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력 제조업의 생산 및 수출 차질 우려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상근자문위원

[CEONEWS=이지평 LG경제연구원 상근자문위원] 우려되어 왔던 것처럼 일본정부가 결국, 한국에 대한 보복조치를 감행했다. 일본 자민당 외교부회 등에서는 국회의원들이 한국에 대한 보복 조치를 계속 요구해 온 상황이었는데, 일본정부도 참의원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보복조치를 결정한 것이다. 한국에 대한 보복은 일본기업 등에도 피해가 발생하고, 국제적 비판, 한국의 반발도 피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일본으로서도 주저하지 않을 수 없는 측면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고민과 준비를 거쳐 보복을 결정했기 때문에 일본정부로서는 그들이 원하는 일정한 목표의 달성 없이 한국에 대한 보복을 쉽게 철회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반도체, 디스플레이에 이어 주력 제조업이나 농업 등에서도 일시적인 생산 및 수출 차질이 발생할 우려가 있으며, 이것이 경기가 악화된 한국경제에 적지 않는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일본의 1차적인 보복조치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의 핵심 소재인 포토레지스트, 고순도 불화수소,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등 3개 품목에 대한 수출 허가를, 3년간 유효한 포괄 신청대상에서 수출계약마다 허가를 받아야 할 개별심사제로 바꾼 것이다. 이들 품목은 일본기업의 세계시장 점유율이 70%에서 90% 정도가 되며, 영향력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이들 제품을 활용한 한국의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의 수출 규모는 지난 5월 기준으로 전체 수출의 20% 정도를 차지할 정도로 중요하다. 수출은 한국경제 규모의 30% 정도를 차지하기 때문에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의 생산이 멈출 경우 큰 충격이 발생하게 된다. 일본으로서는 행정절차의 조정만으로 한국경제의 심장부에 충격을 줄 수 있는 보복조치를 선택한 셈이다. 
 
한국은 일본의 무역관리 제도상 미사일 등 군사 관련 물자에 대한 리스트(List)규제 이외의 모든 품목을 대상으로 한 규제제도인 캐치올 규제(Catch-All Controls)상 혜택을 받는 27개 국가(소위 ‘화이트(White)국가’)에 속한다. 화이트(White)국가에는 포괄적 허가 제도가 적용되기 때문에 일본정부는 한국만을 대상으로 한 국가 분류를 새로 만들고 3개 품목을 규제하는 작위성을 보였다. 그리고 일본정부는 8월 정도에 한국을 화이트(White) 국가 분류에서도 제외해 한국에 대한 수출을 개별적으로 심사할 가능성이 있다고 발표했다. 이 경우 수많은 품목에서 한국에 수출하려는 일본기업의 제출서류 부담이 확대된다. 일본 수출기업으로서는 수입하는 한국기업이 테러 등과 연루되지 않는 올바른 기업인지, 일본기업의 수출제품의 사용 용도가 무엇인지 등 일본의 안전보장상 문제가 없다는 것을 입증해서 허가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이 캐치올 규제에는 식품, 목재 등을 제외한 기계, 전자, 수송, 정밀, 금속, 요업, 완구, 산업용 섬유 등 거의 모든 첨단제품이 규제대상이며, 설계도 등의 지식 및 기술교류도 제한하겠다는 취지를 가지고 있다. 첨단제품을 제조하고 있는 일본기업과의 상담이나 기술적 협의를 일본이나 한국 및 제3국에서 실시하는 것도 규제대상이 된다. 
 
반도체, 디스플레이용 3개 품목에 대한 규제와 기타 광범한 제조품에 대한 규제는 보통 3개월 정도의 심사기간이 소요되고 있으며, 주무관청인 경제산업성의 판단에 따라 수출허가를 받지 못할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리고 한국에 대한 3개 품목에 대한 허가 심사의 창구를 경제산업성의 경제산업국 및 통상사무소에서 본부의 안전보장무역심사과로 변경한 것도 부담이 될 수 있다. 물론, 3개월의 심사기간을 거쳐서 일본 제품의 수입이 이루어지면 그 동안 재고를 활용하거나 다른 국가의 조달선을 개척하면 한국 제조업의 생산에 차질이 발생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일본기업의 첨단 소재, 부품은 대체가 어려운 것도 많으며, 우리 기업의 재고 상황, 조달선 전환에도 한계가 있어서 여러 산업에서 일시적인 생산 및 수출 차질이 발생해 이것이 국내 중소기업, 공장 인근 지역경제, 고용 등에 악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사실, 일본의 화이트 국가 분류에서 제외된 국가의 사례가 없기 때문에 일본정부도 그 파장을 일본기업에 대한 간접적인 영향까지 포함해서 정확하게 사전에 인지하지 못한 상황이다. 일본정부도 규제를 강화하면서 이에 따른 영향과 파급의 정도를 면밀히 관찰하겠다고 언급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생산 차질은 재고가 확충되고 생산이 궤도에 오르게 되면 일시적인 현상에 그칠 수 있다. 사실, 중국, 대만 등은 화이트 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이들은 심사기간을 고려한 재고를 축적해 대응하고 있다. 다만, 이번 3개 품목의 심사 기관이 까다롭고 허가를 내지 않을 때 이관되는 안전보장무역심사과가 되었다는 점이 더 걱정이 된다. 경제산업성은 그동안 한국을 견제해 일본 반도체, 디스플레이 기업연합을 주도해 육성하는 데 주력하는 등 한국의 첨단산업의 부상을 견제해 왔던 부처이다. 이번 정치 외교적인 사태를 계기로 한국 산업 견제전략을 본격화할 수 있는 기회로서 활용될 우려도 있다.
 

주 : 한국 기업, 공공기관이 일본금융기관 해외거점(홍콩, 뉴욕 등)에서 조달한 자금(Cross Border)을 포함한 수치이며, 한국이 전세계의 일본계 금융기관으로부터 조달한 금액 기준임. 2018.9월 기준임.자료 : 일본은행, BIS 집계 수치를 일본은행이 독자적으로 일본계 금융기관에 대해서만 다시 계산해서 작성한 것임.

또한 한·일 간의 외교 현안을 해결하지 못할 경우 일본정부의 한국에 대한 보복 조치는 무역 이외의 금융, 기술 및 과학 교류, 비자, 젊은 층의 일본 취업 등의 다양한 분야로 확대될 위험성도 있다. 특히 일본은 세계최대의 순채권국이며, 그 영향력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일본계 금융기관이 한국 기업, 공사 등에게 제공한 여신 규모는 국제결제은행 집계 수치를 일본은행이 재계산해서 산출한 금액으로는 2018년 9월 기준으로 586억 달러, 약 69조원에 달하고 있다. 여기에는 한국에 있는 일본계 금융기관의 지점 이외에 해외에 있는 일본계 금융기관으로부터 조달한 금액도 포함되고 있다. 일본 측은 한국에 대한 여신을 총망라해서 관리 및 집계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일 관계가 악화되고 일본계 금융기관이 해외지점 등에서도 한국에 대한 여신을 제한할 수 있는 충격도 충분히 고려해야 하고 방심하면서 일본의 영향력을 과소평가해 대비에 허술함이 없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본과의 외교 현안에 대한 신속한 해결을 통해 정치문제가 경제 및 산업, 국민생활에 지대한 피해를 미치는 사태를 피하는 것이 중요한 시점이다.  
 
한국에 대한 일본 국민감정의 악화로 아베 내각이 강한 자세 견지
 
아베 내각이 이와 같은 강경한 조치를 단행하게 된 것은 징용공 문제나, 위안부 문제 등이 이미 해결된 것이라는 입장에서 한국에 대해 심하게 분노하고 있는 일본의 국민감정 악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작년 10월에 한국대법원이 징용공 문제에 대한 배상 판결을 내린 이후 한국정부가 위안부를 위한 ‘화해 및 치유재단’의 설립 허가를 취소하고, 일본 자위대의 저공비행 문제 등 한·일 간의 마찰과 대립을 심화시키는 사건이 발생해 왔다. 
 
일본의 이번 무역보복은 대량살상무기, 테러 대응 등을 위한 무역관리 제도를 활용한 것이며, 한국에 적용하는 것은 맞지 않는 측면이 존재한다. 그러나 아베 정권을 뒷받침하고 있는 강경 우파 세력의 경우 ‘한국은 신뢰할 수 없는 국가’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우파세력인 아오야마 시게하루 의원 등이 자민당 외교부회에서 초계기 사건을 맹비판하면서 한국에 대한 화이트(White)국가 혜택을 박탈하자고 일찍 주장하는 등 정부를 압박해 왔다. 
 
핵심 우파 세력에서는 이제 한국을 우호국가로 보지 않고 한국과의 산업, 기술, 무역 관계를 단절적으로 하자는 주장이 강해지는 한편 일본 국민들도 혐한(嫌韓) 감정이 커졌기 때문에 아베 내각은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지지세력의 결집을 노리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일본정부의 발표는 이번 조치에 대해 안전보장상의 우려 때문에 실시했다고 하는 한편 징용공 문제 등에 대한 보복이라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 코멘트도 발표하고 있다. 이는 이번 조치가 WTO(세계무역기구) 위반인지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지만 일본정부로서는 ‘한국에게 보복하고 분명하게 메시지를 전달해서 압박하라’는 일본의 핵심 우파들의 주장을 배려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번 3개 품목에 대한 무역보복 조치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만을 대상으로 한 무역국가 분류를 만들고 아직 화이트(White)국가인 한국에 대한 포괄적인 수출허가를 폐지할 수 있는 행정 제도를 정비하는 등 상당히 작위적인 부분이 크다. 일본정부의 조치는 WTO가 추구하는 자유, 무차별, 공정의 원칙에 위배하는 차별성이 강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내실을 키우고, 일본과의 신뢰관계 복원에 주력해야
 
일본정부의 보복 조치에 대해 우리가 보복이나 대대적인 불매운동 등으로 맞대응 하는 것은 연쇄적인 상호보복을 초래하여 한일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WTO 제소 움직임 등 일본이나 일본 국민들에게 한국의 분노와 일본 조치의 부당성을 일본 및 국제사회에 호소할 필요가 있으나 아베 내각의 조치에 대해 부정적인 일본 내 세력 등과의 협력이 중요할 것이다. 자유, 무차별, 공정의 WTO 원칙을 지키면서 보호주의가 강해지고 있는 세계에서 글로벌한 비즈니스 환경 유지에 주력할 필요가 있다. 
 
단기적으로는 일본기업으로부터 첨단 제품을 수입하고 있는 우리 기업으로서는 관련 품목의 재고(在庫)상황을 점검하면서 일본의 거래선 기업과 협력해서 재고의 확충, 일본기업의 제3국 해외 거점을 통한 조달 확대, 일본 이외의 거래선 기업 전환 기회 탐색 등에 주력할 필요가 있다.    
 
중장기적으로는 소재, 부품, 기계 등에 대한 대일의존도를 낮추고 관련 산업의 육성에 주력할 필요가 있다. 산업의 기초가 되고 대일의존도도 심한 첨단화학 소재나 산업용 로봇 등의 일반기계 분야 등을 집중적으로 강화할 필요도 있다. 
 
다만, 한·일 간의 보완적인 관계는 무역을 통한 분업으로 상호이익을 증진시킬 수 있는 것이며, 모든 품목을 국산화하고 자급자족 하겠다는 것은 가난해지는 길일 뿐 아니라 가능하지도 않을 것이다. 한국의 민주화 수준 고도화, 한·일 간 국민생활 수준 평준화, 일본의 재정적 여유 고갈 등 새로운 시대에 맞게 한일관계의 증진 및 고도화에 주력해야 할 것이다.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한일 우호 및 외교관계를 잘 계승하고 미비점이 있으면 보완하면서 발전할 수 있도록 정치 외교적인 현안을 해결하는 데에 주력해야 한다. 그래야 정치 및 외교가 국민생활이나 산업의 발전을 저해하는 일이 없도록 만전을 기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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