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정치’를 외치다

김관영 바른미래당 의원

[CEONEWS=권충현 기자] 50년 전이다. 만삭의 몸으로 군산의 새벽시장에 평상시와 마찬가지로 출근한 어머니는 베테랑 산모였던 듯하다. 예정일보다 이른 산기(産氣)에 서둘러 마무리를 하셨다. 버스에서 내려 또 한참을 걸어가야 집이 있었다. 그러나 이미 진행된 진통에 산모는 한 걸음도 옮기기가 힘드셨고, 마을 사람들의 도움으로 급조된 리어커에 몸을 실어 귀가를 했다. 보이는 것이라고 온통 들녘인 현 군산시 회현면의 한 자락을 급하게 내달리는 리어커가 집에 도착한 직후 태어났다. 이것이 김관영 의원의 ‘탄생설화’ 인, 일명 ‘리어커에서 태어날 뻔 한 아기’이다. 두고두고 모두가 회자하는 이날의 소동과 한바탕 웃음을 안기며 태어난 아이, 김관영 의원을 만나보자. <권충현 기자 21sgi@naver.com>

시간이 흘러서도 그는 범상치 않다. ‘고시3관왕’, 김관영을 말할 때 빠지지 않는 프로필이다.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말도 어색하지 않다. 공인회계사‧행정고시‧사법고시에 순차적으로 합격했다. 요즘 친구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넘사벽’(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이다. 공인회계사 시험의 경우 18세 10개월에 합격했다. 역대 최연소 합격 기록 타이틀을 수 십 년 가지고 있었다. 가까스로 최근 깨진 실로 대단한 기록이다. 후에 업계 전언에 따르면 지나치게 어린 친구라서 의도적으로 불합격 처리하려 했다는 논의가 있었다고 한다. 어리긴 어렸다.

소년급제 아닌 급제를 한 김 의원은 직후 지도 교수님의 권유로 행정고시 재경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번엔 쉽지 않았다. 혈기왕성한 나이에 교우관계도 좋았던 그는 자주 밤새 놀았다. 그런데 그는 달랐다. 밤새 술을 마시고도 새벽 6시면 일과를 시작했다. 그는 ‘독종’이었다. 그를 독종이라 기억하는 친구들이 여전히 연을 이어가는 것을 보면 진정한 독종은 아니었던듯하다. 어려운 살림에 고학생이었던 그는 더 어려운 살림에 학원등록을 포기하려는 친구에게 ‘몰래바이트(대학생 과외금지 조치하의 과외 아르바이트를 칭하는 당시 유행어)’로 번 전 재산을 털어 내어주곤 했다고 한다. 자기 자신과 자기 시간 관리에는 매서운 독종이었으나 주변에는 더 없이 온화한 그를 회고 하며 눈물을 훔치는 친구도 있다. 어색한 일이 아니다.

KBS ‘아침마당’ 시골 6형제의 성공스토리 출연

그렇게 부단한 노력 끝에 행정고시에 합격한 후, 경제기획원(현 기획재정부) 사무관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일을 시작한 부서(심사평가국)에서 만난 직속 선배들이 전 정권과 현 정권에서 경제부총리를 연달아 역임하고 있다고 한다. 거기에 재선 그 이상의 중량감을 가진 국회의원까지 배출됐으니 당시 그 부서에 뭔가 기운이 엄청난듯하다. 사무관으로 재직 중에 군에 입대를 했다. 회계사 장교로 군복무를 시작한 그는 사법고시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시작부터 고시를 보겠다는 건 아니었다. 중앙부처 사무관으로서 업무를 함에 있어서 법을 좀 더 공부해야 할 필요가 있었던 터에 법전을 펼쳤다. 법 공부가 취미에 맞았다고 한다. 역시 범상치 않은 인물이다. 때마침 손아래 동생이 사법고시를 시작해 시험정보와 학습정보를 공급해 줬다. 제대 후에도 도전을 계속했고, 형제의 동시 합격이라는 ‘대업’을 이루게 됐다. 전국적으로 많은 가정에 아침을 책임지는 TV 프로그램인 KBS ‘아침마당’에서 출연 러브콜이 있었다. 시골 6형제의 성공스토리였다. 부모님과 동반 출연하는 효도에 많은 이들이 박수를 보냈다.

20년 모임 회계사 장교 동기회 회장으로 장기집권

당시 김 의원의 영향을 받아 군복무기간의 짬을 이용해 사법고시에 도전한 군대동기가 여럿 있었다. 회계사 장교 동기들은 20년 이상 모임을 이어가고 있다. 그들이 김 의원을 따라 사법고시 시험을 본 것은 시기‧질투였을까? 20년이 넘도록 동기 모임의 ‘회장’으로 장기 집권중인 김 의원이다. 김 의원의 동기회 폭정이었을까? 그들은 말한다. 김 의원은 친구지만 정말 모범이 되고, 귀감이 되는 친구라 했다. 김 회장은 섬김과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이로서 영구 회장은 만든 것이 아니라 만들어 준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해서 김 의원의 회계사 장교 동기회는 수 십년 째 회장은 고정되어 있고, 총무만 바뀌는 ‘이상한’ 시스템이 자리잡고 있다.

제대 후 사무관으로서 복직을 했고, 사법고시에 합격을 한 김 의원은 또 다른 도전을 결심한다. 변호사다. 고민이 적지 않았다. 고시생 시절부터 함께 고락을 같이 한 아내와 심사숙고 끝에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10년 가량 변호사로서 기량을 갈고 닦았다. 업계에서 인지도가 적지 않게 쌓여갔다. 법무실력과 대인관계에 탁월한 실력을 가진 그는 탁월한 일감몰이를 하면서 대형로펌 내에서의 향후 승승가도가 점쳐지는 인물로 성장했다.

나이 만 42세에 19대 국회 입성 대업 이뤄

치열한 법률 시장에서 자리매김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주어질 미래가 얼마나 달콤할지 김 의원도 알고, 주변인도 익히 아는 터에 그는 모든 것을 내려놓는 또 다른 도전을 감행했다. 이제 막 40대가 된 그는 변호사로서 한참 주가를 올리다가 고향으로 홀연 내려간 그를 두고 ‘바보’라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고향 군산 발전을 위해 정치에 투신했다. 국회의원 출사표를 던진 것이다. 당시 군산 정가를 보면 그가 얼마나 무모했는지, 순수했는지 알 수 있다. 때는 2011년 전후, 군산 지역구 현역의원의 벽은 매우 높았다. 일찍이 노동부‧경제기획원 차관을 역임하고 정보통신부와 재정경제부 장관까지 역임한 3선의 故 강봉균 의원이 있었다. 초선이 여러모로 강력한 현역이 건재한, 그것도 기성 정치인들의 텃밭인 호남에 도전한다는 것은 도전만으로 아름다웠다고 기억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바로 이것인가?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것이. 그의 군산 인지도는 사실상 無‧바닥이었다. 회계사로서, 셈에 밝은 그는 인지도 상승의 기울기를 계산했다. 그의 정치판 인지도 계산에 실소를 한 이들이 적지 않았다. 정치판은 정글이고, 각종 이론과 수학이 정직하게 작동되는 세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바위에 계란치기라는 말, 기적이라는 말이 오히려 더 어울린다는 말도 나온 것이 그 즈음이다.

천우신조다.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고 했다. 정치판에서 즐기는 자는 관운(官運) 있는 자를 이길 수 없다. 초선이 바위에 도전하던 때, 때마침 정치개혁 바람이 불었다. 기성 정치인들에 대한 강력한 혁신 주문이 있었고, 군산 현역의원이 고배를 마시고 자리를 내려놓는 일이 발생했다. 회계사 출신 김관영의 다분히 수학적 계산에 입각한 인지도 그래프에도 특이점이 와 급등세가 이어졌다. 그렇게 김관영은 19대 국회에 당당히 입성했다. 그의 나이 만 42세의 대업이다.

새만금특별법 제정의 일등공신…초선답지 않은 초선

19대 국회의원 300명중, 어리기로는 다섯 손가락 안에드는 연소자 국회의원이었다. 고난의 행군같은 총선을 치루고 난 직후 잠시 쉬어갈만도 하지만 그는 이내 내달렸다. 2012년은 4월 총선에 이어 12월 대선이 치러지는 해였기 때문이다. 대선을 앞두고 그가 더 빨리 속도를 낸 것은 ‘새만금’ 때문이다. 첫 삽을 뜬지 약 30년이 되도록 별반 다를 바 없는 국책사업 ‘새만금’에 활력을 불어넣는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대선은 국정과제에 있어서는 대목이다. 대선 각 진영의 전북 대선공약에 새만금 개발을 포함시키는 작업을 했고, 새만금의 보다 특화되고 힘 있는 추진을 위해 특별법 제정에 매진했다.

이때 또 하나의 기록을 세운다. 실제로 ‘새만금사업 추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의 국회 심사 처리 속도는 기염을 토한다. 2012년 11월 5일 국회에 발의돼, 22일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전무후무한 쾌속처리 기록을 세운 것이다. 이토록 빠른 법안 처리를 위해 여당의 중진의원을 대표발의 의원으로 내세우기로 전략을 세운 것도 그다. 대표발의자에 자신의 이름을 남기려는 것은 입법권을 가진 국회의원의 불문율이다. 자기 욕심을 버리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감행했다. 보다 빠르고 강력한 새만금 개발이 목표였기 때문이다. 초선의원의 치기로는 불가능한 양보였고, 전략이었다. 시일이 적지않게 지났다. 정관계 관계자들은 새만금특별법 제정의 일등공신으로 입을 모아 김관영 의원을 이야기 한다. 또 하나 김관영의 공을 기억하는 이(것)이 있다. 당시 공동발의에 참여한 여야 국회의원 173명을 하나하나 찾아뵙고, 설명과 설득을 한 김관영의 닳아빠진 구두굽이 바로 그것이다.

그의 활약으로 지역구인 군산에 인접한 새만금은 하루하루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 새만금개발을 전담하는 국가 기관인 새만금개발청과 민간의 규모있는 자금과 보다 융통성 있는 자금운용과 투자가 가능한 새만금개발공사가 설립돼 본격적인 새만금내부개발을 유인하고 있다. 또한 전북만의 지역개발과제가 아니라 환서해안시대를 대비해 세계 속에서 경쟁해야 하는 대한민국의 新 성장동력으로 비전을 담아내는 곳으로 새만금 개발사업이 자리매김하고 있다.

‘백봉신사상’ 2년 연속 수상해 스포트라이트 받아

그의 추진력과 설득력, 포섭력을 눈여겨 본 선배 의원들이 중용이 이어졌다. 대선캠프가 차려졌을 때 요직을 맡은데 이어, 초선의원으로는 이례적으로 당 수석대변인과 당대표 비서실장 그리고 당 사무부총장을 연달아 역임했다. 맡은 바 최선을 다했고, 맡은 바 최상의 성과를 도출해 내면서 중앙 정치 무대에서 화려한 데뷔 신고를 마쳤다. 그 정점에 ‘백봉신사상’이 있다.

백봉신사상은 독립운동가이자 광복 후 제헌의원, 국회부의장을 역임한 백봉 라용균(羅容均, 1896~1984)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1999년 제정된 상이다. 자기통제력과 정직성, 공정성, 원칙준수, 유연성, 균형성 등을 갖춘 ‘신사’적인 국회위원에게 수여된다. 특히 촌철살인의 정치부 중견 기자들이 직접 선정해 더욱 공신력이 있는 상이기도 하다. 대선주자로 나선 안철수 의원이외에 일반 초선 의원이 본 상을 수상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상황이었다. 더욱이 연거푸 2년 연속을 수상하니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피할 길이 없기도 했다.

군산시 국비예산 1조원 시대 최초로 열어

황당하다. 중앙에서의 활약은 지역 홀대 의심을 낳았다. 나라살림 부처인 기재부 장관이었던 전임 국회의원도 이루지 못한 군산시 국비예산 1조원 시대를 최초로 열었고, 수 년 동안 답보 상태였던 새만금 개발에 박차를 가했으며, 각종 굵직한 지역 현안들을 해결해 나갔지만 지역보다 중앙에 집중한다는 의심을 하는 것에 억울했을 법도 하다. 입법 실적 상위 3~5% 유지, 각종 의정활동상 수상, 당‧내외 요직을 역임하며 중앙언론에 자주 비춰지자 낳은 웃지 못 할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지역구민이라면 자신들의 선택에 대해서 자부심을 갖기 충분할 듯하다. 김관영 의원은 이후에도 활약이 적지 않다. 일례로 대한민국을 뒤 흔든 탄핵정국에 국회 탄핵소추위원으로서 활동하면서 율사(律士) 출신의 면모를 보여줬다. 이어 전 국민이 시청하다 시피 한 국회 탄핵소추 제안의 원고는 여전히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소득불평등‧양극화의 심화로 사회적 동력을 잃어가는 고민이 깊어진 시기에 이를 더욱 조장하는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의 국회통과를 단 5분간의 반대토론을 통해 막아낸 것도 신선한 충격이었다. 일반인들은 피부에 와 닿지 않는 일일 수 있으나 국회 예산안의 부수법안으로 본회의에 회부된 세법을 부결 시킨 것은 의회사에 기록될 일이다.

20대 국회 제3당 원내대표에 선출돼 해결사로 활약

20대 국회에서는 재선 의원으로서 제3당 원내대표에 선출돼 거대 양당의 갈등에 내동댕이쳐진 민생문제 해결을 위한 해결사로 활약을 이어갔다. 임기 마지막 대업으로는 ‘패스트 트랙’ 선상의 김관영 의원도 많은 이들의 뇌리에 각인돼 있다. 20대 국회에 부여한 정치개혁의 추진을 위해 그가 보여준 강단이 인상 깊다. 외력에 굴하지 않고, 오직 민생과 민주주의의 진화를 위한 그의 전략과 총화의 능력이 극적으로 보여진 사례다.

이 글을 쓰는 오늘은 2019년도 벌써 반환점을 돌아 7월 말이다. 사실상 21대 총선을 총성이 울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선거구 확정 등 선거제도 관련해서 오리무중이다. 이를 명확하게 해줄 국회 정치개혁특위가 파행을 거듭한 결과 이런 문제가 발생했다. 활동기한 만료를 앞두고 막판 산통이 계속되고 있다. 정개특위의 최대 현안 중 하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여부는 원내 교섭단체를 이룬 제3당의 운명을 좌지우지 할 것이다.

민주사회 성숙을 위해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필요

김 관영 의원이 전심을 다해 온몸으로 패스트트랙에 정치개혁안을 실어올린 절실함이 여기에 있다. 거대 양당체제 하의 한국 정치의 폐단을 극복하고 민주사회 성숙을 위해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필요하다는 것이 평가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현재의 선거 시스템인 승자 독식 구조에서 사표가 된 낙선자의 표들을 전국적으로 모아 국회 구성 비율에 반영하자는 것이라 이해할 수 있다. 소수정당에 유리한 구도다. 제3당을 사실상 꾸리고, 이끌어온 핵심인 김관영 의원의 절박함이 여기에 있다. 민주사회 진화의 발판이 되어줄 다당제 존립의 시험일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모두의 각성과 격한 동감 그리고 동행이 필요한 때다.

글을 마무리해야 한다. 짧지 않은 글이지만 그를 담아내기엔 역부족이라는 생각이 계속 든다. 학당리 꼬마 김관영의 50평생 궤적이 적지 않다. 대단하다. 꼬마 김관영의 그간의 역사는 진정 역사다. 흡사 풍족한 가정의 아들로 태어나 부족한 것 없이 충분한 지원을 받으며 자랐다면 잔바람에도 흔들렸을 수도 있다. 굳은 비바람에 키운 맷집과 너른 논과 밭에서 뛰 놀며 키운 에너지로 대한민국을 희망으로 이끌어가는 우리 사회의 리더로 성장한 그의 앞으로의 행보를 주목하고 응원한다.

[김관영 바른미래당 의원 프로필]

-1969년 출생

-군산 제일고

-성균관대

-서울대 행정대학원 졸업

-고시3관왕(공인회계사, 행정고시, 사법고시)

-제19대, 제20대 국회의원

-전 바른미래당 원내대표

-전 국회 탄핵소추위원

-현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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