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타왕(TAWANG)에서 만난 1962년 중국·인도 전쟁의 기억

 

타왕 마을의 한 집에서 우연히 만난 라마

[CEONEWS=김관수 기자] 최근 인도와 중국의 군대가 국경에서 맞닥뜨렸다. 지난 6월 라다크 지역에서의 충돌로 인하여 인도군 2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이후 양국 군대는 분쟁이 일어난 국경 지역에 대규모 무기를 신속하게 집결시키며 바짝 긴장감을 높이고 있었다. 더욱 심각한 상황은 지난 97일 발생했다. 계속 이어져온 대치상황 중에 판공호수 근처에서 총기사격이 발생했다. '총기휴대금지' 협정을 맺고 있는 두 나라 간에 지난 1975년 이후 처음으로 일어난 총기 사용 상황으로 기록됐다.

양국 외교부는 빠른 조치를 통해 '국경분쟁을 피해야 한다'는 내용에 의견을 같이 하고, 평화로운 해결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긴장의 끈을 놓을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양국의 국경분쟁은 이제 막 시작된 문제가 아닌, 오래된 논쟁이고 꺼지지 않는 불씨이기 때문이다.

멀리 타왕사원과 인근을 날아다니는 군용헬기
멀리 타왕사원과 인근을 날아다니는 군용헬기

타왕?

2018년 초겨울, 인도 동북부의 아루나찰 프라데시(ARUNACHAL PRADESH)에 다녀왔다. 흔히 떠올리는 인도인의 모습이 아닌 티벳 또는 중국인의 생김새와 유사한 인도인들이 살고 있어 그야말로 새로운 인도를 경험할 수 있었던 여행이었다. 7000 미터가 넘는 히말라야의 고봉들이 광활하게 펼쳐져 황홀한 풍경이 이어지는 아루나찰 프라데시는 동북으로 중국과 맞닿아 있고, 티벳과도 가까우며, 서로는 부탄, 남으로는 방글라데시, 미얀마 등과 경계를 이루고 있어 다채로운 문화의 공존과 함께 묘한 긴장감도 느껴지는 지역이었다.

아루나찰 프라데시 여행은 차량으로 고산 지대를 이동하는 시간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제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옛 대관령 고갯길의 험난함보다 훨씬 더 극심하게 이어지는 지그재그 도로, 게다가 포장마저 되어 있지 않은 길과 산 중턱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는 길이 여정의 상당 부분을 차자하고 있어 '덜컹거리는 차를 탄 기억만 남는다'는 말이 틀린 말도 아니다. 그럼에도 그 힘든 고행길을 찾아오는 여행객들이 꽤 많다. 그들 대부분의 최종 목적지가 바로 타왕이다. 해발 3천 미터가 넘는 도시, 타왕은 '천상의 낙원', '신이 선택한 땅'이라는 의미를 품고 있다.

티베트의 라싸에 이어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규모의 티베트 불교사원이자 인도에서 가장 큰 불교사원이 있는 곳. 중국 국경과는 불과 20여 킬로미터의 거리 밖에 떨어지지 않은 도시. 삼엄한 경계의 대규모 군부대가 도처에 주둔하고 있는 도시.

인도와 중국 사이의 오래된 영토분쟁

최근 발생한 충돌은 국경 서쪽의 라싸 등지에서 벌어졌지만, 동쪽에 위치한 아루나찰 프라데시 역시 오래전부터 중국과의 영토분쟁이 지속되어 온 지역이다. 먼 과거로부터 아루나찰 프라데시 지역은 티베트의 영토였는데, 인도가 영국에게 식민 지배를 받고 있을 때, 당시 영국에 의해 인도의 영토로 편입됐다. '맥마흔 라인(McMahon Line)'이라고 불리는 국경선이 1914년 영국과 티베트 간에 맺어진 시믈라 협정(Simla Conference)을 통해 그어진 것이다. 시믈라 협정 당시 영국 측의 수석대표 이름이 '헨리 맥마흔'이었다. 하지만 중국은 이를 거부하며 자국의 영토라고 주장해오고 있고, 현재도 인도와 중국 두 나라는 이 문제를 두고 심각하게 대립하고 있는 것이다.

전쟁기념관 앞 부대, 한국여단
전쟁기념관 앞 부대, 한국여단

타왕 전쟁기념관(TAWANG WAR MEMORIAL)

타왕여행의 핵심 포인트 중 한 곳이 '타왕 전쟁기념관'이다. 이곳은 19621020일부터 1121일까지 약 한 달가량 인도와 중국이 벌였던 'Indo-China War‘ 또는 'Sino-Indian conflict'라고 부르는 전쟁에서 희생당한 수많은 인도 군인들의 충혼을 기리기 위한 공간이다. 커다란 초르텐(불탑) 내부에는 전쟁 당시의 상황을 확인할 수 있는 기록물과 인도 군대가 사용했던 여러 장비들이 전시되어 있다.

특이하게도 기념관 바로 앞에는 군부대가 있고,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산 중턱에 내려앉은 노란 타왕사원이 보인다. 바로 티베트의 라싸에 이어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규모의 티베트 불교사원이다. 군부대 입구에 걸린 부대명은 'KOREA BRIGADE'. 묘한 분위기 속에 한국인으로서 엄청난 궁금증이 몰려들었지만 자세한 내막을 아는 이는 만나지 못했다.

기념관 뒷마당에서는 저녁마다 작은 공연도 열린다. 어둠이 히말라야 뒤로 내려앉을 시간 야외극장에서 열리는 공연은 1962년 전쟁 당시의 상황과 그 배경 등을 소개한다. 타왕을 찾은 외국인들에게 지금까지도 이어져오고 있는 그들의 아픈 과거와 현실을 알리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담은 것 같다. 뉘엿뉘엿 넘어 가는 석양 아래에서 펼쳐지는 전쟁이야기는 알아들을 수 없지만, 그저 서글프다. "왜 이곳에 전쟁이? 지금까지도."

전쟁기념관 입구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가 갑작스럽게 경계를 서던 군인으로부터 제지를 당했다. 동행했던 현지 가이드와 군인 사이에 잠시 실랑이가 벌어졌다. 한참 이야기를 나눈 뒤 가이드는 상황을 전했다.

"이런 상황이 거의 없었는데, 정확한 이유는 얘기하지 않지만 오늘 주변 부대에 비상 상황이 내려진 것 같다. 그래서 헬기들이 군 수뇌부들을 태우고 이 지역으로 계속 날아오고 있다고 한다. 조금 전, 여행객들의 방문과 사진촬영을 제지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고 한다."

타왕 전쟁기념관
타왕 전쟁기념관

오로지 평화와 불심만 존재할 것 같은 땅

그곳에서 만난 전쟁기념관과 군인의 제지는 사실 엄청난 반전이나 놀라움은 아니었다. 여행을 처음 시작한 아루나찰 프라데시 주의 관문 '구와하티(GUWAHATI)'에서 타왕까지 이르는 약 3일 동안 이미 영토분쟁 지역의 긴장감을 충분히 체감했기 때문이다. 히말라야의 깊은 산속에도 주둔하고 있는 수많은 군부대, 끊임없이 이동하는 병력과 군용트럭. 어쩌면 아루나찰 프라데시에서 두 눈에 담은 것들의 절반은 군 관련 시설과 사람 그리고 그들이 이어가고 있는 원하지 않는 삶의 이야기들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타왕과 아루나찰 프라데시의 미래는 어떻게 진행될까? 그들은 인도인으로 남고 싶어 할까? 아니면 새롭게 중국인이 되고 싶어 할까? 궁금하지만, 안타깝게도 세상은 그들의 마음의 이야기를 들어줄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인간의 멈출 줄 모르는 욕망, 그 욕망의 화신들이 벌이는 유무형의 전쟁과 약육강식의 규칙만이 타왕과 아루나찰 프라데시의 미래를 결정지을 것 같다. 그리고 결국, 전쟁의 역사는 끊임없이 반복될 것이고, 그 땅에서 태어나 삶을 일구던 힘없는 이들만 애꿎은 죽음에 이를 것이다. 지금껏 여행하며 가장 아름다운 미소를 만난 땅, 그곳에 평화가 떠나지 않기를 기도한다.

가게에서 만난 인도군
가게에서 만난 인도군

“China has claimed the entire state of Arunachal Pradesh (AP) as being the three districts of lower Tibet, namely, Monyul, Loyul, and Lower Zayul.”

중국은 아루나찰 프라데시 주(AP) 전체를 영유권 주장해왔다. 티베트 하부의 세 구역, ,

Monyul, Loyul, Lower Zayul.“ (출처: Force magazine)

 

/사진 트래블에브리띵스 김관수 travel.everything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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