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훈의 심층리포트 11] 대통령과 총수단, UAE에서 쓴 새로운 비즈니스 외교
정부와 기업의 원팀 전략...실용외교의 새 장을 열다
[CEONEWS=이재훈 대표기자] 2025년 11월,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에서 펼쳐진 이재명 대통령의 국빈 방문은 기존 외교 행사와 확연히 달랐다. 의전과 격식 대신 '실리'와 '계약'이 전면에 나섰다. 대통령이 기업 총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직접 세일즈에 나선 장면은 한국 경제외교의 새로운 전환점을 보여줬다. 정부와 기업이 한 팀으로 움직인 이번 방문의 전략과 의미를 짚어본다.
■신뢰를 담보로 한 영업
이번 UAE 방문에서 가장 눈에 띈 것은 대통령의 역할 변화였다.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 나하얀 UAE 대통령과의 확대 회담에서 이 대통령은 배석한 기업 총수들을 일일이 호명하며 그들의 기술력과 실행 능력을 직접 설명했다. 통상 실무진이나 장관이 하던 역할을 국가 원수가 맡은 것이다. 이는 중동 국가 특유의 의사결정 구조를 정확히 겨냥한 전략이다. 왕족 중심의 중동 사회에서는 최고 지도자 간의 신뢰가 계약의 성패를 좌우한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한국 기업의 기술력과 신뢰성을 보증함으로써, 기업들이 개별적으로 넘기 어려운 '신뢰의 문턱'을 단숨에 낮춘 셈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대통령이 신뢰의 문을 열면, 기업 총수들이 그 문으로 들어가 구체적인 계약을 성사시키는 구조"라며 "국가 신용을 기업 비즈니스의 담보로 활용한 고도의 전략"이라고 평가했다.
■실용주의가 만든 호흡
이재명 대통령의 평소 지론인 '실용주의'는 외교 무대에서도 그대로 구현됐다. 격식을 따지는 외교적 수사 대신, 한국 기업의 기술력과 신뢰성을 강조하는 직설적인 언어를 사용했다. 주목할 점은 대통령과 기업 총수 간의 긴밀한 호흡이다. 대통령이 거시적인 협력 방향을 제시하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나 정의선 현대차 회장이 즉각 화답하고, 김동관 부회장이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제시하는 모습이 여러 차례 포착됐다. 외교가에서는 이러한 장면이 사전에 치밀한 조율을 거쳤음을 시사한다고 분석한다. 출국 전부터 정부와 재계가 긴밀한 전략 회의를 가졌고, 현지에서도 수시로 협의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정부 관계자는 "과거처럼 기업을 동원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국익 창출의 동등한 파트너로 인식하는 변화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기업 측도 정부의 적극적인 뒷받침을 받으며 과감한 투자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는 평가다.
■미래 산업 중심의 입체 공략
이번 방문의 성과는 분야의 다양성에서도 드러난다. 기존의 건설, 플랜트를 넘어 인공지능(AI), 소형모듈원전(SMR), 수소 에너지, 우주·방산에 이르기까지 미래 먹거리를 망라했다. 이는 UAE의 '탈석유(Post-Oil)' 국가 전략과 한국의 첨단 기술력을 정확히 연결한 결과다. 단순히 제품을 파는 것이 아니라, UAE의 국가 발전 전략에 한국 기업이 필수적인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음을 설득했다. UAE가 고민하는 안보 문제에 첨단 방산 시스템을 제시하고, 탄소 중립 목표에는 태양광과 수소 밸류체인을 제안하는 등 '맞춤형 제안'이 주효했다. 한 경제 전문가는 "상대가 필요로 하는 것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에 맞는 솔루션을 패키지로 제공한 전략적 접근"이라고 분석했다.
■지속가능성이 관건
다만 전문가들은 이번 성과가 일회성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진정한 성공은 이러한 '정부-기업 협력 모델'이 제도적으로 안착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한 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비즈니스 외교의 성공 방정식을 찾았다면, 이를 시스템화해야 한다"며 "특정 지도자의 추진력에만 의존하지 않고, 지속 가능한 협력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과제"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과거에도 정부와 기업이 협력한 경제외교 사례가 있었지만, 대부분 일회성에 그치거나 후속 관리가 미흡해 기대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번에도 계약 체결 이후 이행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변수에 대비한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새로운 경제외교의 출발점
이번 UAE 방문은 한국 경제외교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 정부의 외교력과 기업의 기술력이 결합할 때 어떤 시너지가 나오는지 확인했다. 다만 이것이 지속 가능한 모델로 자리 잡으려면 넘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정부와 기업 간의 역할 분담, 리스크 관리 체계, 후속 지원 시스템 등이 체계적으로 마련돼야 한다. 한 재계 인사는 "이번 방문이 보여준 정부-기업 협력 모델은 분명 긍정적"이라면서도 "관건은 이것이 특정 정부의 스타일이 아니라, 대한민국 경제외교의 표준이 되느냐"라고 말했다. 아부다비 사막에서 펼쳐진 새로운 비즈니스 외교의 실험. 그 성공 여부는 앞으로의 후속 조치와 제도화 노력에 달려 있다. 화려한 성과 발표를 넘어, 실질적인 결실로 이어지는지 지켜봐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