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영화 『두 번째 스물』

 

영화를 말하다

영화를 설명하기에 앞서 이번 편은 우리나라 영화이지만 배경은 이탈리아인 영화를 선택했다. 코로나 19의 영향으로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이탈리아에 고개를 숙여 간절한 기도와 함께 숙연한 마음으로 글을 시작한다. 영화 두 번째 스물역전의 명수’ ‘경의선의 감독 박흥식이 메가폰을 잡고 배우 김승우, 이태란이 극의 중심을 잡고 중년의 사랑을 표현한다. 2015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 파노라마 상영작으로 대중에 널리 알려진 작품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흔하지 않은 중년의 불륜을 담아낸 영화이다. 영화의 내용은 이렇다. 젊은 날 뜨겁게 사랑했으나 헤어졌던 중년의 남녀가 이탈리아 밀라노행 비행기에서 우연히 재회한다. 남자는 영화감독으로 토리노영화제에 심사위원으로 이탈리아를 방문했고 여자는 안과의사로 학회에 참석하러 가는 길이었다. 재회한 둘은 일주일 정도 카라바조 그림을 둘러보는 여행을 함께한다. 지난날을 돌아보며 너무나 사소한 오해 때문에 둘은 헤어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남자는 아들에게 장애가 있고 여자는 남편이 사고로 죽었지만 서로 감춘다. 시간이 흐른 후 다시 만난 둘은 지금까지 하지 못했던 제대로 된 사랑을 고백하고 각자의 길을 떠난다.

 

 

그날의 기억

해외여행을 떠나기 전에 누구나 계획을 세울 것이다. 무작정 떠나더라도 갈 곳만큼은 정하는 시점이 있다. 그만큼 여행할 나라에 가면 가고 싶은 곳이 존재하기 나름이다. 이탈리아 북부여행을 일행과 다짐하고 떠났을 때 몬테발도와 친퀘테레는 꼭 가고 싶었다. 이후 베니스에 하루 더 묵으면서 몬테발도는 포기해야 했던 뼈아픈 기억도 함께 떠오른다. 영화 두 번째 스물을 의식하고 여행을 떠난 것은 아니다. 일행이 미술에 조예가 깊고 유럽 유명 그림들을 찾아보는 여행을 선호하기 때문에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카라바조의 뒤를 쫓게 된 것이다.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유명화가들의 뒤를 쫓은 것이다. 이왕 가게 되었으니 이탈리아 북부에서 촬영된 영화들을 수집해서 찾아보았고 그중 한편이 이 영화였다. 처음 감상했을 때 감동적이거나 재미있는 영화는 아니었다. 촬영지를 중점적으로 메모하며 얼마 남지 않은 이탈리아로의 여행시간을 기다리며 잠자리에 들었다.

 

 

이탈리아 여행을 다녀온 후 꿈만 같았던 시간이 나의 기억 속에서 흐려질 때다. 그리움에 퇴근 후 침대에 누워 다시 감상하게 되었다. 인물에 집중하며 호기심을 가질 무렵 보면 볼수록 익숙한 공간들이 나를 사로잡았다. 영화 속 두 남녀의 대화와 행동에 집중해야 할 영화이지만 또 배경에 빠져들고 말았다. 반가움이 가장 컸다. 2년 전만 하더라도 저 공간에서 의미부여를 하며 촬영했다. 스크린 속 상기된 배우들의 표정처럼 나 역시 흥분되어 연신 셔터를 누르기 바빴다. 그 자리는 배우 대신 일행이 섰고 그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모델이 되어주었다. 기차에 올라 다음 목적지로 이동할 때 영화 두 번째 스물의 촬영지였다고 말해주었다. 영화 이야기를 해주다가 화가 카라바조가 언급되었고 자연스럽게 그에 대해서 대략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사람을 죽이고 도주하며 그림을 그린 작가. 이 부분이 가장 선명하게 기억된다. 찾아보니 라켓 경기중 카라바조가 상대의 부정행위를 항의하며 결투를 했고 그 과정에서 살인을 저지르게 된 것이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곳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곳은 일행의 여행담을 들었다. 극중 이태란처럼 화가들에 미쳐서 이탈리아 전역을 돌아다닌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함께 여행한 곳은 밀라노, 꼬모, 토리노, 제노아, 베르나차, 피렌체, 몬탈치노, 몬테풀치아노, 시에나, 토스카나, 마지막 여행지인 만토바 등 많은 도시가 등장한다. 한편의 영화로 이탈리아 중북부를 한 바퀴 도는 여행을 간접적으로 떠날 수 있다.

 

스크린 속 현실 속

“40살이면 두 번째 스물이네영화 속에서 딸이 이태란에게 한 말이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인생에서 다시 찾아오는 청춘의 시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도 40살이 가까워지면서 더 늦기 전에 떠난 청춘 여행이었다. 영화 속 인물들처럼 밀라노 공항에 도착했다. 그들은 잠시 밀라노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스크린은 꼬모로 안내하지만 우리는 제노아로 떠났다. 야경을 찾아 떠났고 언덕 위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도시의 전경에 반해서 한참 촬영을 하다가 술이 빠질 수 없어 밤새 이야기를 나누며 늦은 시간까지 술자리를 가졌다. 영화 속에서는 딸과 함께 푸니쿨라레를 타고 꼬모호수를 배경으로 산으로 오르는 장면이 노출된다. 눈을 떠보니 창가에는 해가 수줍게 고개를 내밀고 있었고 서둘러 친퀘테레로 떠났다. 촬영지 중 제노아가 있었다는 것은 당시에는 인지하지 못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대도시를 다 둘러볼 수 없었고 더군다나 촬영지를 물어볼 사람도 이탈리어를 하지도 못했다. 촬영은 밀라노 브레라 지역에서 이루어졌다.

 

 

친퀘테레는 이탈리아 북부 다섯 곳의 아름다운 마을 몬테로소, 베르나차, 코르릴리아, 마나롤라, 리오마조레를 일컬어 부른다. 우리는 모두 들렀고 계획대로라면 몬테로소에 내려야했지만 안내방송에 집중하지 못해서 지났다. 서둘러 짐을 챙겨서 허겁지겁 내린 곳이 베르나차였고 이곳은 기차 안에서 아름다운 광경에 반해서 주인공들이 우발적으로 내렸던 곳이기도 했다. 그들과 우리의 공통점이라면 상기된 말투와 표정일 것이다. 베르나차역을 나와 걸었다. 마음먹고 달리면 15분이면 마을을 돌아볼 수 있을 만큼 작은 어촌마을이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에 있어서는 천릿길을 달리는 동안 적절한 단어와 문장을 찾아내질 못할 거 같았다. 기차 안에서 그렇게 흥분하며 주인공들이 우발적으로 내렸는지 이해가 갔다. 그들이 마을에 진입하기 위해서 걸어 나왔던 역의 풍경과 김승우가 갑자기 걸려온 영상통화를 받았던 방파제의 풍경이 반가웠다. 일행을 모델 삼아 사진찍기 바빴다. 그 아름다움을 알기라도 하듯 갈매기와 옹기종기 모여 앉은 여행자들이 추억을 담아내기 위해서 사진찍기 바빴다. 이후 거슬러 몬테로소행 기차에 올랐다.

피렌체와 시에나 등 중간에 들렀던 곳은 일행에게 들어야 했다. 듣고 또 들었던 시에나에서 먹었던 음식, 피렌체의 아름다움, 토스카 지방의 농장 풍경 등등 궁금하기는 했지만 참았다. 원래 오토바이를 렌트해서 이탈리아 중북부를 크게 돌아볼 예정이었다. 렌트 문제로 계획이 틀어지고는 나의 여행 열정도 많이 식었다. 일행을 따라 다니며 즐겁게 보고 먹는 여행이었다고 할까? 언젠가는 유라시아 횡단을 하며 두 달 정도 이탈리아 전역을 돌아볼 예정이다. 이런 꿈들이 있기에 또 다음을 기약하며 생활하는 것은 아닐지. 피렌체의 베키오 다리가 먼저 영화 속에서 노출되었는데 이도 재미있는 부분이다. 그들의 여정은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왔다는 오류를 남기기 때문이다. 여행이란 그런 것이다. 우리가 거슬러 올라갔듯 사연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파르마를 지나 늦은 밤 만토바에 입성했다. 그들도 밤에 만토바를 걸으며 대화를 나누었기 때문에 저녁 식사를 한 후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야경촬영을 떠났다. 두 남녀는 수로 위 건축물을 배경으로 전등을 따라 걸으며 진지한 표정을 짓는다. 꽤 인상적인 장면이기 때문에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기억하지 않을까? 놀라운 것은 장소가 인상적이라 촬영을 해두었는데 이 장소가 그 장소인지 모르고 다시 영화를 볼 때 눈치를 챘다. “여기가 줄리오 로마노의 로지아라고?” 로지아는 이탈리아 건축에서 복도나 거실로 쓰는 한쪽에 벽이 없는 특수한 방을 말한다. 낮에는 가보지 않았다. 오히려 밤에 갔던 것을 축복으로 여기고 있다. 보일 듯 말 듯 한 상대의 얼굴. 어쩌면 의도된 장소인지도 모르겠다. 영화 속에서 꽤 진지한 대화가 이곳에서 오간 것으로 기억된다. 조용히 벽에 기대어서 홀린 듯 머물렀다. 몽환적인 공간이었다. 꿈을 꾸듯 발걸음을 옮겼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호텔 침대 위였다.

아침 일찍 만토바 호텔에서 눈을 떴다. 박물관 개장시간에 맞춰서 투어에 나선다. 미술에는 지식이 없지만 예술은 좋아하니 함께 리소르지멘토 박물관으로 향했다. 전날 저녁을 먹고 산책을 왔던 곳이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규모가 상당히 큰 곳으로 예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쯤은 들러 보는 것이 좋다. 우리는 박물관과 함께 특별전까지 모두 보기로 한다. 흥미로운 것은 한 곳에 전시물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전시를 보고 밖으로 나와서 다른 건물로 이동한 후 작품을 둘러봐야 하는 구조이다. 매표소 직원이 친절히 이태리어로 설명했지만 우리는 알아듣지 못했다. 바로 옆 다른 박물관으로 들어가 표를 내밀어 퇴짜를 맞은 기억이 떠오른다. 다시 입장 후 예쁜 원형 계단을 타고 올랐다. 천장 그림을 보기 위해서 여기 만토바에 왔다는 일행의 말이 떠오른다. 이해를 할 수 없었으나 영화 촬영지 때문에 만토바를 가자고 했던 나와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멋진 천장화가 그려져 있는 카메라 픽타라 불리는 곳에 도착했다. 쉽게 말해 미술방이라 할 수 있다. 15세기 후반 만토바를 지배했던 곤차가 가문의 힘을 과시하는 방이라 할 수 있다. 이 방은 좋다고 계속 있을 수 없다. 지키는 보안 요원이 있으며 15분 이상 머물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사람이 많은 시간대가 아니라서 우리는 나가기 전에 한 번 더 들러서 이 그림을 보고 나갔다. 천장화를 이야기했던 이유는 영화 속 주인공들도 이 방에 방문했다. 그림이 노출되며 두 배우의 모습과 함께 대화를 이어나간다. 박물관을 빠져나오니 멋진 풍경이 발걸음을 묶어 둔다. 만토바의 낮과 밤을 모두 즐길 수 있어서 좋았다. 그들은 이곳에서 여행을 끝냈지만 우리의 여행은 계속되어 베로나행 기차에 올라야 했다.

 

여행의 시간

스크린 속 현실 속도 절반을 지나 후반부로 달려간다. 그런 만큼 특별하게 꾸며보고 싶었다. “우리나라 영화지만 해외 로케이션이 진행된 영화라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고 사진첩을 뒤졌다. 이탈리아 사진을 보고 한 영화가 떠올랐다. ‘두 번째 스물이탈리아에 간다고 배경이 된 영화들의 자료를 찾다가 흥미로워 보게 되었다. 벌써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기억은 흐리지만 사진과 영화를 다시 보니 선명해졌다. 여행하는 동안 매일 설렜다. 피곤하고 실망을 할 때도 있었지만 다시 찾은 유럽이기에 20대 때의 추억과 사람들을 떠올리며 행복했었다. 일행이 있어서 로케이션이 이루어졌던 영화 속 도시들을 모두 가보지는 않았다. 의식하지 않았던 것도 컸다. 만약 실락원’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남과 여등 중년의 불륜을 담은 비슷한 영화들처럼 작품성이 뛰어났다면 어떻게든 일행을 설득하거나 혼자 갔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만약 어차피 들렸을 여행지라고 가정한다면 아름다운 곳들이라고 감탄은 하겠지만 의미부여를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관광 상품으로 만들어도 꽤 괜찮은 루트고 영화 속 인물들의 이야기 역시 괜찮은 소재가 될 것이다. 액션보다는 멜로가 더 애틋하고 낭만적인 분위기를 풍겨내지 않는가? 여행지에서의 사랑은 누구나 꿈꿀 것이다. 이탈리아 여행에서 영화 속 주인공처럼 애틋한 연인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그들의 발자취를 밟으며 즐거웠다. 여행과 변화를 사랑하는 사람은 생명이 있는 사람이라고 바그너가 말하지 않았나.

 

기자의 여행 노선을 남긴다.

인천국제공항 이스탄불국제공항 밀라노국제공항 제노아 몬테로소 베르나차 코르닐리아 마나롤라 리오마조레 라스페치아 파르마 피아데나 - 만토바 베로나 베니스 -인천국제공항

사진. 김지훈 김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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