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을 주지 않아도 갈등이 해결된다?

최철규 HSG휴먼솔루션그룹 대표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힌 조직 속에서 갈등을 피할 순 없다. 그래서 리더들은 항상 고민한다. 어떻게 하면 갈등을 제대로 풀어낼 수 있을까? 이 때 바쁜 리더들의 선택은 의외로 간단하다. 싸우는 둘을 불러서 ‘답’을 내 주는 것. 자, 이걸 제대로 된 갈등 해결이라 말할 수 있을까? 미안한 얘기지만, 아니다. 당장의 급한 불은 껐을지 몰라도 온전한 의미의 갈등 해결은 아니다. 리더의 지시를 받아 든 두 사람은 찜찜한 마음으로 또 다른 갈등을 준비하고 있을 확률이 크다. 남의 떡이 커 보인다고, 리더의 판단이 상대에게만 유리하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 그럼, 답을 내 주지 않고 부서원들 간의 갈등을 관리할 방법은 뭘까?

옛날 로마인들의 지혜를 빌려보자. 고대 로마 사람들은 부부 싸움이 격해지면 “비리플라카 여신의 신전”에 찾아 갔다. 신전에 ‘4주 후에 만납시다’ 같은 해결책을 내려주는 TV 가정 법원 속 신구 선생님이 있는 게 아니다. 그 곳엔 아무도 없다. 부부싸움을 해결하는 방법은 이렇다. 잔뜩 화가 난 부부는 여신상 앞에서 각자의 분노를 쏟아낸다. 부부 중 한 사람이 자신의 화를 뱉어 낼 때 옆에 있는 다른 한 명은 반드시 침묵해야 한다. 그렇게 한 사람의 이야기가 끝나면, 다른 한 사람이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런 방식으로 서로 지칠 때까지 여신을 상대로 방백한다.

이것이 어떻게 갈등을 ‘해결’할 수 있냐고? 속 얘기를 하다 보면 마음이 후련해지고, 상대에 대한 증오가 어느 정도 증발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운이 좋으면 상대를 이해할 수도 있다. 이처럼 자신의 ‘억울한 상황’을 쏟아내는 것만으로도 갈등은 해결될 수 있다.

이는 고대의 얘기만이 아니다. 필자는 현재 서울시 법원제도 개선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사법부의 다양한 활동을 접하고 있다. 법원에는 정말 수많은 사람의 억울한 사연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를 다 들어주다 보면 제대로 판결을 내리기 힘들다. 그래서 ‘효율성’이라는 명분 하에 속전속결의 판결이 이뤄져 왔다.

하지만 이제 법원도 바뀌고 있다. 법원의 제도개선을 위한 중점과제 중 하나로 ‘충분한 소명 기회 주기’를 꼽은 것이다. 내가 얼마나 억울한지,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충분히 말할 기회를 주자는 것. 이처럼 스스로 말할 기회를 주는 것만으로도 항소율을 낮출 수 있었다. 그럼 자연히 전체 판결의 양도 줄어들 것이니, 법원 입장에서도 환영할 만한 일이다.

답이 뻔한 문제로 싸우는 둘. 리더는 본능적으로 ‘답’을 주고 싶다. 판결을 내려줘야 하는 판사처럼. 하지만 일단 참자. 그들이 쓸데없는 넋두리를 하는 것 같더라도 기다려 주자. 대신 부하직원들이 스스로 그 답을 만들어 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사람은 자신이 뱉은 말에 대해선 책임을 져야 한다는 본능이 발동하므로. 기억하자, 모든 갈등 관리의 핵심은 ‘참여’라는 사실을.

<HSG 휴먼솔루션그룹 대표 최철규>

현) HSG 휴먼솔루션그룹 대표
현) 조선일보 Weekly Biz 고정 칼럼니스트
南開大(남개대) EMBA 겸임교수
IGM 부원장/ 협상스쿨 원장
전략커뮤니케이션 대가
한국경제신문 경제부, 금융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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