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영화 『곡성』

영화를 말하다

영화 ‘곡성’은 2016년 5월 12일 개봉된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다. 곽도원, 황정민, 천우희, 일본 배우 쿠니무라 준이 주연을 맡았으며 영화 ‘추격자’ ‘황해’를 연출한 나홍진 감독이 6년 만에 메가폰을 잡았다. 어느 시골의 작은 마을에서 벌어진 기이한 사건들과 거기에 휘말린 딸을 지키려 애쓰는 한 남자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범인을 쫓고 사건을 해결하는 전형적인 스릴러 수사물 또는 끔찍한 공포물이라기보다 악마나 저주, 귀신 따위를 다룬 엑소시스트류 오컬트물이다. 개봉 전부터 대중들에게 가장 친숙한 이동진 평론가가 평점 만점을 부여하였으며 시나리오가 돌 때부터 영화인들의 깊은 관심을 받았다.

박찬욱, 김지운, 최동훈, 류승완 등 1차 편집본을 본 임필성 감독은 무서워서 잠을 못 잤다고 하고, 봉준호 감독은 급체했다고 한다. 감독들이 말하기를 2016년은 곡성의 해가 될 거라고 말할 정도였다. 각종 영화제의 시상내용만 보더라도 이 영화가 얼마나 뜨거웠는지 알 수 있다.         

선택

자연스럽게 시간은 흐르고 매년 새로운 여름이 찾아온다. 이번 여름은 유난히 습하고 따분했다. 기록적인 장마로 매일 음침한 분위기 속에서 생활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코로나 19의 영향으로 몸과 마음이 위축되었고 경제 상황까지 좋지 못하면서 사람들은 각자의 집으로 숨어들기 바빴다. 사회 전반적으로 의심과 불신이라는 감정으로 뒤덮힌 거 같았다. 출근길 동승한 사람 그리고 직장동료들까지 민감한 상황이 펼쳐지는 불안한 하루를 보내는 우리며 마스크로 그 감정을 숨기는 거 같다.

‘곡성’은 지금 이 시기와 잘 어울리는 영화라 생각한다. 축축하고 찝찝한 느낌이 끊이지 않고 영화 속에서도 인간이 내재한 끊임없는 의심에 대해서 말한다. 무엇보다 덥고 습한 여름에는 이런 분위기의 영화가 최고이다. “9월이면 가을이다.”라는 말도 이젠 옛말이 되었다. 날씨는 무덥고 섬뜩하고 혐오스러운 장면들에 오싹함을 느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영화 곡성의 촬영 현장. 사진=김지훈
영화 곡성의 촬영 현장. 사진=김지훈

스크린 속 현실 속

영화 ‘곡성’은 제목과 동명의 지역인 전라남도 곡성군에서 대부분 촬영했다. 대놓고 촬영지를 노출하면서 나처럼 감사한 사람이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사람도 존재한다. 내용이 내용인지라 곡성군 주민들은 불편했다고 한다. 제작진도 이를 의식한 모양인지 포스터 옆에 ‘哭聲’이라는 한자를 추가했다.

哭聲은 '곡하는 소리'를 의미한다. 그리고 영화가 전적으로 허구라는 자막이 엔딩 크레딧에 나오는데 곡성군의 요청이라고 한다. 이미지를 고려한 행동들이겠지만 영화로 인해서 곡성군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홍보 효과를 누렸다. 말도 탈도 많았던 그곳으로 떠나보자.

영화를 감상하는 동안 가장 궁금했던 장소는 외지인의 집이었다. 세트라고 생각했던 곳은 실제로 존재했다. 산속 폐가를 재정비해서 만들었으며 산들을 뒤지다 몇 가구 안 사는 산속 마을에서 폐가를 발견했다고 한다. 곧 밀어버리기로 예정돼 있던 곳이라 조금만 늦었어도 촬영이 불가했던 이곳은 곡성군 석곡면 연반리에 위치한다. 경사 가파른 길을 한참 올라야 만날 수 있는 곳으로 주변 대나무 숲이 인상적인 곳이다.

처음 외지인의 집에 들어섰을 때 오래 머물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신속하게 구석구석 촬영했고 집을 벗어나 산 쪽과 대나무 숲길을 걸었는데 이유 모를 압박감에 시달렸다. 영화 속에서처럼 누가 계속 지켜보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촬영 당시 자문해준 무속인도 유달리 음험한 기운이 느껴진다고 말했다고 한다.

연반리를 나와 고갯길로 향한다. 극 중 곽도원이 지인들과 함께 외지인을 추격하는 장면이 있다. 그들에게 쫓기다가 비가 억수같이 내리는 날 외지인은 트럭에 치여서 정신을 잃게 된다. 그들의 광기 어린 모습이 잊히지 않는데 촬영지는 곡성군 오곡면 구성리에 위치한 진둔치다. 실제로 비가 많이 내리는 날에 촬영했다고 한다.

연속으로 찍지 못하고 조건이 맞는 날 3회차 정도로 나눠 찍었는데 그동안 계절이 가을에서 겨울로 바뀌었다고 한다. 곡성 시내에서 남쪽에 위치한 산길이기 때문에 접근성이 좋지는 않다. 다만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올라가면 경치가 뛰어나며 시내로 통하는 길이기 때문에 한번은 가볼 만하다.

영화 곡성에 등장하는 곡성 읍내파출소.  사진=김지훈<br>
영화 곡성에 등장하는 곡성 읍내파출소. 사진=김지훈

진둔치에서 이어진 길을 따라 곡성 읍내로 진입하면 곳곳이 영화 촬영지가 된다. 극 중 곽도원이 경찰 동료와 함께 정전된 경찰서 안에서 무서운 이야기를 나누다가 천둥 치는 순간 여자가 입구에 서 있는 모습을 보고 기겁하며 소리를 지르는 장면이 있다. 으스스하면서도 코믹하게 그려진 장면인데 주인공의 직업이 경찰이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었던 촬영지 중 한 군데다. 곡성 읍내파출소다.

곡성군 곡성읍 중앙로 84-1에 위치하며 아기자기한 건물과 벽화가 눈길을 사로잡는 곳이다. 건너편에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는데 근무자와 한참 눈이 마주쳤다. 사진기를 들고 찍어대는 풍경이 익숙하다 못해 지겹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 눈으로 건너편의 이방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불편하게 만든 것은 아닐까 마음이 불편해질 때 미소를 띄우며 그는 자리를 떴다.

영화 곡성의 촬영지. 사진=김지훈
영화 곡성의 촬영지. 사진=김지훈

영화는 토속신앙은 물론 종교적인 부분도 꽤 노출된다. 영화를 본 사람들은 엔딩 장면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악마에게 영혼을 뺏기듯 사진을 찍히는 공포에 질린 사제의 모습 때문이다. 그 사제와 주인공의 첫 만남이 이루어졌던 장소로 새벽종을 치는 모습이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장소다. 곡성군 곡성읍 읍내11길 20에 위치한 천주교 곡성성당을 둘러봤다. 빨간 벽돌로 지어진 규모가 꽤 큰 성당이었다. 이곳은 흥행에 성공한 영화의 촬영지보다 정해박해 진원지로 더 이름이 알려진 곳이다.

 

영화 곡성의 촬영지. 사진=김지훈

일출인지 일몰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한 남자가 강가에서 낚시를 즐기는 모습을 담아내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그 풍경은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웠는데 실제로도 동산 낚시터라 불리며 강태공들을 기다리는 장소다.

곡성군 곡성읍 동산리 81-2에 위치하며 동산리 마을 정자에서 데크길을 따라 걷다 보면 반가운 영화 촬영지 푯말 하나가 보일 것이다. 우거진 대나무 숲을 따라 강가로 내려가면 비로소 영화 속 장면과 마주한다. 시원한 물길이 펼쳐지고 바위 위로 외지인이 앉아 있을 거 같다. 이 지역은 물살이 빠르고 수심이 깊어 안전에 유의하는 것이 좋다. 

영화 대부분은 곡성군에서 찍었으나 주인공의 집에서 굿하는 장면은 함양군 병곡면 도천마을에서 찍었다고 한다. 재미있는 점은 이 집은 원래 목사의 집이라고 한다. 그리고 영화가 시작되고 1시간 16분 만에 등장하는 또 다른 주인공 황정민이 차를 몰고 구불구불한 산길을 달리는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굿 리듬에 웅장한 음악과 함께 펼쳐지는 풍경은 관객을 압도하기 충분했다.

진안군 부귀면에 위치한 모래재에서 촬영됐으며 일광이라는 캐릭터를 반영해서 뱀이 움직이듯 구불구불한 느낌의 도로를 찾았다고 한다. 산들이 겹겹이 둘러싸고 있는 형국이라 폐쇄적인 분위기도 자아냈다. 모래재는 아름다운 도로 때문에 사진 촬영지로도 유명한데 사계절 분위기가 다른 메타세콰이어길이 인상적이다.

영화 곡성의 촬영지. 사진=김지훈

외지인이 일본 전통 속옷을 입고 폭포 아래서 수행하는 장면을 주목하며 보았다. 익숙했고 아름다웠기 때문인데 촬영이 이뤄졌던 곳은 철원의 3대 폭포로 자주 여행자들의 입방아에 오르는 매월대 폭포였다. 직탕 폭포, 삼부연 폭포와 함께 철원을 대표하는 아름다운 폭포로 유명하다. 영화의 주촬영지였던 남부지방에선 수심과 스케일 등 원하는 조건을 갖춘 폭포를 찾을 수 없어 철원까지 갔다고 한다.

높고 험한 지대에 있어서 촬영에 어려움이 많았던 장면인데 모든 장비를 지고 올라야 했던 스텝들의 땀이 서려 있는 곳이다. 영화에서처럼 평소에는 수량이 많지 않다가 비가 많이 내리면 전혀 다른 모습을 뽐내며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원시적인 분위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만족할 장소다.

영화 곡성의 촬영지. 사진=김지훈

여행의 시간

영화 ‘곡성’ 임민섭 프로듀서는 리얼티를 추구하기 위해 세트를 짓기보단 로케이션을 직접 찾아다녔다고 한다. 121회차 중 97회차 분량이 로케이션이었던 만큼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녀야 했다. 여행을 다니며 사진으로 남겨놓은 장소도 꽤 되었지만 주촬영지인 곡성은 자료가 부족했다. ‘스크린 속 현실 속’을 기획했을 당시 여름철 기획 기사로 생각해놨던 영화이기 때문에 곡성 인근에 갈 일이 생기면 촬영지를 돌아볼 예정이었다. 10개월 전부터 전국을 돌면서 조금씩 촬영지를 카메라에 담았다.

유독 섬뜩한 장소가 많았던 영화다. 위에서 언급했듯 외지인의 집 그리고 동산 낚시터 인근은 뒷골이 오싹할 정도로 이상한 기운에 시달려야 했다. 대나무 숲길을 내려가다가 누가 발을 걸듯 나뒹굴기도 했다. TV 프로그램이나 지인들에게서 촬영장 괴담을 들을 때 비웃곤 했다. 실제 촬영현장에서 경험하는 그들의 미스터리한 경험들이 사실은 아닌지 진지하게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고생도 많았다. 먼저 촬영지들이 멀었기 때문에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 동안 피로가 많이 쌓였다. 가을과 겨울에는 추위와 싸워야 했고 여름에는 비 때문에 힘들었다. 외지인을 쫓는 추격장면이 촬영된 선운산 정상부근 절벽을 촬영하기 위해서 몇 번을 시도하다가 포기했다. 시간도 부족했을 뿐 아니라 촬영지가 어디인지 알 수 없어 몇 번을 빙빙 돌다가 하산했다. 대학 시절 선운산을 등산하며 찍었던 사진들을 보다가 비슷한 곳을 찍어둔 사진을 보았지만 화질이 형편없어서 쓰지 못했다.

언제나 담고 싶은 욕심은 많은데 변수로 인해서 속상할 때가 종종 있다. 그러나 영화도 여행도 좋아하지 않는다면 이런 기획은 고통만 수반될 것이다. 돌이켜 보면 즐거움 때문에 매번 다니지 않았나 생각하게 된다.         

영화 촬영지를 남긴다

강빛마을, 선운산, 곡성 금정주유소, 만수 건강원, 목사동면 닭재, 산포식당, 원등마을, 주사랑 의원, 죽곡초등학교, 창성당, 장계성당, 청림 문구사, 곡성경찰서, 동산 낚시터, 여운마을, 침곡마을, 드림랜드, 사랑병원, 곡성 읍내파출소, 대흥사, 철원 매월대 폭포, 순천 주암시장, 모래재, 장성 화룡마을, 장수 난평마을, 원흥마을, 원흥사, 함양 도천마을, 화순 동정마을

 

[글/사진 김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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