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항 구룡포 100년을 걷다
“행복은 좇는 게 아니라, 음미야.
서 있는데서 이렇게 발을 딱 붙이고 천천히 둘러보면, 봐봐. 천지가 꽃밭이지.”
-KBS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중-
[CEONEWS=김영란 기자] 공감어린 대사와 훈훈한 내용으로 시청자들을 울리고 웃겼던 KBS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의 촬영지 포항 구룡포. 드라마는 끝났지만 이곳 구룡포는 동백이와 용식이의 알콩달콩했던 사랑의 흔적을 찾아보기 위한 관광객들로 늘 북새통이다. 투닥이며 사랑의 밀당을 하던 좁다란 골목길, 금방이라도 문을 열고 누군가 나올 것 같은 까멜리아, 까칠하지만 속정 깊은 옹벤져스가 말이라도 걸 것 같은 이곳만의 푸근함은 분명 혼자만의 느낌은 아닐 것이다.
착취의 아픔을 기리는 ‘근대문화역사거리’
구룡포는 포항 근처를 여행했던 사람들이라면 드라마 유명세가 아니더라도 이미 한 번쯤은 와 봤을 곳이다. 구룡포는 원래 대게나 과메기가 명물인 곳으로 알려져 있지만, 100여 년 전 가가와현(香川縣)의 고깃배들이 이곳까지 오게 되면서 이주해 온 일본인들이 집단 거주지를 형성하면서 현재까지 남아있다. 선박경영과 선박운반업, 통조림 가공공장 등으로 부유해진 일본인들로 인해 음식점, 제과점, 술집, 백화점, 여관 등 최대 번화가로 성장하면서 1932년에는 300여 가구에 달하는 일본인들이 살았다고 전해진다.
'‘근대문화역사거리’ 또는 ‘일본인 가옥 거리’로 불리고 있는 이곳은 1883년 조선과 일본이 체결한 ‘조일 통상 장정’ 이후 일본인이 조선으로 와서 살았으며 해방 이후 가옥 몇 채만 남아 있었으나, 일본풍 가옥을 재보수해 일제 강점기 당시 풍요로웠던 일본인들의 생활 모습을 보여 줌으로써 일본에게 착취되었던 우리 민족들의 아픔을 기억하기 위해 포항시에서 재정비하였다고 한다.
일본인들이 살던 적산가옥과 일본풍 찻집, 주점, 음식점 등이 500m 정도의 거리에 늘어서 시·공간을 벗어난 묘한 느낌마저 준다. 드라마에서는 ‘옹산’ ‘간장게장거리’라는 컨셉으로 정겹게 설정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이와는 전혀 무관한 역사적 아픔의 공간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겠다.
구룡포 과메기 드시러 오세요!
의미깊은 근대문화역사거리를 걷다 경사진 골목길에 접어들면 구룡포의 설화를 스토리텔링하여 만든 창작 캐릭터 ‘용이’의 모습을 형사화한 ‘동백꽃담’이라는 조형물이 눈앞에 나타난다. 이곳은 구룡포 벽화마을로 나지막한 집들이 옹기종기 붙어있는 모습이 정겹다. 담벼락이나 집 간의 경계가 낮은 길을 따라 벽화를 보며 걷다보면 너머로 보이는 바다의 풍경에 시야까지 시원해진다.
담쟁이덩굴이 늘어진 돌담이 둘러 싼 바다가 훤히 보이는 마당있는 집, 이곳이 드라마 주인공인 동백이가 살던 곳이다. 마당을 딛고 서서 반짝거리는 바다를 바라보노라면 얼마쯤이고 이집에서 살아보고픈 마음이 일렁인다. 인기 드라마 주인공의 집답게 대문 앞은 기념촬영을 하기 위한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다.
동백이집을 지나 언덕 끝으로 올라가면 포항의 명물인 구룡포 과메기문화관이 나타난다. 과메기는 말린 청어인 ‘관목청어(貫目靑魚)’에서 나온 말이다. 꼬챙이 같은 것으로 청어의 눈을 뚫어 말렸다는 뜻이다. 영일만에서는 ‘목’이란 말을 흔히 ‘메기’ 또는 ‘미기’로 불렀다. 이 때문에 ‘관목’은 ‘관메기’로 불리다가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관’의 ㄴ받침이 탈락되고 ‘과메기’가 되었다.
과메기문화관은 고래형상의 외형으로 수려한 아름다움을 지닌 건물로, 정원에는 포항시립미술관에서 제공된 스틸아트 조형물이 조화롭게 배치되어 있다. 구룡포 과메기문화관은 과메기 홍보관, 과메기 문화관, 3D영상체험관, 어린이해양체험관 등 총 4개 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홉 마리 용의 승천지, ‘구룡포’
공원을 건너가면 동백이와 용식이가 걸터앉아 서로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던 포스터의 배경이 된 계단이 나온다. 공원 계단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어촌의 모습이 한눈에 들여다보여 서민의 생활상이 잘 드러난다고 해서 대한민국 경관대상을 받은 곳이기도 하다.
그 배경이 마치 한 폭의 수채화 같아 드라마 주인공들의 포즈대로 젊은 연인들은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기 바쁘다. 그 순간만큼은 착하고 여리지만 누구보다도 강한 동백이, 순박섹시한 촌므파탈 용식이로 분해 영원한 사랑의 증표로 남기고 싶어서리라.
계단 옆 바다를 배경으로 조성된 ‘용의 승천 – 새빛 구룡포’라고 적힌 용 조형물의 기세는 이내 하늘로 승천해 올라갈 듯 위엄이 대단하다.
신라 진흥왕 때 장기 현령이 각 마을을 순시하다가 지금의 구룡포 6리(용주리)를 지날 때였다. 갑자기 바다에 큰 폭풍우가 휘몰아치고 거대한 용 열 마리가 하늘로 오르기 시작하였는데 그 중 한 마리가 바다로 떨어졌다. 그러자 바닷물이 붉게 물들면서 폭풍우가 그치고 바다가 잔잔해졌다. 이후, 아홉 마리의 용이 승천한 포구라 하여 ‘'구룡포’ 라고 한다. 또 다른 전설에 의하면 용두산 아래 깊은 소(沼)가 있었는데 이 소(沼)메 안에 아홉 마리의 용이 동해로 승천하였다고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이렇게 ‘구룡포’라고 불리게 된 설화를 살펴보면 더욱 이 조형물이 주는 감흥이 이곳 장소와 안성맞춤인 듯하다.
드라마, 그리고 남겨진 이야기
드라마 촬영장소를 물색하던 스텝이 이곳의 아름다움에 반해 ‘옹산’으로 탈바꿈시킨 구룡포 근대문화역사거리. 이 거리에 위치한 동백이의 삶의 터전 ‘까멜리아’는 드라마 흥행의 여파로 아직도 건물에 그 간판을 달고 있지만, 실제로 그 곳은 구룡포 근대화마을에 있는 문화커뮤니티 ‘문화 마실’이란 곳이다. 이곳은 포항시에서 문화예술공간으로 무료운영하고 있는데,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들의 작품, 예술품 등을 전시·판매하는 열린 공간이다.
구룡포를 게장마을로 오인하게 한 ‘옹산 게장마을’도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용식이 어머니 곽덕순의 ‘백두게장집’도 설정일 뿐 실제론 ‘호호면옥’이라는 중국음식점이다.
일본인이 거주하던 당시 요리점이었던 ‘'후루사또야’ 일본가옥은 내부 형태 그대로 보존되어 찻집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드라마 속의 사거리 떡집과 셰리미용실도 변함없이 현존하고 있다.
아름다운 풍경과 따스함, 사랑이 묻어나는 장소에서 동시에 느끼게 되는 착취와 수탈의 아픔. 힐링과 함께 지난 역사의 흔적을 돌아보는 이 시점에서 문득 이 대사가 생각나는 걸 왜일까.
“남들 보란 듯이 행복한 것 진즉에 포기했다. 행복을 수능 성적표로 생각하고 올려다봐도 답이 없더라. 그건 니들 기준이고 내 점수는 내가 매기고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