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량의 덫’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이우창 HSG휴먼솔루션그룹 소장

스타급 운동선수의 은퇴 기자회견에 꼭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대화가 있다. “향후 계획은 어떻게 되십니까” “네, 공부를 더 한 다음 지도자의 길을 가려고 합니다.” 구단 관계자도 옆에서 거든다. “구단 측에서도 적극 지원할 계획입니다.”

현역 시절 잘 나가던 선수라면 은퇴 이후 지도자의 코스를 밟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긴다. 감독이 되어서도 현역 때처럼 당연히 잘 할 거라는 기대를 한다. 반면 무명 선수들은 현역 때 성적이 별 볼일 없었기 때문에 지도자 노릇도 제대로 못 할 거라고 여긴다. 왜들 이럴까? 타율이 높고 홈런을 많이 치는 것과 우수한 선수를 스카우트하고 육성해서 좋은 팀워크를 만들어내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인데 말이다. 실제로 현역 시절 펄펄 날던 선수들도 그저 그런 지도자로 끝나는 경우도 많고, 스타 플레이어 출신은 아니지만 지도자로 좋은 성적을 올리는 사람도 적지 않다.

어디 프로 스포츠에서뿐이겠는가? 어느 회사에나 “대리급 이사”님이 한두 분은 계신다. 직급은 이사지만 하는 행동은 대리 때와 달라진 게 없는 분들을 빗대서 부르는 호칭이다. 이 분들은 “오탈자를 유난히 잘 찾아내거나, 보고서 형식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등” 남들과 구별되는 자신만의(?) 뚜렷한 특징이 있다. 그러다 보니 임원에게 기대되는 성과를 내지는 못하고, 쓸데없이 까다로운 상사로만 기억된다. 회사에서 과거의 업무성과를 기초로 승진대상자를 결정하기 때문에 종종 벌어지는 현상이다.

회사에 갓 입사한 사원이나 대리에게는 정해진 시간 내에 정해진 절차와 방법으로 일을 정확하게 수행할 것이 요구된다. 이제 직급이 조금 올라 관리직이 되면 다른 역할이 요구된다. 주어진 전략이나 큰 틀 안에서 재량권을 발휘해 일을 조정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관리자의 역할을 잘 수행하기 위해서는 원칙 그 자체에 고지식하게 매달리기 보다는, 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적용하는 유연성이 필수다. 이에 비해 임원에게 요구되는 역할은 조직 전체의 큰 틀을 짜고, 회사가 나아갈 방향을 결정지어주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업무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특정 업무나 기술이 아니라 전사적 관점을 가져야 한다. 균형 감각도 중요하다.

이렇게 볼 때, 하위직급에 요구되는 업무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축적한 역량은 중간관리 역할을 수행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현재 직책에서 높은 성과를 만들어내는데 필요한 역량을 많이 갖고 있다고 해서 상위 직책으로 승진되어서도 여전히 높은 성과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다. 새로운 역할은 새로운 기술을 요구하는데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을 “역량의 덫”에 빠졌다고 한다.

따라서 승진 의사결정은 과거나 현재가 아닌 미래에 그 사람이 수행해야 할 역할에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는 역량과 태도를 가지고 있는지 여부로 판단해야 한다. 중간 관리자로서 출중한 성과를 창출하고 뛰어난 역량을 과시한 것이 상위 직책에서의 성과를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승진한 사람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직책에서 성공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과거의 나를 잊는 것이다. ‘내가 예전 자리에서 얼마나 일을 잘 했었는데… 새로운 자리에서도 그 방식대로 더 잘 해봐야지!’ 하는 생각을 빨리 버릴수록 ‘역량의 덫’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HSG 이우창 소장 프로필>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학사, 석사, 박사
Schulich School of Business (York University) MBA
HSG 휴먼솔루션그룹 경영전략연구소장
IGM 기업교육본부 부본부장
한국능률협회 컨설팅(KMAC)전략그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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