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 나랏빚, 가계와 기업도 부채 쌓여

엄금희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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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EONEWS=엄금희 논설주간] 돈의 역사는 곧 인플레이션의 역사다. 이 때문에 '인플레이션이 끝났다'라는 말을 쉽게 믿어서는 안 된다. 물가가 하락하는 디플레이션의 조짐이 보였지만, 내막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인플레이션에 대한 경계 태세를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다. 통화를 붕괴시킬 수 있는 세력들의 움직임이 보이기 때문이다. 언뜻 보기에는 통화 붕괴 작전의 각본이 조금 다를 수 있지만 시대를 막론하고 화폐가 파괴되는 데는 일정한 패턴이 있었다.

1756년 발발한 7년 전쟁은 지폐 발행량을 늘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스웨덴 황실은 일부 산업에 보조금을 퍼주느라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있던 차에, 지폐 발행량을 늘려 국가의 재정 적자를 메울 수 있었다. 자,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상이 되지 않는가? 1759년 구리 동전의 가치는 명목가치보다 높아졌다. 아무도 지폐를 소유하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스웨덴은 전면적인 지폐본위제를 실시했다. 이제 지폐는 구리, 금, 은으로 교환할 수 없었다. 밤낮으로 조폐기를 돌렸다. 앞서 존로의 체제에서 일어났던 사태가 다시 발생했다. 화폐를 대량으로 투입하여 일시적인 경기 부양 효과는 있었지만, 얼마 가지 못해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여 내수 경제가 무너지고 말았다.

물가는 어떻게 상승할까? 구매력의 관점으로 볼 때 시중에 유통되는 화폐량이 적을수록 화폐 소유주는 자주 바뀐다. 노동자의 아내들은 남편이 하루 임금을 받을 때까지 수레를 세우고 기다렸다가, 임금을 받자마자 물건을 사려고 상점으로 달려갔다. 이런 상황에서는 돈의 소유주가 더 자주 바뀐다. 이런 상황을 나타내는 전문 용어 중 '화폐의 유통 속도'라는 표현이 있다. 화폐의 주인이 자주 바뀔수록 그 화폐는 빨리 처리하고 싶은 골칫덩어리다. 움켜쥐고 있으면 오히려 손해이므로 빨리 해치우는 편이 낫기 때문이다. 딱히 놀랄 일은 아니다. 국민경제와 관련된 지표를 기준으로 보아도 고인플레이션인 경우에는 GNP, 소비, 투자가 감소하기 때문이다. 고인플레이션은 경제 성장에 해가 된다. 이는 인플레이션의 역사를 통해 확인된 사실이다. 화폐 제도가 정상적으로 돌아가지 않는 국가는 국민의 행복을 희생시켰다.

스태그플레이션은 전 세계 정치인들과 경제이론가들이 자초한 일이다. 필립스 곡선이 말했던 것과 전혀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정치인들은 실업률과 인플레이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실업률과 인플레이션이 동시에 상승하면서 고통이 시작됐다. 정치인들에게는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결국 필립스 곡선은 경제사가의 서랍에서 퇴출되고 말았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1970년대 경제를 뒤흔든 핵심 축은 원유 가격이었다. 1973년 10월 6일부터 같은 해 10월 25일까지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 이집트와 시리아가 주축이 된 욤키푸르 전쟁, 또 다른 이름으로 라마단 전쟁, 10월 전쟁, 제4차 중동전쟁이 터지면서 OPEC 회원국들이 서방 선진국에 석유 수출을 중단한 것이다. 1973년 원유 1배럴 159리터 당 3달러였던 것이, 1979년에는 1배럴당 38달러로 폭등했다. 이때 생긴 신조어가 '공급파동'이다.

하노 벡, 우르반 바허, 마르코 헤르만이 쓴 'Inflation-Die ersten Zweitausend Jahre'책을 읽으며 누가 왜 인플레이션을 만들고 이용하는가? 인플레이션과 부채의 관계를 들여다본다.

코로나19 경제 위기 돌파를 이유로 대규모 재정지출이 일어나면서 나랏빚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 부자증세로는 빚 규모를 막기 어렵기 때문에 보편증세를 앞당기고 있다.

기획재정부가 내놓은 '월간 재정동향 2월 호'를 보면 지난해 국세수입은 285조 5000억 원으로 전년보다 7조 9000억 원으로 -2.7% 감소했다. 2018년에 법인세 최고세율을 3% 인상했지만, 오히려 법인세수는 줄어드는 추세다. 법인세 수입은 55조 5000억 원으로 전년보다 16조 7000억 원이나 줄었다. 23.1% 감소로 역대 최대다.

소득세 최고세율은 45%로 올랐지만, 증세효과는 미미하다. 정부는 세수 효과를 양도세를 포함해 1만 6000명 대상 9000억 원으로 예측했다. 소득세가 정부 예측대로 9000억 원 더 걷힌다고 가정해도 이번 추가경정예산을 조달하려면 11년이 걸린다. 이번 추경 국채 규모는 9조 9000억 원이다.

국회 예산정책처가 발간한 '2021 대한민국 재정'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국가채무 중 적자성 채무는 603조 8000억 원에 이를 전망이다. 전체 국가채무 956조 원의 63.8%를 차지한다. 적자성 채무는 상환할 경우 세금이 투입된다. 별도 재원 없이 자체 상환이 가능한 금융성 채무와 다르다. 추경이 통과하면 연말 적자성 국가채무는 613조 7000억 원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적자성 채무는 최근 급증했다. 지난 2016년 359조 9000억 원에 불과했다. 5년 동안 67.7%가 증가했다. 지난해에는 1년 만에 110조 원 이상 적자성 채무가 늘었다. 코로나19 대응으로 각종 현금성 사업을 추진했기 때문이다.

법인세를 늘렸지만 세수 규모는 오히려 줄었고, 부자증세로 국제경쟁력이 약해지는 묘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지난해 285조 원이 세수 전부인데, 4차 재난지원금을 나눠준다. 부자증세로는 어림없다. 국가부채가 늘어나면 결국 보편증세를 해야 할 것이다.

가계와 기업을 포괄하는 민간부채 규모도 위험 수준에 도달했다. 우리나라의 공공부문 대비 민간부문 부채 비율이 주요 20개국 중 상위권에 진입한 데다 앞으로 민간부채 비율이 높아질 가능성도 농후하다.

우리나라 공공부문 대비 민간부문의 부채 규모는 이미 주요 선진국보다 훨씬 크다. '2021년도 제1회 추가 경정 예산안 검토보고'를 보면 우리나라의 공공부문 부채 대비 민간부문 부채 규모는 2019년 기준, 3.51 배이다. 민간부채는 가계부채와 기업 부채의 합산액이다. 미국 1.38배, 독일 1.92배, 프랑스 2.19배, 일본 0.69배 등 주요 선진국을 이미 큰 폭으로 넘어섰다. 이는 국내총생산 GDP 대비 공공부채 수준은 56.17%로 G20 평균인 76.6%보다 낮은 데 비해 민간부채 중 가계 부채의 비중은 매우 높다.

분야별로 살펴보면, 지난해 3·4분기 기준 가계부채는 GDP 대비 101.1%로 G20 국가 평균 66.6%보다 높다. 주요국인 미국 78%, 영국 88.9%, 중국 61.1%, 일본 64.3% 등과 비교해도 현저히 높다.

민간부채의 다른 축인 기업 부채도 심각한 수준이다.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내는 좀비 기업이 빠르게 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3년 연속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내는 한계 기업은 2019년 3475개, 전체 기업 대비 14.8%로 2010년 통계 작성 이후 최대를 기록했다.

그러나 양적완화 정책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행위다. 사실상 채권은 국가의 부채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국가는 자본시장에 자금을 빌려주고, 빌려준 자금에 대해 유가증권을 발행한다. 유가증권에는 상환 시점과 대출 이율이 명시되어 있다. 중앙은행이 채권을 대량으로 사들이면 결국 국가의 부채를 인수하여 관리하게 되는 셈이다. 이는 국가의 부채와 현금을 교환하는 꼼수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이런 상황을 '국가의 부채를 처리하기 위한 통화 부양'이라고 한다. 쉽게 말해서 화폐 발행량을 늘려 국가의 부채를 운용하는 속임수다. 초인플레이션 사태를 당해봤으니,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짐작이 가지 않은가?

부채를 처리할 때도 인플레이션만큼 효과적인 방법은 없는 셈이다. 결국 인플레이션만큼 국가의 채무를 해결하기에 매력적인 방법은 없다. 우리는 국가에서 이러한 메커니즘을 간파하고 앞장서서 인플레이션을 조장해온 역사를 알 수 있다. 이처럼 오랜 교훈을 정치인들이 잊을 리 없다. 그런데 또다시 인플레이션을 조작하라는 유혹이 손짓을 하는 부채공화국 대한민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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