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영화 속 금융, 예금자 보호 한도 1억 원 상향

엄금희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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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EONEWS=엄금희 논설주간] 더불어민주당이 예금자 보호 한도를 1억 원으로 상향하는 법안을 추진한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 SVB 파산으로 촉발된 뱅크런, 대규모 예금 인출 사태 등 예금자 불안을 완화하겠다는 취지이다.

금융의 경제에 대한 영향력은 상당하다. 우리가 문학과 영화에 나오는 금융인들은 대부분 악당으로 그려졌다. 대표적으로 세계명작인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이 그렇다. 올리버 스톤 감독의 영화 '월스트리트'에서 M&A 전문가 고든 게코는 고삐 풀린 탐욕을 상징하는 인물로 나온다.

한국문학에서도 채만식의 소설 '탁류'에 나오는 은행원 고태수는 순진한 여성 초봉을 희롱하는 바람둥이이다. 강우석 감독의 '공공의 적'에서 부모를 살해하는 악한 조규환의 직업은 거액의 자금을 굴리는 펀드매니저이다.

금융인들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비호감이다. 그 이유는 금융이 실물경제에 기생하는 영역이라는 오래된 편견이 있다. 그리고 이자 수수를 금지하는 기독교 문화권에서 금융은 천대받는 소수자인 유대인의 영역이었다. 또한 10여 년에 한 번씩 나타났던 금융 스캔들이 경제 전반의 위기로 이어졌다는 인식이 사람들의 뇌리에 깔려있다.

대중들의 평가와는 별개로 금융의 현실적 영향력은 시대별로 보면 막강하다. 금융은 때로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19세기의 금융은 권력이었다. 정부의 조세 정책도, 제대로 된 중앙은행도 없었던 시대, 돈줄을 쥐고 있던 금융은 막강한 권력이었다. 프랑스 루이 18세의 경제 책사였던 리슐리외는 영국의 유서 깊은 은행 베어링브러더스와 관련해 이런 말을 했다. "유럽에는 6개의 위대한 힘이 있다. 영국, 프랑스,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러시아, 그리고 베어링브러더스이다."

미국에는 JP모건이 있다. JP모건 본사가 있는 월스트리트 23번지에는 상호가 들어 있는 간판이 붙어 있지 않다. 굳이 스스로를 광고할 필요도 없이, 돈이 필요한 사람이 찾아오라는 오만한 자부심의 산물이다. 이 건물은 '더 코너'로 불렸다. JP모건은 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공룡기업이다. 금융뿐만 아니라 당대의 성장산업이던 철도 비즈니스를 쥐락펴락하는 거물이다. 철강왕 카네기로부터 제철회사를 인수해 유에스 스틸이라는 당대 최대의 철강 트러스트를 만들어 운영했다. 또한 해운 트러스트인 IMM을 조직한 세계 해운 시장의 큰손이다. 대서양을 항해하다 비극적으로 침몰한 타이태닉호도 IMM에 속한 선박이다. JP모건은 가장 큰 벤처 투자자이다. 에디슨이 설립해 후에 GE로 성장하는 에디슨 전구의 초기 투자자가 JP모건이다.

이런 막강한 금융의 힘을 보며 우리나라도 이제 예금자 보호한도 5000만 원을 넘어서는 은행과 저축은행 예금 비율이 상승하면서 한도 확대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 2001년 당시 1인당 GDP를 고려해 5000만 원으로 정했던 예금 보호 한도이다. 이제는 2배 이상인 1억 원으로 올리자는 의견이다. 국회엔 예금자 보호 한도를 1억 원으로 상향하는 내용의 법 개정안이 발의된 상태다.

늦은 감이 있지만 예금자 보호가 현행 5000만 원까지인데 이를 1억 원으로 늘리고 필요에 따라서는 미국처럼 전체 예금자의 예금액을 보호할 수도 있는 정책도 발의해 추진해야 한다.

원금 전체가 아니라 연체된 대출금에 대해서만 연체이자를 물리게 하는 내용의 금융소비자 보호법 개정안도 추진해야 한다.

각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 GDP 차이, 경제 수준을 감안하더라도 우리나라의 보호 한도가 현저히 낮은 수준임을 알 수 있다. 주요 선진국의 예금자 보호 한도는 미국 약 3억 3000만 원, 유럽연합 약 1억 4000만 원, 일본 약 1억 원 등 우리나라의 보호 한도와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예금보험공사의 예금자보호법상 보호한도 5000만 원을 넘어서는 은행 예금의 비율을 보면 2017년 61.8%, 724조 3000억 원에서 지난해 6월 기준 65.7%, 1152조 7000억 원으로 상승했다. 같은 기간 저축은행은 10.7%, 5조 4000억 원에서 16.4%, 16조 5000억 원으로 높아졌다.

1997년 말 국제통화기금, IMF 외환위기 사태 이후 금융사 구조조정 충격을 줄이기 위해 2000년 말까지 한시적으로 예금 전액을 보장하기도 했다. 이후 2001년부터 현재까지 1인 1 사 최대 5000만 원 세전 보장이 유지되고 있다.

외환위기 당시 금융회사 부실 위험이 커지자 정부는 1997년 11월 19일부터 2000년 말까지 은행, 보험, 증권, 종합 금융 등 업권별 모든 예금에 대해 원금 및 이자 전액을 정부가 지급을 보장한다는 내용의 금융시장 안정대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 대책은 도덕적 해이 논란에 휩싸이며 1998년 7월 조기 종료됐다.

금융위원회도 만일의 사태 발생 시 고객이 맡긴 예금을 전액 보증하는 방안에 대한 검토에 들어갔다. SVB와 같은 특이한 케이스의 은행은 우리나라에 없지만 다른 나라에서 예금 전액을 보호하는 사태가 있었으니 우리도 만에 하나 그런 상황이 온다면 어떤 절차를 가지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그러나 국내 예금 보호 한도 5천만 원에서 1억 원으로 높여야 한다는 시각은 크게 엇갈린다. 예금보험공사에 보험료를 내고 있는 금융회사 예금 고객의 98%는 5천만 원 이하의 돈을 넣고 있으므로 2% 거액 예금자를 위한 상향은 불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반면 2% 고객들이 가진 보호 받지 못하는 예금이 전체의 48%를 차지하는 만큼 뱅크런을 대비하는 금융 안정 측면에선 상향이 필요하다는 의견에 동조한다.

우리나라는 금융기관 파산 시 예금자보호법에 따라 고객은 예금보험공사로부터 1인당 최대 5천만 원까지 돌려받을 수 있다. 부보예금을 갖고 있는 고객의 5천만 원 이하 예금을 갖고 있다면 현행법으로도 충분히 대다수는 돈을 안전하게 돌려받을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예금 보호 한도 상향이 고액의 돈을 넣어둔 자산가들에게만 유리한 것 아니냐는 불만이 나온다. 또 예금 보호 한도가 높아지면 금융회사가 예금보험공사에 줘야 할 보험료도 올라간다. 그 비용은 결국 일반 소비자들에게 대출금리 인상 등의 형태로 고객에게 전가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금융 안정 측면을 바라봐야 한다. 예금보험제도는 금융회사의 위기를 선제적으로 막는 역할이다. 현재 5천만 원 이하 예금을 넣어놓은 고객들은 해당 금융회사가 흔들려도 전액이 보호되므로 돈을 급하게 빼려는 마음이 덜하다. 예금 보호 한도를 높이면 뱅크런을 막는데 조금 더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번 미국 실리콘밸리은행, SVB에서 보듯이 금융회사가 부실화됐을 때 예금 보호 한도에 들지 못하는 예금의 규모가 클수록 뱅크런 속도는 빨라지며, 그만큼 파산에 이르는 시간도 앞당겨진다. 실리콘밸리은행 예금액의 약 86%는 예금 보호 한도를 초과한 상태였다.

예금보험제도의 취지에 따라 뱅크런을 막기 위해서는 보호 한도를 높여야 한다. 금융소비자 빈부 문제보다는 금융 시스템 안정성 차원에서 살펴봐 할 문제이다. 실리콘밸리은행 사태는 뱅크런을 예방하기 위해 예금보험제도의 정밀한 설계가 필요하다는 교훈이다. 디지털화로 뱅크런 리스크에 갈수록 쉽게 노출될 수 있으므로 보호 한도를 높여야 한다.

우리나라 예금 보호 한도는 지난 2001년 국내총생산, GDP 등을 근거로 책정된 뒤 23년째 그대로다. 지난해 한국의 1인당 GDP 대비 예금 보호 한도 비율은 1.2배로, 일본 2.3배, 영국 2.3배, 미국 3.3배에 비해서 낮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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