모든 것을 멈추게 하진 않는다. 어쩌면 지금 이 시기가 진짜 ‘스타트업다운 스타트업’이 솟아날 기회일지도 모른다. 위기는 추려내고, 정책은 밀어주며, 기술은 진화하고 있다. 2025년,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는 다시 도약의 타이밍을 준비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