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을 탄핵소추하면서 국회는 위법에 대한 조사와 토론절차를 거치지 않았고 13개 소추사유를 하나의 안건으로 표결하였다. 이에 대하여 헌법재판소의 선고문은 “국회의 탄핵소추 가결절차에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위법”이 없었으므로 “국회의 의사절차의 자율권은 권력분립의 원칙상 존중되어야” 한다고 쓰고 있다.

한편 선고문은 “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에 따라 권한을 행사하여야 함은 물론, 공무 수행은 투명하게 공개하여 국민의 평가를 받아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대통령의 부적절한 행동으로 인하여 “국회 등 헌법기관에 의한 견제나 언론에 의한 감시 장치가 제대로 작동할 수 없었다”고 지적하며 대통령의 법위반 행위가 중대하다고 결론지었다. 대통령의 권한행사에 대하여는 합법성 뿐 아니라 국회나 언론의 견제와 감시가 가능한 수준의 투명성 및 공개성까지 요구한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대통령과 국회 간의 다툼을 중재하는 제3자로서 국회 권력은 자의적 행사를 방임하면서 대통령의 권한은 엄격히 제한한다는 입장을 취했다. 선고문이 지난 몇 달 동안 촛불민심을 앞세운 의회 권력의 독주를 합법화시켜 준 셈이다.

삼권분립의 균형상실이 정치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체 그림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관련 사건들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시작은 대통령의 통치실패에서 비롯되었다.

최순실의 국정개입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고 나서 이를 인정하는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가 나온 후 촛불집회가 시작되었다. 이어서 김병준 교수가 기자회견을 자청하여 차기 총리후보로 지명되었음을 밝히며 야당의 협조를 당부했고, 야당이 이를 거부하고 국회추천 총리임명을 요구하자 대통령이 국회의장을 찾아가 그를 수용하겠다고 했다. 야당이 자기요구를 번복하여 철회하자 대통령은 “여야 정치권이 논의하여 국정의 혼란과 공백을 최소화하고 안정되게 정권을 이양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주시면 그 일정과 법 절차에 따라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는 세번째 대국민담화를 발표했다.

더불어 민주당은 박근혜 대통령의 수습안을 모두 거절하고, 야당추천 검사들로만 구성하는 특검을 개설했다. 촛불시위대가 청와대 근처로 몰려가자, 민주당은 국민주권론을 펼치며 대통령 탄핵을 주장했다.

그들의 주장대로 촛불시위가 민심이고 주권자 국민의 뜻이라면, 촛불시위에 대항해 일어난 태극기 시위는 무엇인가? 둘 중 하나는 국민을 참칭하는 집단이 되는 것인가? 그 실은 국론분열에 다름 아니다. 국회가 조사와 토론 절차를 생략한 채 탄핵소추를 서두른 것과 헌법재판소가 재판관 임기에 맞추어 허둥지둥 결론을 낸 것이 모두 국론분열에 기여했다.

국민의 뜻을 참칭하는 정치인들이 대통령의 퇴로를 차단하고 국회로 하여금 탄핵소추에 나서게 했고, 헌법재판소도 참칭자들에게 동조하는 선고문을 작성했다. 참칭자들은 법과 제도에 의한 대통령 탄핵을 법치주의의 승리라고 말하지만, 그 내용을 보면 합의 퇴진시킬 수 있는 대통령을 탄핵하면서 헌정질서상의 권력분배구조를 국회우위로 변질시켰다. 국민의 뜻을 참칭하는 광장정치는 중우(衆愚)정치다.

정당정치가 유능한 정부를 만들어내지 못하여 통치실패를 초래했고, 실패한 정부를 교체하는 정치과정에서 헌정질서의 안정성을 지켜내지 못했다. 광장에 의존하려는 권력욕이 헌정질서를 망가뜨린다. 광장정치로 헌정질서의 안정성이 무너지면 국가질서와 민주주의가 양립할 수 없게 된다. 국가질서 없이는 민주주의를 실천할 수 없다. 민주주의 없는 국가질서는 북한과 같은 처참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통치실패와 정치실패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정치를 바로 세우려면 시민들이 헌정질서의 안정성을 해치는 정치인들의 경거망동을 단속해야 한다. 다수 시민들이 정치적 방관자에서 적극적 참여자로 변해야 한다. 정치인들을 제대로 비판하고 감시해야 그들이 함부로 날뛰지 못할 것이다.

(*이 칼럼은 ‘선진사회만들기연대’에서 기고한 내용입니다.)

 

필자소개

임수환 ( suhwan.lim@gmail.com )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원

국립대만대학교(NTU) 정치학과 교환교수

Journal of East Asian Affairs, 편집장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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