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영 기자의 월드아이 17] AI '거품' 붕괴, 글로벌 기술주 조정국면 진입

미국 셧다운과 금리인하 기대 후퇴에 '혹한기' 오나 기술주 랠리 종언...구조적 악재 속 '완벽한 폭풍' 경고

2025-11-06     김소영 기자
미국 셧다운 장기화와 금리인하 가능성이 낮아지면서 AI 발 기술주의 상승랠리가 주춤하며 조정국면에 접어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CEONEWS=김소영 기자] 2025년을 화려하게 수놓았던 인공지능(AI) 반도체 중심의 기술주 랠리가 마침내 냉혹한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 지난 4일(현지시각) 'AI 거품론'이 뉴욕 증시를 덮치며 나스닥 지수가 2% 넘게 급락한 데 이어, 5일 아시아 증시가 연쇄 폭락하며 전 세계 금융 시장에 경고등이 켜졌다. 이는 단순한 일시적 차익 실현을 넘어, 글로벌 거시경제를 짓누르는 구조적 악재들이 수면 위로 부상한 결과라는 비관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사상 최장기 기록을 경신 중인 미국 연방정부 셧다운(일시적 업무정지) 사태와 끈질긴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금리인하 기대 후퇴라는 두 개의 거대한 암초가 기술주라는 화려한 배를 좌초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37% 폭등했던 AI 신화의 균열... "파티는 끝났다"

올해 글로벌 증시를 견인한 것은 단연 AI 반도체였다. AI 인프라 투자 열풍에 힘입어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SOX)는 10월 21일 기준 연초 대비 37.3%나 폭등하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엔비디아, AMD 등 주요 반도체 기업들은 시장의 기대를 뛰어넘는 실적을 예고하며 거침없는 질주를 이어왔다. 하지만 이 뜨거운 열기는 '빅쇼트'의 실제 인물로 유명한 마이클 버리가 AI 관련주인 팔란티어에 대한 대규모 공매도 포지션을 취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급격히 냉각됐다. 지난 4일, 팔란티어는 8.13%, 엔비디아는 3.25%, AMD는 2.63% 급락했으며, 5일(한국시각) 장중 코스피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마저 각각 7~9%대 폭락세를 보이는 등 충격파는 전 세계로 확산했다.

글로벌 데이터는 이 하락세가 단순한 조정을 넘어설 수 있음을 시사한다. SOX 지수는 10월 29일 7,392.64포인트로 정점을 찍은 뒤, 불과 며칠 만인 11월 4일 6,979.57포인트로 마감하며 4.01% 폭락했다. 이는 9~10월간 28.9%나 급등했던 한국 코스피 등,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던 시장일수록 더 큰 충격을 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시장은 그간 'AI가 모든 것을 바꿀 것'이라는 기대감 하나만으로 달려왔지만, 이제는 그 '가치(Valuation)'에 대한 근본적인 의구심이 제기되는 국면이다. 월스트리트의 한 애널리스트는 "AI 투자가 실제 수익으로 전환되기까지의 시차와 불확실성을 시장이 재평가하기 시작했다"며 "단기 과열에 대한 경계심이 확산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사상 최장 36일' 美 셧다운, 실물 경제를 삼키다

미국 셧다운 장기화와 금리인하 가능성이 낮아지면서 AI 발 기술주의 상승랠리가 주춤하며 조정국면에 접어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기술주 고평가 논란에 기름을 부은 것은 워싱턴발 정치 리스크다. 11월 5일부로 미국 연방정부 셧다운은 36일째를 맞이하며 미국 역사상 최장기 셧다운이라는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세웠다.미국 의회예산국(CBO)은 이번 셧다운 사태로 인해 미국 경제가 최대 140억 달러(약 18조 원)에 달하는 영구적인 GDP 손실을 볼 것이라 경고했다. 이는 2025년 4분기 GDP를 1~2%포인트가량 직접적으로 끌어내리는 수치로, 단순한 통계상의 수치를 넘어 실물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주고 있다.

11월 1일부터 4,200만 명에 달하는 저소득층의 식품 지원 프로그램(SNAP)이 중단됐고, 약 140만 명의 연방 공무원이 급여를 받지 못하고 있다. 실물 경제의 모세혈관인 소비가 급격히 얼어붙기 시작한 것이다. 당장 먹고사는 문제가 시급해진 상황에서 AI가 창출할 먼 미래의 수익은 시장 참여자들에게 더 이상 매력적인 이야기가 되지 못하고 있다. 셧다운 장기화는 기업의 투자 심리를 위축시키고, 경제 전반의 불확실성을 극대화하며 안전자산 선호 심리를 부추기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최근 보고서에서 "셧다운이 12월까지 지속될 경우 미국 경제 성장률이 연간 0.5%포인트 추가 하락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끈적한' 물가에 막힌 금리인하... 연준의 딜레마

시장의 기대를 꺾은 또 다른 축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다. 연준은 지난 10월 29일,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하며 올해 두 번째 금리 인하를 단행했다. 하지만 시장은 환호하지 않았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기자회견에서 12월 추가 금리 인하에 대해 "결코 기정사실이 아니다(not a foregone conclusion)"라고 선을 그었기 때문이다. 연준의 이런 신중론의 배경에는 '끈적한(sticky)' 인플레이션이 자리하고 있다. 최근 발표된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여전히 3% 수준으로, 연준의 목표치인 2%를 크게 상회하고 있다. 셧다운 사태로 노동 시장이 냉각되고 있음에도 물가는 잡히지 않는, '스태그플레이션'의 초기 징후마저 엿보인다는 우려가 나온다.

설상가상으로 셧다운이 장기화되면서 고용보고서 등 핵심 경제 데이터 발표가 중단되는 '데이터 블랙아웃' 현상까지 발생했다. 연준은 "민간 데이터를 참고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사실상 '시계 제로' 비행을 하는 셈이다. 이런 불확실성 속에서 연준이 시장의 기대처럼 공격적인 금리 인하에 나설 가능성은 희박해졌다.

JP모건의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연준이 인플레이션과 경기 둔화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져 있다"며 "올해 남은 기간 동안 추가 금리 인하는 최대 1회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 '희망'이 사라진 시장, 장기 하락 추세의 서막인가

미국 셧다운 장기화와 금리인하 가능성이 낮아지면서 AI 발 기술주의 상승랠리가 주춤하며 조정국면에 접어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결국 2025년의 기술주 랠리는 '미래 수익에 대한 희망'과 '저금리 기조(유동성)에 대한 희망'이라는 두 개의 기둥 위에 서 있었다. 하지만 지금, AI 거품론은 전자의 기둥을, 셧다운과 고금리 우려는 후자의 기둥을 동시에 무너뜨리고 있다. 한때 모든 자산 가격이 오르던 '에브리싱 랠리(Everything Rally)'는 이제 끝났다. 글로벌 투자자들은 화려한 꿈에서 깨어나 얼어붙은 실물 경제와 긴축의 그림자를 마주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아직 '추세 전환'을 논하기는 이르다고 진단하면서도, 시장을 짓누르는 거시경제의 무게는 그 어느 때보다 무겁다고 입을 모은다. 미국의 정치적 리스크와 연준의 정책적 한계가 명확해진 이상, 이번 조정이 단기 과열 해소를 넘어 글로벌 증시의 장기 하락 추세를 알리는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비관론에 그 어느 때보다 힘이 실리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의 한 전략가는 "당분간 변동성이 확대될 것으로 보이며, 투자자들은 포트폴리오 방어에 나서야 할 시점"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특히 고평가된 기술주에 대한 비중 축소와 배당주, 방어주로의 자산 재배분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시장은 이제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야 하는 기로에 섰다. AI라는 장밋빛 미래와 현실의 거시경제 사이에서, 투자자들의 선택이 향후 글로벌 증시의 방향을 결정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