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가계 소비와 투자 증가 등으로 성장률 선방

[CEONEWS=이재훈 기자] 지난해 유럽연합(EU)집행위원회는 세 차례 경제 전망 보고서를 발표했다. 2월과 5월, 11월에 각각 단기 경제 전망을 중심으로 EU 경기의 현재 상태를 진단하고 향후 흐름을 예측했다. 한 해 전인 2016년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올해 EU집행위원회는 2월, 5월, 11월 외에 7월 12일 한 차례 더 중간보고서(Summer 2018 Interim Economic Forecast)를 내놓았다. 올 2분기부터 EU 경제를 포함한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진 것으로 보고 전망 발표 기간을 짧게 가져간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로 2018년 11월에 발표한 가을 경제 전망 보고서는 제목에 이미 ‘높은 불확실성(high uncertainty)’이란 표현이 들어 있다.

 11월 보고서에서 EU집행위원회는 “(EU가) 높은 불확실성 속에서 지속적이긴 하지만 다소 활력이 떨어진 성장을 할 것”으로 예상하면서 올해 성장률을 2.1%, 내년은 1.9%로 제시했다. 올해 네 차례 발표한 성장률 전망치 중 가장 낮은 수치다. EU집행위원회는 올해 2월과 5월 보고서에서 2018년과 2019년 EU 경제성장률을 각각 2.3%와 2.0%로 제시했지만 7월 보고서에서 올해 전망치를 2.1%로 0.2% 포인트 낮추었다. 이어 11월에는 내년 전망치도 2.0%에서 1.9%로 낮춰 발표했는데 내년 3월로 예정된 브렉시트(Brexit) 영향과 미국 경제정책의 불확실성, 이탈리아의 국가채무 증가 등에 대한 우려를 이유로 들었다. EU집행위원회는 또 11월 보고서에 처음 발표한 2020년 성장률 전망치를 1.8%(유로존은 1.7%)로 제시하며 내년보다 더 낮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지난해 EU와 유로존은 모두 2.4%의 성장률로 2007년 3.0% 이후 10년 만에 최고 성장률을 기록했다. 그런데 올해 연초부터 EU집행위원회는 마치 무엇에 쫓기듯이 성장률 전망치를 계속 낮추고 있다. “상호 연관된 역내외 리스크들이 앞으로의 경기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2018년 역내외 리스크 요인들로 성장률 소폭 둔화

우선 대외 요인으로는 세계 경제의 성장동력이 다소 약해질 조짐을 보인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미·중 무역전쟁으로 대미 수출에 타격을 받은 중국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이로인한 글로벌 성장 둔화 가능성이 현실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경제는 올해 피크에 도달한 뒤 내년부터 조금씩 활력을 잃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EU 경기도 이러한 흐름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지난해 유럽 경제가 10년 만에 최고 성장률을 기록한 배경에도 글로벌 경제 호황의 영향이 컸다. 강력한 역외 수요가 유럽의 성장률을 견인하는 데 도움을 준 것이다.

 하지만 올해 강대국 간 무역 긴장이 높아지면서 글로벌 교역이 위축되자 유럽 경제지표도 꺾이고 있다. 유로존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2018년 유로존 수출 증가율은 지난해 5.2%보다 낮은 3.3%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역외 요인이 부정적으로 변하면서 유럽의 성장률은 역내 요인에 더 많이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됐다.

 역내 요인으로는 유럽의 정치적 불확실성 증대를 들 수 있다. EU와 영국이 최근 브렉시트 후 양측의 관계를 정하는 협상 초안에 잠정 합의했지만 최종 합의까지는 아직 난관이 많다. EU는 또 지난 10월 EU 예산 규정을 따르지 않고 재정 적자를 대폭 늘린 이탈리아의 예산안을 거부해 양측 간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개인 소비와 투자 등 상대적으로 양호한 역내 요인들이 성장 견인

역내 경제적 요인들은 그나마 양호한 편이다. 먼저 개인 소비가 버팀목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고용이 늘어나고 임금도 올라가면서 가계의 가처분 소득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로존의 올해 임금은 2.3%까지 오르고 2019년과 2020년에는 각각 2.6%와 2.7%까지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낮은 금리도 자산 가격과 가계의 부를 지탱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올해 12월에 양적완화를 종료하고 2019년 3분기쯤 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체적으로 유로존의 올해 개인 소비는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인 1.6% 증가가 예상되며 내년에는 몇몇 회원국에서 예고된 재정적 조치들을 감안할 때 1.8% 정도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유로존의 투자는 글로벌 경기 호황 덕분에 크게 증가했다. 올해도 여전히 우호적인 금융 환경과 높은 제조업 설비가동률, 긍정적인 수익 전망 등으로 장비 투자가 이어졌다. 그러나 수출과 사업 투자 간 긴밀한 상관관계에서 알 수 있듯이 무역 긴장과 이로 인한 무역정책의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기업 심리가 위축되기 시작했다. 여기에 공급 제약까지 맞물리면서 향후 2년간 조정 국면이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유로존의 노동시장 여건은 올해 상반기까지 지속적으로 개선되는 모습을 보였다. 성장 속도 둔화에도 불구하고 고용이 지속적으로 늘어나면서 실업률은 계속 낮아졌다.

EU 통계기구인 유로스타트(Eurostat)는 “지난 9월 EU 28개 회원국 평균 실업률은 6.7%를 기록했다. 이는 2017년 9월의 7.5%보다 0.8%포인트 낮은 것으로 2000년 이후 최저치”라고 설명했다. 더불어 향후 2년 동안은 몇몇 회원국의 구조 개혁과 경제성장에 힘입어 고용 창출은 계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일자리가 늘어나는 규모는 올해부터 성장률이 낮아지면서 다소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유로존의 일자리 증가율은 2018년 1.4%에서 2019년과 2020년에는 각각 1.1%와 0.9%로 둔화될 전망이다.

 유로존의 GDP 대비 정부 재정적자 비율은 올해 이자비용이 줄어든 덕분에 0.6%까지 떨어지며 지난해보다 더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 GDP 대비 부채비율은 거의 모든 회원국에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자율보다 높은 GDP성장률과 예산 잉여금 덕분이다. 2020년 유로존의 GDP 대비 부채비율은 82.8%까지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GDP 대비 경상수지 흑자 폭은 지난해를 피크로 올해는 다소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흐름이 계속되면서 2019년과 2020년에는 대략 3.6% 선에 안착할 전망이다.

글로벌 시장의 불확실성 향방에 관심 집중

전반적으로 EU 경제는 현재 아주 높은 수준의 불확실성에 직면해 있다. 이는 주로 미국의 경제정책과 무역정책에 기인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미국의 재정부양책에 따른 경기 과열은 예상보다 빠른 금리 인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미국을 넘어 전 세계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히 자본 흐름의 변화에 취약한 신흥시장에서 그러한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이로 인해 국제 금융시장의 긴장이 높아질 수 있다. 무역과 금융거래를 통해 미국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는 EU경제도 마찬가지다. 특히 EU 내부에서도 부채가 많은 회원국들의 재정에 대한 의구심이 역내 금융 부문으로 번질 수 있다. 또한 EU가 글로벌 밸류체인에 긴밀히 통합돼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미·중 무역전쟁의 여파로부터 전혀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브렉시트 협상 결과와 이탈리아 재정적자 관련 리스크 등 EU 역내 정치적 불확실성도 눈여겨봐야 한다.

 이처럼 서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는 여러 가지 하방 리스크 중에서 일부라도 현실화된다면 이로 인해 다른 리스크의 실현 가능성이 높아지고 EU 경제에 미치는 충격이 커질 수 있다. 2019년 EU 경제는 이 모든 변수를 예의 주시하면서 지속 성장을 모색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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