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입장벽을 활용해

어린 시절 어머니는 ‘도깨비 시장’에 다녀오시곤 했다. 도깨비 시장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도대체 뭘 파는 곳이기에 이름이 도깨비 시장일까?’ 궁금했다. 도깨비 시장은 무허가 시장이고, 단속반이 뜨면 자취를 감추었다가 단속이 끝나고 나면 다시 생기는 시장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한참이 지나서였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도깨비라는 이름이 붙었을까? 우리 말에 ‘개비’라는 표현이 있다. 성냥개비나 장작개비를 떠올려보면 알 수 있듯이, 개비는 가늘게 쪼개진 나뭇가지를 말한다. 비록 나무는 아니지만 ‘담배개비’ 역시 가늘고 긴 형상 덕분에 이런 이름을 가지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 개비 위로 다른 사물이 덧씌워진 것처럼 보이면 덧개비(도깨비)가 되고, 아무 것도 없는데 마치 있는 것처럼 보이면 허깨비(헛개비)가 된다. 그러고 보니 도깨비 시장이라는 것도 정해진 장소에서 상설적으로 열리는 것이 아니었다. 빈 공터가 시장이 되었다가 다시 흔적도 없이 공터가 되는 등 무쌍하게 변화한다. 도깨비라는 이름이 붙은 것도 이 때문이리라.

조선시대에는 국가가 공식적으로 지정한 시장이 있었다. 국가는 왕실이나 조정에서 필요한 물건을 납품하는 상인들에게 ‘시전’이라 불린 곳에서 장사할 수 있는 자격을 주었다. 그런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 물건을 사고파는 곳을 ‘난전’이라 불렀다. 초창기 난전 상인들은 주로 군인이었다. 왜란과 호란을 거치면서 늘어난 군인들을 먹여 살릴 충분한 돈이 없던 정부가 일종의 투잡을 허가해 준 것이 난전의 시초다. 당시 군인들은 최상급의 군포로 보수를 받았는데 이를 내다 팔 수 있게 해준 것이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본업보다 세컨드 잡에 몰입하는 군인 장사꾼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돈이 된다면 너도 나도 달려드는 것이 예나 지금이나 인지상정이다. 이처럼 신규 진입자들이 늘어나면 기존 사업자들의 수입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지사. 시전 상인들로서는 우후죽순으로 늘어나는 무면허 장사꾼들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 시전 상인들은 국가에 호소했고, 마침내 ‘금난전권’을 얻어냈다. 금난전권은 난전을 금하고 특정 상품을 독점적으로 판매할 수 있는 권리다. 경쟁자들의 시장 진입을 가로막는 장치로 이처럼 강력한 것이 있을까? 하지만 법 적용을 아무리 강력하게 하더라도 숨쉴 구멍은 생겨나는 법. 난전 상인들은 금난전권의 효력이 미치지 않는 성문 바깥에 시장을 벌였다. 이것이 남대문 밖 봉래동과 동대문 쪽 배오개에 도깨비시장이 생기게 된 이유다.

이처럼 내 시장에 다른 경쟁자들이 못 들어오도록 만들어놓은 장애물을 ‘진입장벽(Entry Barrier)’이라 한다. 금난전권 같은 정부 규제나 특허는 훌륭한 진입장벽이 된다. 하지만 정부 규제나 특허를 진입장벽으로 활용할 수 있는 회사가 얼마나 될까? ‘어차피 우리 회사와 상관도 없는 얘기인데’, 지레 포기하지 말고 조금만 더 고민을 해보자. 진입장벽으로 활용할 수 있는 수단은 특허나 규제 말고도 여러 가지가 있다. 잘만 활용하면 후발주자를 견제하는 좋은 방어막을 만들 수 있다.

제조업체라면 ‘규모의 경제’를 진입장벽으로 활용할 수 있다. 규모의 경제란 생산량이 많아질수록 단위 상품의 단가가 낮아지는 것을 말한다. 스마트폰의 터치 스크린이 좋은 사례다. 초창기에 사용된 ‘고릴라 글라스’라 불리는 이 유리는 원래 자동차 앞 유리창의 스크래치를 방지하기 위해 유리업체인 코닝에서 개발했다. 하지만 자동차 업계에서 찾아주는 수요가 많지 않았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았던 스마트폰에서 수요가 생기더니 시장이 점점 커져갔다. 기존 핸드폰과는 달리 터치 스크린을 사용하는 스마트폰의 특성상 스크래치가 생기면 오작동을 피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의외의 분야에서 수요가 발생하고 매출이 늘어나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다. 문제는 스크래치 방지 기술의 특허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경쟁업체들이 특허 만료만 기다리면서 고릴라 글라스 생산 준비를 차곡차곡 해나가고 있을 무렵, 코닝에서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리고 대대적인 설비 증설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자 시장 진입을 준비하던 많은 업체들은 입맛만 다시면서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이미 많은 수량을 생산하고 있는 코닝이 생산량을 더욱 늘린다면 원가는 훨씬 저렴해질 것이고, 그런 규모의 경제를 후발주자로서는 따라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업종이라면 유통망도 진입장벽으로 활용할 수 있다. 외환위기 이후 출시된 815 콜라는 콜라 독립을 모토로 대대적인 마케팅을 펼친 결과, 한때 13%라는 경이적인 시장 점유율을 기록하기도 했다. 코카콜라와 펩시콜라가 양분하고 있는 콜라 시장에서 로컬 업체가 3% 이상의 시장 점유율을 기록한 것은 전세계적으로 815가 처음이었다니, 대단한 돌풍이었음에 틀림없다. 하지만 815의 선전은 딱 거기까지였다. 두 글로벌 음료회사가 장악하고 있는 유통망 속에서 815 콜라가 끼어들어갈 여지는 많지 않았다. 우리가 장악하고 있는 매대나 소유하고 있는 자판기에 굳이 경쟁 상품을 가져다 놓을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지는 법. 815는 사람들의 관심에서 사라질 수 밖에 없었다.

뿐만 아니다. 차별화된 브랜드 이미지를 활용할 수도 있다. 해외 명품 가방의 가격이 수백만 원을 넘어가지만 아무 브랜드나 그런 가격을 붙이진 못한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특별한 가치를 제공하는 브랜드’란 이미지를 소비자 머리 속에 각인시켜 놓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처럼 소비자에게 각인된 차별화된 이미지로 진입장벽을 쌓아놓으면, 다른 업체들이 쉽게 그 시장을 넘보지 못한다.

자, 정리해보자. 갖은 고생을 해가면서 어렵게 자리를 잡았더라도 후발주자들이 몰려들면 수익은 낮아질 수 밖에 없다. 어떻게 하면 새로운 경쟁자들이 쉽게 시장에 못 들어오게 막아낼 수 있을까? 지금까지 알려진 것들 말고도 새롭고 참신한 진입장벽을 고민해 보자. 우리 회사의 시장 공간을 오랫동안 지켜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우창 HSG휴먼솔루션그룹 경영전략연구소장 프로필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학사, 석사, 박사

Schulich School of Business (York University) MBA

현) HSG 휴먼솔루션그룹 경영전략연구소 소장

MBC 라디오 "손에 잡히는 경제" <10분 경영학> 진행

IGM 기업교육본부 부본부장

한국능률협회 컨설팅 (KMAC) 전략그룹장

(주)현대중공업 선박해양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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