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NEWS=송준혁 한국외대 경제학부 교수] OECD 보건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의 기대수명은 매년 증가해 2016년 기준 82년 4개월로 회원국 평균보다 1년 6개월 긴 것으로 조사됐다. 늘어난 수명만큼 안정적인 소득원의 확보는 더 절실해질 것이다. 은퇴 후 정기적이고 안정적인 소득을 제공할 수 있는 대표적인 투자상품은 단연 연금이다.

제도적으론 어느 정도 완비됐으나 운용실적은 상당히 저조

우리나라는 현재 국민연금, 퇴직연금 및 개인연금의 다층구조를 통해 노후생활을 대비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국가가 운영함에 따라 평생 지급이 보장되는 안정성에도 불구하고 최근 소득대체율이 낮아지고 있어 안정적인 노후생활을 위해선 추가적인 소득 확보가 필수적이다. 이에 근로자들은 퇴직연금을 활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05년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이하 근퇴법)을 제정해 기존 퇴직금에 더해 퇴직연금 제도를 도입했다. 현재 우리나라의 퇴직연금은 회사가 적립금을 운용해 일정한 연금을 주는 확정급여형(DB형), 근로자가 적립금을 직접 운용해 자산을 축적하고 수익에 스스로 책임을 지는 확정기여형(DC형), 퇴직 또는 이직 시 수령한 퇴직급여나 자기부담으로 납입한 금액을 적립하고 운용하는 개인형 퇴직연금(IRP)으로 구분돼 있다.

1997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로버트 머튼 교수는 안정적인 노후생활을 위한 자금 관리에 관해 먼저 은퇴 설계의 목표를 명확히 설정하고 자산보다는 소득 중심으로 재무 설계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은퇴 이후 본인이 희망하는 생활수준을 설정하고 이를 달성해줄 정기적인 소득이 발생할 수 있도록 현재 시점에서 투자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안정적인 소득을 추구하는 DB형이 자산을 키우는 DC형보다 선호되는 근거로 인용되기도 하지만, 기대수익률이 상대적으로 낮은 DB형이 DC형보다 항상 우월한 선택으로 볼 논리적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우리나라 퇴직연금이 제도적인 측면에서 어느 정도 완비돼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연금자산의 운용실적은 상당히 저조한 수준이다. 2017년 말 우리나라의 퇴직연금 적립 규모는 168조4천억원으로 이 중 88.1%인 148조3천억원(대기성 자금 포함 시 91.6%인 154조원)이 예·적금 등 원리금 보장상품으로 운용되는 반면 8.4%인 14조2천억원만이 실적배당형으로 운용되고 있어 안전자산에 대한 편중이 심각하다. 제도 유형별로 보면 DB형이 65.8%를 차지하고 있으며 DC형과 IRP가 각각 25.1%와 9.1%를 차지하고 있다. DB형의 경우에는 전문적인 운용관리 직원의 부재 및 퇴직금 지급에 따른 갈등 방지를 위해 대부분 안정적인 예·적금의 형태로 적립되고 있다.

이에 따라 퇴직연금의 운용수익률은 2017년 1.88%에 불과해 635조원을 굴리는 국민연금의 운용수익률인 7.28%와는 크게 대비되고 있다. 더 우울한 뉴스는 그나마 이것도 전년에 비해 개선된 것이라고 한다. 한편 퇴직연금 관리수수료는 적립금의 0.45% 수준으로 연간 약 7,540억원이 예·적금에 돈을 맡기는 것 말고 별다른 일을 하지 않는 퇴직연금 사업자에게 지급되고 있다. 은행에 정기예금으로 맡겨도 수수료 없이 2% 수준의 금리를 받을 수 있다. 노후생활의 안정과 미래세대에 대한 부담을 낮추기 위해 퇴직연금 운영과 투자 전반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하지만 정작 퇴직연금 수급자들인 근로자들은 별다른 동요가 없다. 그 이유는 아마 퇴직연금이 국민연금에 비해 홍보가 덜된 데다 연금보다는 일시금 수령을 선호해 퇴직연금을 노후생활을 대비하는 수단보다는 당장 세제혜택을 주는 금융상품으로 인식하는 비중이 높기 때문인 것으로 짐작된다. 금융회사와 사업자 간 계약 위주의 현행 퇴직연금 제도 역시 운용수익률에 대한 무관심을 야기한 원인으로 들 수 있다. 이러한 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대안으로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의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돼왔는데, 지난 4월 10일 근퇴법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해 국회에 제출됨으로써 퇴직연금 제도 개선의 발판이 마련됐다.

사용자와는 독립된 수탁법인에 운용 신탁하는 기금형 퇴직연금···전문성 높일 수 있고 근로자 참여도 용이해

기금형 퇴직연금은 사용자와는 독립된 수탁법인을 설립해 노사의 입장과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수탁법인에 연금자산의 운용을 신탁하는 구조다. 기금형은 노사 공동으로 기금운영에 대한 주요 정책을 결정해 수탁법인에 기금운용 업무를 위탁하고, 수탁법인이 모든 책임을 지고 수익자인 근로자를 위해 기금을 운영하는 구조로 퇴직연금에 대한 전문성을 제고하는 한편 근로자 참여가 용이해진다.

기금형 퇴직연금 운용 시 하나의 수탁법인이 여러 회사의 퇴직연금을 공동으로 관리할 경우 규모의 경제에 따라 수수료 비용이 경감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기금형에서는 의사결정 주체가 사용자에서 수탁자로 변경됨에 따라 퇴직연금의 적립 및 운용의 투명성이 제고될 것으로 생각된다. 현행 DB형 퇴직연금 제도에서는 사용자가 매년 의무적으로 적립해야 하는 부담금이 기준책임준비금의 80% 이상으로 규정돼 있으나 현실적으로 적립 규모를 근로자가 직접 확인하기 어렵다. 가령 회사에 부도가 발생할 경우 현 제도에서는 적립금의 부족이나 운용수익률의 하락으로 인해 근로자의 퇴직급여 수급권이 침해될 개연성이 존재하지만 기금형으로 전환할 경우 회사와는 독립된 수탁법인이 퇴직기금을 운용·관리하고 있어 이러한 위험으로부터 절연되는 이점이 있다.

또한 현행 제도에서는 회사와 계약한 특정 금융기관이 제공하는 상품들 가운데서 연금포트폴리오를 구성해야 하는 제약이 존재하나 기금형인 경우 이러한 제약에서 보다 자유로울 수 있어 퇴직연금 계약의 유치와 상품 개발을 위한 금융기관들의 경쟁으로 연금상품 라인업(line-up)의 양과 질 모두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리고 계약형에서는 사용자와 금융기관 간 유착으로 인해 퇴직연금 사업자인 금융기관이

수익자인 근로자가 아니라 사용자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도모하는 주인-대리인 문제의 소지가 있었으나 기금형에서는 신탁자와 수탁자의 유인이 서로 합치되므로 이러한 문제는 불식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미 운용지시를 근로자가 직접 하고 있던 DC형의 경우 기금형의 도입에 따른 추가적인 수수료 부담과 같은 우려도 존재하는 등 기금형 역시 그 나름의 문제와 숙제를 안고 있기에 선험적으로 기금형과 계약형의 우월을 단정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기존의 계약형에 기금형을 도입해 병렬적으로 운용하면서 제도 간 상호 경쟁을 통해 우리 실정에 맞는 퇴직연금 제도를 모색해나가야 할 것이다.

[글. 송준혁 한국외대 경제학부 교수]

 

CEONEWS는 국제 의료 NGO ‘한국머시쉽‘의 활동을 응원합니다.
저작권자 © 씨이오뉴스-CEONEWS-시이오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