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남의 폴리코노미 13] 북극항로, "신기루인가 신대륙인가?" ③대한민국 북극항로의 미래

야망의 연대기 - 한국 북극 정책에 대한 비판 신기루를 넘어 - 대한민국을 위한 실사구시(實事求是) 전략

2025-08-20     박수남 기자
[박수남의 폴리코노미 13] 북극항로, "신기루인가 신대륙인가?" ③대한민국 북극항로의 미래 (CEONEWS=박수남 기자)

[CEONEWS=박수남 기자] 북극항로라는 거대한 전환기 앞에서 대한민국은 어떤 나침반을 가지고 어디로 향해야 할까? 막연한 기대로 항로 이용자로 머물 것인가, 아니면 현실을 직시하고 새로운 길을 개척할 것인가? 3부에서는 항로 이용이라는 수동적 포지션에서, 대한민국의 강점인 첨단 기술력을 극대화하는 핵심 기술 선도자가 되어 쇄빙선·친환경 선박 기술을 선점하고, 과학·환경 외교를 통해 국제 사회에 기여하며, 불확실한 상업 운항이 아닌 장기적 국가 역량 강화에 초점을 맞추는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지혜에는 어떤 것이 있을지 살펴보겠다. 북극항로라는 거대한 파도 위에서 표류하지 않고, 스스로 파도를 만드는 게임 체인저가 되기 위한 대한민국의 길을 모색해본다.

[박수남의 폴리코노미 13] 북극항로, "신기루인가 신대륙인가?"

③대한민국 북극항로의 미래

야망의 연대기 - 한국 북극 정책에 대한 비판

대한민국의 북극을 향한 여정은 2013년 북극이사회(Arctic Council) 영구 옵서버 자격을 획득하면서 본격화되었다. 이는 북극 관련 국제 논의에 참여할 수 있는 외교적 교두보를 마련한 중요한 성과였다. 이후 정부는 쇄빙연구선 아라온호를 건조하고 다산과학기지를 운영하며 과학 연구 역량을 축적해왔다.

최근 들어 북극항로에 대한 정책적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이재명 정부의 국정과제 포함을 필두로 , 여야를 막론하고 북극항로 개발 및 지원 특별법안이 잇달아 발의되었고 , 정부 부처와 공공기관, 민간 기업이 참여하는 각종 지원단과 협의체가 속속 출범했다. 국회와 관련 기관들은 연일 정책 토론회를 개최하며 북극항로 시대의 도래를 기정사실화하고, 한국이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는 당위성을 역설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적 열망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냉정한 현실 분석보다는 희망 섞인 기대가 앞서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앞서 1부와 2부에서 심층적으로 분석했듯이, 북극항로는 아직 해결해야 할 경제적, 기술적, 환경적, 지정학적 난제들이 산적해 있다. 현재의 정책 담론들은 이러한 차가운 현실에 대한 깊이 있는 고찰 없이, 부산항의 물류 허브 도약이나 조선업의 새로운 먹거리와 같은 장밋빛 청사진을 반복적으로 제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정책과 현실의 괴리를 낳을 위험이 크다. 막대한 국가 예산과 자원이 투입될 수 있는 중차대한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실현 가능성이 불투명한 꿈을 좇아 정책이 수립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국가적 차원의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신기루를 넘어 - 대한민국을 위한 실사구시(實事求是) 전략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북극이라는 거대한 기회와 도전 앞에서 어떤 길을 가야 하는가? 신기루를 좇아 불확실성에 모든 것을 거는 대신, 현실에 발을 딛고 실질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지혜가 필요하다. 이는 북극항로를 무조건 외면하자는 패배주의가 아니다. 오히려 북극항로의 현재적 한계를 명확히 인식하고, 대한민국의 진정한 강점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전략의 초점을 전환하자는 현실주의적 제안이다.

수동적으로 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항로 이용자(Route Taker)가 아니라,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가치를 창출하고 시장을 선도하는 틈새시장 선도자(Niche Leader)로 국가 전략을 재설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항로 이용자에서 핵심 기술 선도자로 전환해야 한다. 북극항로를 통해 오고 갈 불확실한 물동량에 국가의 미래를 거는 대신, 대한민국의 세계 최고 수준인 조선 및 ICT 기술력에 집중해야 한다.

정부의 R&D 지원과 정책의 최우선 순위는 항로 이용이 아니라 극지 기술 개발 및 상용화가 되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친환경 LNG 추진 쇄빙·내빙 선박 건조 기술, △혹한 환경에서의 자율운항선박 기술, △인공위성을 활용한 실시간 유빙 탐지 및 최적 항로 분석 기술, △국제적 규제가 예상되는 블랙 카본 저감 기술(고효율 필터, 대체 연료 등)과 같은 고부가가치 분야를 선점해야 한다. 이는 우리의 강점을 활용하는 길이며, 북극항로의 상업적 성공 여부와 무관하게 전 세계적으로 수요가 발생할 수 있는 확실한 시장을 개척하는 전략이다.

또한 상업 물류에 대한 전략적인 인내가 필요하다. 대규모 정기 상업 운항이 안정적으로 이루어지기까지는 수십 년이 걸릴 수 있다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막연한 물동량 예측에 기반하여 부산항이나 동해안의 항만에 대규모 인프라를 선제적으로 투자하는 것은 막대한 예산 낭비로 이어질 수 있다.

대신, 정부는 전략적 인내를 가지고 제한적인 규모의 시범 운항을 지원하여 실제 운항 데이터를 축적하고, 운항 경험을 가진 전문 인력을 양성하며, 학술적 경제성 모델을 현실에서 검증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이는 저비용으로 실질적인 역량을 축적하며 미래의 기회가 현실화되었을 때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길이다.

그리고 중견국으로 과학과 환경의 외교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북극에 대한 영유권 주장이 없는 비연안국이자 세계적인 과학기술 역량을 보유한 중견국이라는 독특한 외교적 자산을 가지고 있다.

이를 활용하여 북극 거버넌스에서 책임 있는 기여자로서의 위상을 구축해야 한다. 특히 기후변화와 환경보호라는 전 지구적 의제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국이 강점을 가진 관측 기술을 활용하여 북극 해빙과 기후변화에 대한 국제 공동 연구를 주도하고, 앞서 언급한 블랙 카본 배출량 측정 및 저감 기술의 국제 표준을 수립하는 데 앞장서는 것이다. 이는 환경 위기를 외교적, 산업적 기회로 전환하고, 북극권 국가들로부터 신뢰를 얻어 우리의 국익을 확보하는 현명한 전략이다.

끝으로 꿈이 아닌 현실을 위한 법을 제정해야 한다. 현재 논의되는 북극항로 특별법은 그 목적과 방향을 재정립해야 한다. 아직 경제성이 불투명한 상업 운항을 활성화하기 위해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식의 법안이 되어서는 안 된다.

대신, 이 법은 대한민국의 장기적인 극지 역량을 강화하는 백년대계의 초석이 되어야 한다. 법의 핵심 내용은 △극지 핵심 기술 R&D에 대한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예산 지원, △극지 전문 과학자, 기술자, 국제법 전문가 등 인재 양성 시스템 구축, △북극 관련 국제법 및 규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범부처 정책 역량 강화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이는 신기루를 좇는 대신, 미래에 실질적인 기회가 왔을 때 그것을 확실히 잡을 수 있는 유연하고 탄탄한 국가적 역량을 기르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