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NEWS=클라우스 슈밥] 세계는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은 정치·경제적 격변의 시기를 겪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은 신경제와 새로운 형태의 세계화를 촉발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신경제와 새로운 세계화 체제에서 공공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형태의 거버넌스가 필요하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사회는 공동의 미래를 건설하기 위해 손을 잡았다. 지금이 바로 다시 한번 그래야만 하는 시기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10년간 지역 혹은 국가 간 불균형한 상태로 경기회복이 더 디게 전개된 까닭에 대부분의 사회에서 정치와 정치인들뿐 아니라 세계화와 이에 기반한 전체 경제 시스템을 향한 불만과 적대감이 쌓여 왔다. 불안과 분노가 만연한 시대에 포퓰리즘은 현 상태를 해결할 수 있는 매력적인 대안으로 부각했다. 세계화와 세계주의(globalism)는 엄연히 다른 개념이지만, 포퓰리즘 화법에서는 그 차이를 무시하고 종종 동일시한다.

세계화는 아이디어와 사람, 상품의 이동과 기술전파가 주도한 현상인데 반해 세계 주의는 국익보다 신자유주의적 세계 질서를 우선시하는 이념이다. 우리가 세계화된 세계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정책이 ‘세계화’돼야 하는가는 논란의 여지가 큰 문제다. 결국 이 위기의 시기에 글로벌 거버넌스 구조에 대한 중요한 질문이 대두됐다. 점점 더 많은 유권자들이 ‘글로벌 세력들’로 부터 국가의 지배력을 되찾아 오기를 요구하고 있지만, 협력이 필수적인 세상에서 자주권을 회복하는 것은 어려운 문제다. 

보호주의와 국수주의 정책으로 경제를 폐쇄하기보다는 자국 내에 서 충분히 안정을 느껴 세계 전체에 문호를 개방할 수 있도록 시민과 지도자 사이에 새로운 사회적 협정을 맺어야 한다. 협정 체결에 실패 한다면 우리 사회조직의 분열이 지속돼 궁극적으로 민주주의의 붕괴로 이어질 수도 있다.

더구나 4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문제들은 급격한 생태적 제약 요인들의 등장, 국제질서의 다극화 진전, 불평등 심화와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이 합쳐진 결과 새로운 세계화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세계화 시대에서 인간의 생활 여건이 개선될 것인가는 기업과 지역, 국가와 국제 거버넌스가 시의적절하게 적응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한편 새로운 글로벌 민관협력 체제가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민관 협력은 지속 가능한 환경과 사회적 포용을 항상 염두에 둔 상태에서 공익을 위한 경제성장의 추진 동력으로 민간부문과 개방형 시장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이 공익인지 결정하기 위해서는 먼저 불평등의 근본 원인을 파악해야 한다.

예를 들어, 개방형 시장과 경쟁의 심화로 국제 사회에서 확실한 승자와 패자가 양산되면서, 결 국 국가적 차원의 불평등에 더욱 확연한 영향을 미치게 될지 모른다. 뿐만 아니라 프레카리아트(저임금, 저숙련 노동에 시달리는 불안정한 노동계급)와 특권층의 격차는 종종 소유하고 있는 자본과 지적재산을 기반으로 수익이 창출되는 4차 산업혁명 비즈니스 모델이 도입되 면서 더욱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는 우리가 새로운 종류의 혁신기반 경제에 살고 있으며, 공적 신뢰를 보호하기 위해 새로운 글로벌 규범과 기준, 정책과 관례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신경제는 이미 수많은 산업의 해체와 재결합을 가져왔고 노동자 수백만 명의 일자리를 앗아갔다. 신경제 체제에서는 가치 창출 과정에서 지식집 약도가 높아지면서 이미 생산이 비물질화(dematerializing)되고 있으 며, 상이한 교역과 투자 전략을 채택한 국가들 사이에서 뿐 아니라 국내 생산품, 자본, 노동시장간 경쟁도 심화되고 있다.

기술 기업의 개인정보 관리에 대한 불신 역시 점점 커지고 있다. 유례없는 속도로 전개되는 기술변화는 보건, 교통, 통신, 생산, 분배 및 에너지 시스템 등을 완전히 변화시킬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관 리하려면 새로운 국가적·다국적 협력체제는 물론 노동자 위한 신기술 교육프로그램을 갖춘 신교육모델이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고령화 사회가 심화되는 가운데 로봇과 인공지능의 발전을 둘러싼 우리의 담론은 생산과 소비 측면을 넘어 나눔과 돌봄의 영역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세계화 4.0은 지금 막 시작됐지만, 우리는 벌써 이들에 대한 준비가 한참 부족한 상태다. 시대에 뒤떨어진 생각을 고수한 채 현재의 방식과 제도를 서투르게 손보는 것만으로는 안된다. 처음부터 완전히 재설계해야만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다양한 분열들을 피하면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새로운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신경제에 적합한 새로운 접근법을 개발할 때 우리는 제로섬 게임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자유무역이냐 보호주의냐, 기술이냐 일자리냐, 이민자냐 시민보호냐, 성장이냐 평등이냐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모두 잘못된 이분법으로, ‘또는’보다 ‘그리고’를 선호하는 정책을 개발해 일련의 모든 이익을 공평하게 추구함으로 써 피해갈 수 있는 문제다.

물론 비관론자들은 정치적 상황이 세계화 4.0과 신경제에 대한 생 산적인 글로벌 논의에 걸림돌로 작용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주의자들은 현행 제도의 한계를 분석하고 미래 접근법에 필요한 요건을 모색하기 위해 현재를 이용할 것이다. 또한 낙관론자들은 미래지향적인 이해관계자들이 공동의 이익, 궁극적으로 공동의 목표를 추구하는 공동체를 만들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변화는 특정 국가나 산업, 이슈에 국한된 것 이 아니다. 이는 보편적인 것으로서 글로벌 대응이 필요한 영역이다. 신협력 접근 방식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인류 전체에 비극을 초래 할 수도 있다. 공통된 글로벌 거버넌스 구조의 청사진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현 시점의 위기관리 늪에 매몰되는 상황을 무엇보다 경계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국제사회는 두 가지를 갖춰야 한다. 바로 포용력 확대와 상상력 증대다. 모든 이해관계자가 지속적으로 논의에 참여 하는 것이 중요하며, 조직적인 사고방식과 단기적 관점의 제도적·국가적 고려사항 너머를 생각하는 상상력 또한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세계화 4.0: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새로운 구조 구축” 이라는 주제하에 스위스 다보스-클로스터스에서 열릴 2019년 세계 경제포럼 연례총회의 두 가지 원칙이다. 준비가 됐든 아니든 우리는 새로운 세계를 맞이하고 있다.

[클라우스 슈바 세계경제포럼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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