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훈의 X파일 10화] 문화 대통령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빛과 그림자

DJ 파티 논란에 '온리원' 리더십 흔들 성공신화에 가려진 '황제경영'의 민낯 K컬처 선봉장의 일탈, CEO PI 붕괴가 그룹 이미지 실추시켜

2025-11-13     이재훈 기자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DJ 파티 사건'이 그동안 쌓아 올렸던 문화 대통령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있다. 이번 사태가 오너 총수의 CEO PI가 얼마나 중요한지 시금석이 될 것으로 보인다.

[CEONEWS=이재훈 대표기자] 대한민국 재계에서 이재현 CJ그룹 회장만큼 '극과 극'의 이미지를 동시에 지닌 인물은 드물다. '삼성의 장손'이라는 굴레를 벗고 '설탕과 밀가루' 기업을 'K-컬처'를 전파하는 라이프스타일 제국으로 키워낸 '문화 대통령'. 그러나 동시에 유전병과 투병, 구속수감이라는 비극의 아이콘이기도 하다. 그랬던 그가 건강을 회복하고 '그레이트 CJ 2025' 비전을 향해 질주하던 지금, 전혀 예상치 못한 암초가 발견됐다. '이재훈의 X파일'이 이번에 추적한 것은 지난 9월 26일 터진 이른바 '비밀 DJ 파티' 사건이다. 이 사건은 단순한 오너의 개인적 일탈을 넘어, 이재현 회장이 평생 쌓아 올린 'CEO PI(Personal Identity)'가 어떻게 무너지고 있으며, 이 붕괴가 CJ라는 거대 제국에 어떤 치명적 균열을 만들고 있는지 보여주는 상징적 '트리거(Trigger)'다. 10화 X파일은 CJ 성공의 명암과 '이재현 리더십'의 본질, 그리고 PI 붕괴가 초래할 부정적 효과를 집중 해부한다.

■ '문화입국(文化立國)'의 성공 스토리, '설탕'에서 'K-콘텐츠'까지

이재현 회장의 성공 스토리는 '결핍'과 '증명'의 역사다. 고(故)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장손이었지만, 경영권 승계 구도에서 밀려난 그는 1993년 제일제당(현 CJ)을 이끌고 삼성에서 분리된다. 그에게 주어진 것은 식품(설탕, 밀가루)과 바이오가 전부였다. 하지만 그는 '식품'에서 '문화'를 봤다. 1995년 스티븐 스필버그의 '드림웍스'에 3억 달러를 투자한 것은 전설의 시작이다. 모두가 무모하다고 비웃었지만, 이는 "문화를 산업으로 만들겠다"는 그의 선언이었다. 이후 그의 행보는 거침없었다. 1996년 음악방송 Mnet(당시 뮤직네트워크)을 인수하고, 1998년 국내 최초 멀티플렉스 극장 CGV를 열었다. 2000년대에는 온미디어(현 tvN) 인수로 콘텐츠 제작 역량을 수직계열화했다. 그의 전략은 명확했다. C-P-N-D (Contents - Platform - Network - Device) 전략, 즉 콘텐츠를 만들어(C), 플랫폼(P)에 유통하고, 물류(N, 대한통운)로 실어나르며, 소비자(D)에게 전달하는 '라이프스타일 생태계'를 구축한 것이다. '기생충'과 'K-Pop'의 세계적 성공 뒤에는 CJ가 20년간 닦아온 이 '문화의 길'이 있었다는 것을 부정할 재계 인사는 없다.

■'초격차 M&A' 전략, 속도 혹은 독(毒)

이 회장의 성공을 뒷받침한 것은 '공격적 M&A'였다. 그의 M&A는 단순한 '문어발 확장'이 아니었다. C-P-N-D 생태계를 완성하기 위한 '퍼즐 맞추기'에 가까웠다. 대표적 사례가 2011년 1조 9천억 원을 투입한 '대한통운(현 CJ대한통운)' 인수다. 콘텐츠 기업이 웬 물류냐는 비판이 쏟아졌지만, 이는 신의 한 수가 됐다. 이커머스 시대의 도래를 예측하고, 그룹 내 식품·유통·미디어 커머스의 '혈맥'을 확보한 것이다. 또한, 2018년 약 2조 원을 들여 인수한 미국 냉동식품 기업 '슈완스(Schwan's)'는 'K-푸드'의 글로벌 전초기지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비비고 만두'가 미국 시장을 제패한 데는 슈완스의 유통망이 결정적이었다. 하지만 이 '속도전'은 막대한 재무 부담이라는 그림자를 남겼다. 20조 원에 육박하는 누적된 인수 비용과 차입금은 CJ의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됐다. 그가 '비상경영'을 선포하고 자산 매각에 나섰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M&A는 CJ에게 '성장의 엔진'이자 동시에 '위험의 뇌관'인 양날의 검이었다.

■'온리원(OnlyOne)' 리더십과 '황제'의 그늘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DJ 파티 사건'이 그동안 쌓아 올렸던 문화 대통령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있다. 이번 사태가 오너 총수의 CEO PI가 얼마나 중요한지 시금석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의 경영철학은 '온리원(OnlyOne)'으로 요약된다. '최초, 최고, 차별화'를 통해 1등이 아닌 '대체불가'가 되라는 주문이다. 이는 CJ의 DNA가 됐다. 그의 리더십은 '디테일'과 '감(感)'으로 상징된다. 그는 'CJ E&M'의 모든 영화 시나리오를 직접 검토하고, '비비고' 만두피의 두께까지 챙기는 '마이크로 매니저'로 유명하다. K-컬처의 성공은 이러한 '문화 감식가'로서의 오너 감각이 적중했기에 가능했다. 문제는 이 '온리원' 리더십이 '황제 경영'으로 변질될 때 발생한다. 모든 것이 오너 1인의 판단과 '감'에 의존하는 시스템은, 그 '감'이 무뎌지거나 '판단'이 흐려질 때 그룹 전체를 위기에 빠뜨린다. 더 큰 문제는 '후계 구도'다. 그의 건강 문제와 맞물려 승계 작업은 현재진행형이다. 장녀 이경후 CJ ENM 브랜드전략실장과 장남 이선호 CJ제일제당 경영리더가 각각 미디어와 식품 부문에서 경영 수업을 받고 있다. 하지만 장남 이선호 리더는 과거 마약 밀반입 사건이라는 치명적 아킬레스건을 안고 있다. 가뜩이나 '도덕성'이 승계의 핵심 잣대가 된 현시점에서, '남매 경영' 구도든 '장자 승계' 구도든, 이 회장의 절대적 리더십 없이는 완성되기 어려운 구조다.

■'9.26 DJ 파티'와 CEO PI의 붕괴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DJ 파티 사건'이 그동안 쌓아 올렸던 문화 대통령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있다. 이번 사태가 오너 총수의 CEO PI가 얼마나 중요한지 시금석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모든 성공과 불안한 미래가 교차하는 시점, '9.26 DJ 파티' 사건이 터졌다. 디스패치 단독보도에 따르면, 이 회장은 9월 26일 밤, 소수의 지인과 연예인들을 초청해 강남 모처에서 대규모 비공개 DJ 파티를 주최했다. 문제는 시점과 장소, 그리고 그 내용이다. 특히 이 사건이 치명적인 이유는 이재현 회장이 스스로 구축한 CEO PI를 정면으로 배신했기 때문이다.

첫째, '문화 대통령'에서 '유흥의 제왕'으로 추락이다. 그가 쌓아 올린 CEO PI는 'K-컬처'라는 산업을 일군 '선구자'이자 '창조적 리더'였다. 하지만 이번 파티는 대중에게 'K-컬처'가 아닌 '그들만의 리그'에서 벌이는 '사치와 유흥'으로 비쳤다. 이는 대중을 상대로 하는 CJ의 업(業)의 본질을 훼손한다.

둘째, '병약한 총수' 이미지의 배신. 그는 오랫동안 유전병(CMT)과 투병하며 대중의 동정 여론을 받아왔다. 건강 문제로 형 집행이 정지되기도 했다. 그러나 한밤중 격렬한 DJ 파티를 주최할 정도의 건강 상태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과거의 '동정론'은 '도덕적 해이'와 '기만'이라는 비난으로 바뀌었다.

셋째, '온리원' 리더십의 균열이다. 직원들에게는 '초격차'와 '최고'를 외치며 허리띠를 졸라매게 하면서, 정작 총수 본인은 사회적 분위기를 읽지 못하는 일탈을 저질렀다. 이는 그룹 전체의 사기를 꺾고, '온리원'이라는 구호 자체를 공허한 메아리로 전락시킨다.

마지막으로 CEO PI의 붕괴, 그룹의 위기다. 이번 '9.26 DJ 파티' 사건은 단순한 가십이 아니다. 이는 CJ그룹이 이재현이라는 '절대반지'에 얼마나 의존해왔는지, 그리고 그 반지가 빛을 잃을 때 그룹 전체가 얼마나 큰 위험에 노출되는지를 보여주는 '리트머스 시험지'다. 후계 구도는 미완성이고, 장남의 도덕성 리스크는 상존한다. 이런 상황에서 그룹의 '최종 보루'이자 '구심점' 역할을 해야 할 이재현 회장 본인의 PI마저 붕괴하고 있다. 과거 이 회장은 "문화에는 죄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 대중은 묻고 있다. "문화를 이끄는 리더는 죄가 없는가?"

이재현 회장은 '문화'로 제국을 건설했지만, '그릇된 문화'로 인해 제국 전체를 위기에 빠뜨리고 있다. '온리원'을 외치던 그의 리더십이, 정작 사회적 공감대를 얻는 데는 '제로(Zero)'였음이 드러난 순간이다. CJ의 진짜 위기는, 어쩌면 재무제표가 아니라 총수의 '파티'에서 시작되고 있다.

이재훈의 X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