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취향은 제각각이고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고 변할 수 있다지만, 어릴 적부터 시작된 취미생활로 인한 독특한 취향은 곧 개성으로 발현되기도 한다. 그리고 영화야말로 어릴 적에 본 단 몇 편의 작품이 평생토록 기억되며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치는 대표적인 취미생활이자 취향이기도 하다. 그리고 어떤 영화를 보았느냐 만큼 중요한 것이 누구와 함께 보았는지의 여부이다. [CEONEWS=장용준 기자]

1952년작 '하이 눈'

‘존 웨인, 게리 쿠퍼, 존 포드, 쌍권총, 포장마차, 보안관, 총잡이, OK목장의 결투’

이 같은 단어들이 머릿속에 떠오르고 장면 하나하나가 추억의 퍼즐로 연상되는 것은 모두가 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무릎 위에 앉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브라운관을 바라보며 서부 영화 혹은 웨스턴 장르라 불리는 할리우드의 신화 속에 파묻혀갔던 탓이리라.

그리고 당시에 수많은 서부극의 영웅들 중에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풍기던 존 웨인 보다도 내 눈을 사로잡았던 것은 당당하면서도 신사적이고 수줍음을 타면서도 정의를 위해 몸을 아끼지 않았던 멋진 남자 '게리 쿠퍼'였다.

그 시절에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게리 쿠퍼’가 ‘게리 쿠퍼’스러울 수 있었던 완성작이 바로 [하이 눈]이라고. 그리곤 기대에 가득 찬 눈으로 보게 된 흑백 화면 속에서 게리 쿠퍼는 영웅적 풍모를 풍기는 모습은 그대로였으되 [요크 상사]나 [우정 어린 설복]과 같은 작품 속에서 보여주던 모습과는 또 다른 모습으로 정의의 사도이되 환영받지 못하는 영웅의 모습으로 등장했다.

그런데 대체 무엇이 이 작품을 게리 쿠퍼답다고 규정하게 했다는 말인가? 정오의 결투 쯤으로 생각하면 딱이었을 [하이 눈]이라는 작품은 여러 면에서 서부극의 전형적인 구조와는 달랐다.

짧은 미국의 역사 속에 무법천지였던 서부개척시대가 신화로 치장되었던 1930~40년대의 서부극들이 쇠퇴하기 시작한 50년대, 낭만과 마초적인 매력을 제거하고 수정된 서부극 속에는 무법자들로부터 마을을 지켜야 하는 직업인으로서의 책무를 다하는 보안관의 모습이 외롭고 쓸쓸하게 그려진 기념비적인 작품이 바로 [하이 눈]이다.

유명 음악가 ‘디미트리 티옴킨’이 만들고 ‘텍스 리터(혹은 프랭키 레인일지도;;;)’가 읊조리는 멋진 테마음악인 [하이 눈의 테마] 혹은 [Do Not Forsake Me, Oh My Darlin]가 배경음악으로 깔리고, 황량하게 비쳐지는 작은 마을에 말을 타고 등장하는 세 명의 총잡이들과 행복하게 치러지는 결혼식이 대비되면서 어딘가 불길함을 몰고 오는 듯한 집시 노파의 표정이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오프닝.

이 영화 속에서 게리 쿠퍼는 5년 전 마을의 무법자들이었던 프랭크 밀러 일당들을 감옥에 보낸 영웅이었으나 결혼식을 치르고 보안관의 책무를 내려놓는 ‘윌 케인’이다.

그런 그에게 프랭크 밀러가 12시 기차를 타고 마을로 돌아온다는 비보가 전해지고 마을의 분위기는 급박하게 돌아간다.

마을 사람들로부터 영웅으로 대접받고 아름다운 퀘이커 교도 여인 에이미(그레이스 켈리)와 행복한 결혼식을 치르며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던 그에게 닥친 단 87분의 위기(러닝타임과 영화 속 시간은 정확히 까지는 아니더라도 거의 일치한다)가 팬들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것은 거창한 총격전이나 화려한 액션, 또는 배신과 암투보다도 더욱 진하게 다가오는 영웅의 비장미와 비극성 때문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서둘러 케인 부부를 마을로부터 떠나보내려 하고, 밀러 일당은 기차역에서 밀러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그 시간. 이 작품이 인상적이었던 또 하나의 요인은 바로 이 부분이다.

관객들은, 밀러 일당이 과거에 많은 악행을 저질러왔다는 사연은 어렴풋이 짐작하게 되지만 사실상 작품 속에서 밀러 일당은 아무런 악행도 저지르지 않는다. 그저 프랭크 밀러가 돌아온다는 메시지를 마을에 남긴 뒤 12시 도착 예정인 기차와 밀러를 기다릴 뿐이다.

정작, 다수의 마을 사람들이 보이는 행태는 불안과 초조, 분열의 군중심리.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는 말처럼 마을 사람들은 내일이면 새로 부임할 보안관과 또 다시 무법자가 활개 칠 마을의 장래에 대해 정면으로 맞서기보다는 조용히 숨죽여 살기를 원한 셈이다.

그리고 그중에 밀러와 케인의 사이에 존재했던 멕시코 여인 헬렌이 있다. 이젠 풋내기 보안관보(로이드 브리지스)와 연애를 즐기지만 그녀는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에도 그랬으며, 미래에도 그렇듯이 선이든 악이든 강자의 연인으로 존재하길 원하는 여인. 아버지와 오빠가 정의를 수호하기 위해 총탄 앞에 쓰러지는 모습에 충격을 받아 퀘이크 교도가 된 에이미와는 또 다른 의미로 헬렌은 마을을 떠나려 한다.

마을 사람들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윌 케인의 죽음을 정면으로 바라볼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마을을 지키기 위해 돌아온 윌 케인은 보안관으로서의 책무를 떠안을 필요도 없었고, 그 누구도 그에게 밀러 일당과 대결하기를 원하는 이도 없었지만, 자신이 지키고자 했던 신념과 책무를 다하기 위해 사랑하는 부인의 청마저 뿌리치고 황량하기 이를 데 없는 마을의 한가운데로 걸어 나간다.

그도 영웅 이전에 나약한 인간이기에 자신이 믿었던 사람들로부터 상처입고 시시각각 흘러가는 시간이 마음을 옥죄지만, 뙤약볕 아래에서 흘러내리는 땀과 함께 멍들고 피 묻은 몸은 망신창이가 되었을망정, 문을 걸어 잠그고 자신을 외면하는 마을 사람들의 비정함을 탓하기보다
자신이 맞서 싸워야 하는 악의 집단에 대한 대결 의지를 불태우는 고독한 영웅으로서의 풍모는 게리 쿠퍼가 아니면 어울리지 않았을 연기이기도 하다.

12시의 종이 울리고 기적소리를 울리며 도착한 기차에 오르는 에이미와 헬렌. 그리고 기차에서 내리는 프랭크 밀러의 모습이 교차하면서 영화는 단 몇 분 사이에 클라이막스에 도달하고 조금은 싱겁게 느껴지는 최후의 결투가 이루어진다.

결국엔 기차에서 내려 케인에게 돌아와 케인을 위해 총을 드는 에이미의 모습과 영웅의 여인으로 남고자 했던 과거의 여인 헬렌의 모습이 교차하는 모습도 상징적으로 다가오고, 처절하게 몸부림쳤던 윌 케인이 밀러 일당을 해치우고 에이미와 감격의 포옹을 나누며 보안관 배지를 내팽개친 채 마을을 떠나는 엔딩은 아직도 강렬하게 추억된다.

영웅의 시대는 가고, 새로운 혼돈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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