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 등 산업생태계의 붕괴 상황까지 가지 않도록 조취필요

[CEONEWS=김도훈 교수] 우리 경제는 제조업의 힘으로 발전해 왔다. 경제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제조업이 힘을 내어주면서 그 위기들을 힘겹게나마 극복할 수 있었다. 1970년대의 석유위기, 1990년대 말의 외환위기, 2000년대 말의 국제 금융위기 등 그렇게 힘들어 보이던 위기들 모두를 우리 제조업이 경쟁력을 발휘하며 수출을 늘리면서 위기를 넘겨 왔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렇게 힘이 되어 왔던 제조업 자체가 위기 징후를 보이고 있다. 제조업 전체로는 근근이 성장 추세를 이어가고 있지만, 반도체, 전자부품 등 몇몇 강세를 보이는 분야를 제외하면 오히려 마이너스 성장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제조업 대부분, 9월 중 산업 생산 마이너스 시현

통계청이 발표하는 9월 산업생산지수를 보면 제조업 전체는 2015년 기준 100.2를 보였다. 수치 그대로만 보면 2015년보다 나아졌다고 판단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특수한 활황을 보이고 있는 분야인 반도체 및 전자부품을 제외하면 완전히 모습이 달라진다. 지수가 93.1이라는 극도의 부진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부진의 가장 선두에 서 있는 산업들이 한때 우리 산업 전체를 이끌다시피 한 조선, 자동차라는 점이 안타깝다. 세계 1위의 시장 점유율을 자랑하던 조선 산업은 그 생명력을 유지하기 위해 막대한 국민의 혈세가 투입되어야 했고 아직도 완전한 활력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이번에는 자동차 산업이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주력시장이던 미국과 중국 양쪽에서의 부진이 직격탄을 날린 것이다. 문제는 이들 산업들의 위기가 몇몇 눈에 띄는 대기업들만의 어려움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들 산업들을 뒷받침하는 참으로 많은 협력기업들의 어려움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원래 많은 소재, 부품 기업들과 함께 매우 복잡하고 규모가 큰 산업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는 산업의 특성 때문이기도 하다.

 

제조업 부진의 장기화가 더 문제

제조업 위기의 심각성은 그 부진 상황이 장기화되고 있다는 점에 있다. 금년 1월에서 9월까지의 제조업 생산지수가 전년 동기대비 1.5% 감소한 추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이 지수는 2016년 대비 3.7% 성장하면서 제조업이 회복 국면으로 들어서는 것으로 판단하게 했지만 금년 내내 부진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같은 기간 동안의 공장 가동률도 72.8%에 머물러 2010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나나내기에 이르렀다. 산업생산지수를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황이 더 심각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예의 활황 부분인 반도체와 전자부품을 제외하면 1-9월 중 평균 전년 동기대비 3.9%나 감소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고, 자동차 산업이 7.3% 하락, 조선 산업은 19.3% 하락이라는 참담한 실적을 보이고 있다. 문제는 제조업 전체적으로 대기업들이 그런 대로 0.4% 감소로 버텨내고 있다면 중소기업들의 생산지수가 같은 기간 동안 4.3%나 감소하여 이들의 어려움이 지속적으로 가중되고 있는 것이 심각성을 더 크게 하고 있다. 그동안 한계 상황을 겨우 넘겨 왔던 많은 중소기업들이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의 조치로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입주하고 있는 많은 산업단지들의 생산 및 고용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가까운 미래 전망도 어두운 점이 더 어려운 과제

제조업의 미래 경쟁력은 역시 설비투자가 늘어나야 뒷받침된다. 그런데 그 설비투자가 지난 6월 이후 3개월 동안 마이너스 추세를 면하지 못하다가 지난 9월 SK하이닉스 청주공장 건설 덕분으로 반짝 성장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설비투자의 부진은 지속될 전망이다. 특히 다른 경쟁국들이 미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적극적인 투자에 나서고 있는 자동차 분야의 투자가 극도의 부진을 보이고 있는 점은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제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투자는 기계수주 동향으로 파악할 수 있는데, 지난 3월 3조원을 넘어섰던 기계수주액은 4월부터 3조원 미만으로 내려간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추세를 보이면서 지난 9월에는 2조 4,600억원 수준으로 떨어졌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러한 국내투자의 부진 속에서도 우리나라 해외투자는 비교적 활발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대기업들이 국내의 어려운 여건을 피하고, 해외시장에 더 잘 적응하려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라고 판단된다.

이러한 투자 부진 때문일까? 우리 주력 제조업들의 단기 생산 전망도 매우 어둡게 나타나고 있다. 산업연구원이 제조업의 대표산업으로 다루는 12대 산업들 중 최근 들어 긍정적인 전망을 보여주고 있는 산업은 반도체 하나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연구원 전망에 따르면 나머지 대부분의 산업들이 0% 전후의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석유화학, 철강, 정보통신기기, 디스플레이 등도 생산 감소 추세가 예상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위기와는 다른 상황임을 인식할 필요

이러한 제조업의 위기에 대응하는 지금까지의 정부의 모습을 보면 이를 몇몇 주력 대기업들의 문제로 여기고 지금과 같은 어려운 고비를 넘기면 다시 경쟁력을 회복할 수도 있다는 막연한 기대감 속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든다. 기실 외환위기와 같은 더 어려운 고비를 맞아서도 우리 제조업들은 항상 빠른 경쟁력 회복 능력을 보여 준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당시와는 확연히 달라진 상황임을 인식해야 한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주력산업들이 중국 산업의 거센 추격에 직면하고 있고, 특히 우리가 주력시장으로 여겨 왔던 중국시장에서의 자동차, 통신기기 등의 부진 상황이 매우 급격하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즉, 과거에는 우리 산업들이 국내경제 여건 개선과 세계경제의 회복이 조금만 이루어지면 곧바로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여건이 회복되더라도 우리 주력산업들의 경쟁력 회복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 처해 버린 것이다.

 

산업생태계의 붕괴 상황까지 가지 않도록 조치 취해야

조선, 자동차 분야에서는 협력 중소기업들의 도산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들이 그동안 버텨오던 한계기업들일 수도 있지만, 일부에서는 흑자도산을 호소하는 기업들도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제조업 경쟁력의 근간은 대기업들의 기술개발, 시장개척 능력 등에도 있지만, 이들을 뒷받침하는 협력 중견·중소기업들의 층이 두텁게 형성되어 있는 ‘건강한 산업생태계’의 힘에도 크게 의존하고 있다. 만일 이들 산업생태계의 붕괴 현상이 심화된다면 정부가 매달리고 있는 일자리 창출은 더욱 힘든 일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고, 심각한 경제침체까지도 각오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제조업 전체 산업생태계를 점검하해 보고 이를 회복시키기 위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해 본다.

김도훈 | 경희대학교 국제대학원 특임교수, 전 산업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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