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일 (金炳日) 도산서원 원장

 

최근 언론에 무릎과 정강이, 복사뼈까지 시퍼렇게 멍든 다리 사진이 자주 등장한다. 그런데 우려스러운 것은 이런 상처가 불량배들의 난투극이 아니라 고급 전문직인 의사들이 일하는 큰 병원에서 발생한 구타와 폭행의 결과라는 사실이다. 그것도 조직(병원) 내부 상하 간에 벌어진 일이라는 데 심각성이 더 있다. 교수 의사나 선배 전공의가 제자 또는 후배 전공의(1년 과정 인턴과 4년 과정 레지던트)에게 휘두른 개인적인 폭력이나 단체 기합의 과정에서 생긴 상처들인 것이다.

이런 사례는 이미 여러 대학병원에서 두루 행해지고 있는 관행이자 문화인 듯하다. 관련 조사에 의하면 매 맞는 전공의가 20%를 넘고, 이중 가해자가 내부의 교수와 선배인 경우도 10%에 이른다고 한다. 신체적 가학행위에만 그치지 않는다. 폭언은 훨씬 빈번하여, 이를 경험한 비율이 70%를 넘는다. 경제적 정신적 가해도 심각하다. 선배들의 배달음식비를 자비로 대신 지불하고 대가 없이 수시로 불려나와 노력봉사를 한다는 증언과 성희롱으로 고통 받는 여성 전공의들의 피해 호소가 잇따른다.

왜 이 지경까지 되었을까? 매를 맞거나 모욕을 당해도 참고 견딜 수밖에 없는 구조가 중심에 있다. 전공의는 의사자격은 취득했지만 온전한 의사가 되려면 추가로 전문의 자격을 획득해야 한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는 전공의 5년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이 과정에서 교수와 선배에게 각종 의료기술도 배우지만 인사평가와 논문지도 역시 전적으로 그들의 손에 의지해야 한다. 따라서 그들 눈에 벗어나면 병원에서 나갈 각오를 해야 하고 전문의도 포기해야 한다. 대부분의 전공의가 부당한 대우를 참고 견딜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이러한 상황을 교수나 선배들이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일부는 이를 악용하여 이처럼 심하게 대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제자나 후배를 ‘가르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우발적인 사건이라고 말한다. 지금 세상에 가르침을 빌미로 이렇게까지 심하게 다루는 경우가 또 있을까? 교수와 선배 전공의들은 제자와 후배들이 스스로 ‘노예 전공의’라고 자조하는 현실을 ‘교육’이라는 미명 아래 호도해서는 안 된다.

선진국에 버금가는 의술을 자랑하는 대한민국 병원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더 이상 방관해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갑질문화를 바로 잡기 위해서도 사회 상층부 전문직이 모여 있는 병원의 비인간적 관행과 문화를 개선해야 한다. 그런데 논의되는 대책들은 너무 미온적이고 지엽적이다. 사건이 발생한 병원에서는 이미지 추락에 더 신경 쓰며 기껏해야 해당 교수를 정직 조치하는 데 그친다. 이러다 보니 그들이 복직했을 때 문제를 제기한 피해자는 어떻게 될지 오히려 걱정이 앞선다. 감독관청의 개선안도 문제 병원의 예산을 줄이거나 수련기관 지정을 취소하겠다는 것이 고작이다. 이렇게 해서 근절이 되겠는가?

근본적인 해소책은 이 행위가 생겨난 본질에서 찾아야 한다. 그것은 가해자의 잘못된 ‘마음가짐’이다. 그러니 그들의 마음부터 바뀌어야 한다. 가해자인 교수와 선배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제자와 후배는 누구인가? 먼저 가르침의 대상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무시해서는 안 되는 또 다른 측면은 그 제자와 후배들이 동료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자신들이 책임지는 의료행위의 성공확률을 높이려면 동료를 인격적으로 대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제자와 후배 전공의도 소중한 인격체들이다. 지금은 배우는 수련생이지만 머잖아 사회의 동량이 될 미래의 주인공들이다. 이들의 인격을 존중할 때 그들 또한 교수와 선배를 따르며 더욱 존경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통해 습득된 인품을 통해 환자에게도 더욱 성심껏 인술(仁術)을 베풀 것이다. 이것이 모두가 윈-윈 하는 길이다. 생명을 다루는 의료분야에서부터 인간사랑과 상호존중의 문화가 싹터 도덕사회를 앞당기는 밑거름이 되었으면 좋겠다.

※ 이 칼럼은 선사연에서 제공한 칼럼입니다.

김병일 (金炳日)

도산서원 원장,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

(전) 한국국학진흥원 원장

(전) 기획예산처 차관, 장관

(전) 통계청장, 조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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