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영화 『가을로』

귤암리
귤암리

[CEONEWS=김지훈 기자] 영화를 말하다

영화 가을로20061026일 개봉했다. 유지태, 김지수, 엄지원이 주연을 맡았으며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 ‘혈의 누를 연출한 김대승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대한민국 최악의 참사로 기록되는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피해자들과 주변인들이 사고의 상처로부터 치유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남녀의 애정을 다루는 멜로물의 성격이 강하지만 주인공들이 여행을 떠나는 것이 주요 설정이 되는 로드무비다.

국내 여행 명소를 촬영지로 선정하여 가을이라는 계절적 색을 입혀 촬영하면서 대한민국의 아름다움을 잘 담았다. 당시 영화를 테마로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도 많았다. 로케이션 촬영이 주를 이루며 국내 영화 중 배경이 아름답기로 손꼽힌다. 정식 개봉 전, 11회 부산국제영화제의 개막작 영화로 선정되어 상영되는 영광도 누렸지만, 개봉 후 흥행에는 실패했다.

리와인드

1995629.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구슬치기를 즐기다가 해가 떨어지며 집으로 들어왔을 때 뉴스에서 끊임없이 속보를 전했다. 서울에 있는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다는 소식이었다. 지금처럼 방송사가 많은 시절이 아니었기 때문에 종일 이런 속보를 접하곤 했다. 어른들은 민감한 소식에 촉각이 곤두섰고 어린 학생도 마찬가지였다. 혀를 차는 할머니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브라운관을 응시하는 가족들의 얼굴이 아직도 선명하다.

서울에 사는 친지들에게 모두 전화를 걸어 안부를 확인하느라 부모님은 분주했다. 우리나라 부실공사의 어두운 낯을 드러냈으며 500명 이상의 생명을 앗아간 대형사고는 6.25 이후 최악의 사건 사고로 기록되었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11년 후 영화 가을로가 개봉되었다. 군 생활을 하고 있을 때라 외박을 받아 허름한 홍천의 어느 숙소에서 감상했다. 재미와 감동보다 보는 내내 눈을 사로잡는 영화 촬영지에 빠져들었다. 전역 후 꼭 그들이 밟았던 길을 밟고자 다짐했었다.

스크린 속 현실 속

사랑하는 이가 밟았던 길을 그리고 한 번의 인연으로 그녀를 그리워하며 떠난 치유 여행에 동참했다. 2주에 걸쳐서 떠난 여행이었고 촬영지가 아름다웠던 만큼 황홀했던 여행이 되었다. 전국 각지에 흩어진 촬영지를 영화 속 시간의 흐름에 맞춰 떠나보자.

오프닝 장면은 전라남도 신안군 우이도 모래언덕에서 촬영되었다. 신두리 해안사구와 함께 우리나라의 사막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사막이라 하기에는 무리가 따르겠지만 영화 속에서도 그런 표현을 썼으니 염치없이 빌려본다. 꼭 한번 가고 싶었던 섬이나 시간상 부담이 큰 곳인 만큼 여행에서 제외했다.

한편으로 이 영화에서는 강한 인상을 남기는 촬영지가 많다는 말이 되겠다. 꼭 가지 않더라도 후회의 감정이 남지는 않았다. 이후 주인공들이 부모님에게 인사차 시골로 떠나는 장면이 있다. 화면을 보는 순간 동강이라는 것을 알았다. 강원도 정선 귤암리에서 촬영되었는데 그 아름다움에 반해서 한참을 오갔던 장소다. 기암과 산 그리고 강이 아울려져 산수화를 연상하는 풍경이 이어지는 곳이다.

소쇄원
소쇄원

눈이 소복이 내려앉은 과거의 여자는 다이어리에서 빼낸 낙엽을 물길에 흘려보낸다. 나무로 된 수로를 따라 낙엽은 흘러가고 화면은 전환되어 가을날 현재의 남자 손에 닿는다. 시적인 이 장면은 겨울과 가을에 촬영되었는데 다리 뒤로 펼쳐진 정자의 풍경이 워낙 인상적이라 꼭 들러야 했다.

전라남도 담양군에 위치한 소쇄원이다. 소쇄옹 양산보는 기묘사화로 스승 조광조가 사약을 받고 사망하자 이에 충격을 받고 벼슬길을 등지게 되었고 고향으로 낙향하여 소쇄원을 지었다고 한다. 각종 영화와 드라마, 예능 촬영지로 인기가 많은 장소다. 그런 만큼 훼손 문제도 따르는데 모 드라마 촬영이 있던 때에는 사회문제로 대두되기도 했다. 스크린 속에 비치는 아름다운 모습이 오래 보존되었으면 한다.

보경사 12폭포
보경사 12폭포

여행의 허기를 달래기 위해서 남자는 횟집으로 들어간다. 그곳에는 낯선 여자가 있었고 꽉 찬 손님들로 합석을 하게 된다. 주인장의 억센 경상도 사투리가 들려왔고 이들이 전라도와 경상도의 경계를 넘었음을 넌지시 알려준다.

바뀐 장면에서 그들은 등산한다. 아름다운 폭포를 배경으로 행복했던 순간을 회상한다. 웅장한 계곡 사이를 흐르는 폭포수와 구름다리는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충분한 광경이다. 배경이 된 곳은 경상북도 포항시에 위치한 내연산 보경사 12폭포이다. 그중 스크린에 노출된 곳은 12개의 폭포 중 6번째 관음폭포와 7번째 연산폭포다. 구름다리를 기점으로 아래 위치한 아름다운 폭포가 관음폭포고 구름다리 위에 있는 것이 연산폭포다. 극 중 엄지원이 등산객 사진을 찍어주고 유지태가 스쳐 지나가는 장면을 떠올리면 된다.

월송정
월송정

 

새로운 아침이 시작되기 전 새벽, 히치하이크를 시도하는 여자 그리고 발견하지 못하고 무심하게 지나가는 남자. 그들이 향한 곳은 경상북도 울진군에 위치한 월송정이다. 신라 화랑들이 울창한 송림에서 달을 즐기며 선유하였다는 정자다. 먼저 도착한 그의 어깨너머로 동해 아름다운 일출이 펼쳐지고 잠시 후 트럭을 타고 도착한 그녀가 내려서 같은 곳을 바라본다.

정자 위의 남자와 아래에서 같은 곳을 응시하는 여자의 모습은 일출만큼 아름답고 낭만적이다. 재미있는 것은 지도를 들고 유지태가 불영사로 가는 길을 물어보는데 세월의 흔적을 느끼게 된다. 요즘이면 내비게이션을 보고 찾아가느라 그들이 함께 차를 타고 여행하게 된다는 설정이 비약으로 다가오지도 않겠냐는 말이다. 영화에서 그만큼 중요한 장면이자 장소가 된다.

불영사
불영사

영화 가을로에서 유일하게 코믹하게 그려지는 장면이 아닌가 생각된다. 울진군에 위치한 불영사를 찾는 장면으로 과거의 민주(김지수)가 방송차 연출을 위해서 스님의 인터뷰를 담아낸다. 절의 유래를 설명하는데 방문객들 때문에 NG가 계속되는 그런 장면이다. 이후 화면이 전환되며 유지태와 엄지원이 함께 찾아 절을 둘러본다. 의상대사가 세운 절로 연못에 부처님의 그림자가 비친다 하여 불영사라 했다. 당시와 비슷한 모습으로 아직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절이며 영화 속 설명처럼 멋진 경관과 신비함을 남긴다.

불영계곡을 따라 걸으며 대화를 나누던 그들은 식사 후 각자의 길을 떠난다. 남자가 향한 곳은 울진군에 위치한 금강소나무 숲이다. 3년간 휴식기에 들어간다는 안내판을 보고 더 나아가지 못한 그는 다음 목적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민주의 다이어리를 보는 순간 이상한 낌새를 차린다.

이 길을 가다 만나는 마을들은 이름을 한 번씩 꼭 불러줘야 할 것 같아. 안 그러면 서운할 거 같아서 병곡, 후포, 평해, 월송, 덕산.”

그는 차를 몰고 다음 행선지를 향해서 질주한다. 그녀가 있을 거라는 확신을 하고 도착한 곳은 증산역이다. 강원도 정선에 위치한 이 역은 태백선과 정선선의 분기가 되는 철도역이다. 그를 발견하고 그녀는 급히 몸을 숨긴다. 안타까운 장면을 담고 있는 이 역은 현재 민둥산역으로 불린다.

허탈감에 빠진 남자는 웅장한 숲속 길을 오른다. 먼저 도착했던 여자는 숲길을 내려온다. 마주친 그들은 민주의 존재를 확인한다. 울렁이는 감정을 진정시키고 대화를 이어나간다. 여행이 시작된 이유와 여행지에서 계속 마주쳐야 했던 우연이 설명되는 순간이다. 배경이 되는 숲길은 강원도 평창군에 위치한 월정사 전나무숲이다. 부안 내소사, 남양주 광릉 수목원과 더불어 한국 3대 전나무 숲 가운데 하나로 알려진 곳이다.

전나무숲
전나무숲

영화 막바지 월송정 장면을 떠올리듯 남자는 산 위에서 그리고 여자는 산 아래 강가에서 교차 되는 장면이 있다. 그런데 산에서 바위가 잘려나간 듯 웅장하고 날카로운 기암이 관객의 눈을 현혹한다. 흘러나가는 강과 함께 아울려져 산수화에서나 볼 수 있을법한 풍경이 스크린에 펼쳐지는데 남자 혼자 덩그러니 서 있으면서 쓸쓸함을 더한다. 촬영된 장소는 강원도 영월군에 위치한 선돌이다. 영화 가을로촬영지 안내판이 크게 자리하고 있어. 영화를 감상하지 않은 여행자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영화의 엔딩. 과거의 민주가 방송을 마치고 복귀하는 길, 차를 타지 않고 아름다운 숲길을 걷는다. 그리고 남겨진 남녀는 재회해서 민주가 걸었던 길을 나란히 걸으며 영화는 끝난다. 가을 낙엽송이 인상적인 이곳은 담양군에 위치한 메타세콰이어길이다.

영화 와니와 준하에서 와니가 아버지와 함께 차를 타고 지나가는 장면과 영화 화려한 휴가오프닝 장면이 촬영된 곳이다. 극 중 김상경이 택시를 타고 지나가는 장면을 떠오를 것이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최우수상을 받을 만큼 아름다움을 간직한 길이다.

담양 메타세콰이어길
담양 메타세콰이어길

여행의 시간

영화 가을로는 전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대부분 우리나라 동쪽에서 촬영되었다. 우이도 모래언덕, 소쇄원, 불영사, 내연산 12폭포 등 아름다움으로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장소에서 촬영된 만큼 취재 전 여행 욕구를 억누른다고 힘들었다. 대부분 들렀던 곳이었지만 세월의 흐름만큼 빛바랜 사진도 있어서 재촬영이 필요했다. 촬영 당시 태풍 바비가 한반도로 접근 중이라 몇 번을 고민한 끝에 태백산맥 동쪽에 위치한 촬영지를 찾아 떠나야 했다. 태풍의 영향권에서 멀어지면 괜찮을거라 생각했고 이는 적중했다. 모험심을 비웃듯 날씨는 연일 화창했고 23일 동안 촬영을 마쳤다.

1년 동안 진행된 스크린 속 현실 속의 마지막 편이 될 영화이자 글의 초석이 될 부분이라 최선을 다했다.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은 욕심이 다분했었다. 과욕은 휴식을 보장하지 않았고 담양에서는 생에 유례가 없는 더위와 싸워야 했다. 오토바이 열기와 더해져 대시보드에 46도라는 믿기지 않는 숫자가 찍혔다. 휴식 없이 이동하다가 현기증에 결국 멈춰 쓰러져 누웠다. 제어되지 않는 심장박동 소리에 이러다 죽겠구나 싶었다. 한여름 뉴스에서 어렵지 않게 접했던 폭염 사망 소식이 가깝게 느껴졌다.

태풍까지 발목을 잡았다면 아찔한 마무리가 되지 않았을까? 간절한 마음이 목표를 이루게 만든 것이라 믿는다. 그동안 함께 했던 일행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고 보니 취재 여행은 사람으로 완성되었다. 그 인연들과 함께 밤새 술잔을 기울이는 날을 상상해본다.

영화 촬영지를 남긴다.

울진 월송정, 불영사, 경희대학교 중앙도서관, 대검찰청, 목포항, 서울고등검찰청, 서울고등법원, 서울대법원, 울주군 반구대, 오대산 월정사, 영월 선돌, 목포항, 강원도 도계버스터미널, 정선 귤암리, 광덕리, 낙동리, 유평리, 아우라지역, 남면, 구미정, 구절리역, 신안 우이도 모래언덕, 대관령 자연휴양림, 강릉 동해 1호 터널, 거제시 다대마을, 포항 내연산, 보경사 12폭포, 칠포항, 구계리, 경주 계림, 장성 축령산휴양림, 영덕 동해비치관광호텔, 담양 메타세콰이어길, 소쇄원

 

사진·김지훈, 최창환, 하지웅

·김지훈

 
CEONEWS는 국제 의료 NGO ‘한국머시쉽‘의 활동을 응원합니다.
저작권자 © 씨이오뉴스-CEONEWS-시이오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