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적 연출' 통해, 관객 시선 사로잡아
눈물 펑펑 쏟을 정도의 '메소드 연기'

쇼맨 포스터(사진=국립정동극장)
쇼맨 포스터(사진=국립정동극장)

[CEONEWS=최재혁 기자] 뮤지컬은 워낙 고가인 탓에 1년에 한 번 정도 관람하는 분들이 많을 듯하다. 결국 특별한 날 아니면 기념일에 방문한다는 건데, 풍류를 즐기는 한반도의 시민이 다양한 문화생활을 즐기지 못해 안타까울 뿐이다. 귀한 뮤지컬 관람 기회 덕분에 보게 된다면, '지킬앤하이드', '시카고'처럼 명작으로 정평이 난 작품만 손이 간다. 어쩌다 보는 공연이 실패로 돌아갈까 봐 하는 걱정이 아닐까. 충분히 이해하는 마음이지만, 국내 창작 뮤지컬 중에서도 세계에 내로라하는 작품이 정말 많다. 그중에는 기자가 경험했던 중 최고의 뮤지컬 '쇼맨'이 있다.

쇼맨_공연사진(사진=국립정동극장)
쇼맨_공연사진(사진=국립정동극장)

'창의적 연출' 통해, 관객 시선 사로잡아

뮤지컬 '쇼맨'은 평생 남을 따라하기만 했던 배우가 우연히 독재자의 '대역'을 맡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이미 세월이 흐른 시점에서 과거를 돌이켜보며, 대역이었던 '내'가 누구인지 찾아가는 이야기다. 관객은 배우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나'는 어떤 사람이고, 어떤 삶을 살았는지 돌이켜볼 수 있다.

쇼맨의 오프닝은 '대역' 네불라의 고통스러운 신음으로 시작한다. "삶은 파도의 깊이"라는 노래가 반복되며, 네불라는 가만히 서서 노래가 끝날 때까지 허우적거린다. 그의 몸에는 파란색 조명이 흔들흔들하며 파도를 연상시킨다. 처음에는 딱 아랫목 부분까지 일렁이던 파란 물결은 서서히 얼굴까지 차오르며, 네불라는 마치 파도에 잠긴 듯 더욱 고통스러워한다.

쇼맨_공연사진(사진=국립정동극장)
쇼맨_공연사진(사진=국립정동극장)

많은 형제 중 중간으로 태어난 네불라는 사랑받기에는 너무 애매한 위치다. 맏이도, 막내도 아니라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하기 위해서 누군가를 따라 하며 그들을 웃긴다. 신기하게도 타인을 복사하는 능력이 있던 네불라는 능력을 살려 배우의 길을 걷는다.

그러나 따라하기만 하는 배우는 곧 한계에 갇힌다. 동료 배우는 "따라 하지 말고, 너를 연기해!"라며 호통치는데, 내가 아닌 역할을 연기하는데 어떻게 나를 연기할 수 있는지 네불라는 깊은 고민에 빠진다. 결국 배우의 길을 포기하지만, 동료 배우를 따라간 뭔지도 모를 오디션에서 덜컥 합격하며 그의 인생은 갑작스레 깊은 파도 속으로 빠진다.

그 역할은 독재자의 '대역'으로 네불라는 4번째 대역을 맡는다. 대역 중에서도 애매한 위치를 차지한 탓에 사랑받기 위해서 그는 미친 듯 연기한다. 극 중 네불라를 독재자처럼 만들기 위해 신체검사와 경례, 목소리와 말투 등 간부가 교육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무대'라는 한정적인 장소에서 의자를 뺏고 돌리는 데다 다양한 손짓을 활용해 '영화적 연출'을 가미한다.

또 연출이 돋보이는 장면은 시간이 한참 흐른 '할아버지' 네불라가 젊은 사진사 '수아'와 함께 과거를 회상하는 부분이다. 무대에서 공연하는 자신을 설명하기 위해 직접 무대를 설치하는데, 바퀴를 고정하고 소품을 준비하는 시간 자체를 뮤지컬에 포함한다. 실생활 같은 배우의 연기는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관객의 집중도를 대폭 끌어올린다.

이와 함께 결말에는 주연 네불라, 수아와 함께 4명의 배우가 등장해 네불라의 정체성을 찾는 장면이 있다. 네불라를 사이에 두고 모든 배우가 이리저리 움직이며, 남을 따라하기만 했기에 '나'라는 사람이 없다고 여긴 어지러운 정체성을 완벽히 표현했다. 특히 피날레에 이르러 암전이 되는데, 그 직전 배우들의 열정적인 표정 연기는 기자의 심금을 흔들어 눈물이 날 정도였다.

쇼맨_공연사진(사진=국립정동극장)
쇼맨_공연사진(사진=국립정동극장)
쇼맨_공연사진(사진=국립정동극장)
쇼맨_공연사진(사진=국립정동극장)

눈물 펑펑 쏟을 정도의 '메소드 연기'

아무리 뛰어난 연출이 있다 하더라도 연기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그 뮤지컬은 실패한다.

기자가 방문한 당시 뮤지컬 쇼맨의 '네불라'를 연기하는 배우 강기둥은 최고의 연기를 펼치며, 연출을 뒷받침했다. 노인과 청년을 번갈아 가며 연기해야 하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노인의 쓸쓸함과 청년의 좌절과 슬픔을 완벽하게 선보였다. 특히 배우로서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에서의 씁쓸함과 솔직한 수아가 자신을 지적할 때의 왠지 모를 안타까움은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강 배우는 극 내내 무대를 장악했다. 춤과 노래는 물론이고 발성까지 완벽해서 자꾸만 눈길이 갔다. 게다가 그는 자신을 돌아보며 회한을 느낄 때 이마에서 땀이 한 방울 흘렀는데, 알고 보니 눈에서 흐르는 눈물이었다. 멈출 줄 모르는 눈물은 '강기둥'이 아니라, '네불라'로서 인생의 허무를 본인도 모르게 표현한 듯했다.

쇼맨_공연사진(사진=국립정동극장)
쇼맨_공연사진(사진=국립정동극장)

노래와 춤도 마찬가지였다. 앞에 설명했던 "삶은 파도의 깊이" 노래와 "오리지널"이라는 곡은, 자신을 잃어버린 네불라가 평생 들어온 말이다. 배우로서 오리지널이 돼야 했던 그가, 독재자의 대역이 되면서 성공한 '이미테이션'이 된 역설적인 노래다.

대부분의 곡은 6명의 배우가 부르는데, 코러스 4명의 합창이 일품이다. 여배우 2명, 남배우 2명이서 내는 환상의 하모니는 무대를 가득 메운다. 또 춤이라고 하기는 애매하지만, 독재자 밑 간부가 특유의 걸음걸이를 걷는데 너무나 멋져서 넋을 놓고 바라볼 정도였다.

쇼맨_공연사진(사진=국립정동극장)
쇼맨_공연사진(사진=국립정동극장)

과장된 표현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뮤지컬 '쇼맨'은 기자에게 최고의 뮤지컬로 가슴에 새겨졌다. 연출, 노래, 연기, 퍼포먼스 등 그 무엇하나 빠지지 않고 '최고'라고 생각될 정도로 가슴 속에 전율이 일었다. 이처럼 대한민국 창작 뮤지컬의 대단함을 느낄 수 있는 뮤지컬 '쇼맨'은 국립 정동극장에서 5월 15일까지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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