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외환경 악화와 내수부진 동반 최악의 한 해

[CEONEWS=이재훈 기자] 2019년 한 해 동안 대한민국 기업들은 우울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미중 무역분쟁 장기화에 일본과의 역사인식 갈등이 수출규제로 이어지는 등 전쟁에 준하는 지정학적 불확실성을 경험하고 수출과 내수가 동반 하락하는 최악의 한 해였다. 

한국경제를 이끄는 반도체는 지난해 '글로벌 슈퍼호황'을 누린 지 1년 만에 연중 불황의 늪에 빠졌다. 석유화학은 중국의 수요감소와 공급과잉 탓에 올해 내내 부진했고,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찾은 배터리 부문은 에너지저장장치(ESS) 화재 악재를 맞았다.

자동차는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의 잇따른 구조조정 칼바람에 외자계 3사가 내우외환에 시달렸다. 다만, 현대·기아차는 중국 일부 공장을 폐쇄하는 아픔 속에서도 신차 효과를 누리며 회복에 시동을 걸었다.

조선업계는 수년간 이어진 불황과 구조조정 끝에 대형 3사 위주로 수주실적이 바닥을 다졌다.

항공업계는 일본 불매운동의 여파로 저비용항공사(LCC)들이 줄줄이 적자를 냈으며, 오프라인 유통채널들은 소비 부진에 온라인쇼핑과 경쟁 격화 등에 따른 위기가 이어졌다.

반도체, '수퍼호황' 1년 만에 추락…"전대미문의 불확실성"

시가총액 1, 2위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로 구성된 '반도체코리아'는 2017년부터 시작된 글로벌 슈퍼호황에 지난해 최고의 한 해를 보냈지만, 불황을 맞은 올해는 한국경제 전체를 끌어내리는 데 앞장섰다.

한국은행이 17일 발표한 3분기 기업경영분석 자료를 보면 국내 기업의 영업이익률은 4.8%로 지난해 3분기(7.6%)보다 2.8%포인트 떨어졌다.

특히 제조업 영업이익률은 4.5%로 작년 동기(9.7%)에서 반토막이 났다. 이런 수익성 악화에는 반도체 경기 침체 영향이 가장 컸다.

코스피 상장 기업 579개사가 올해 들어 3분기까지 거둬들인 영업이익은 82조2천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8.8% 급감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이 기간 영업이익이 각각 57.1%, 84.9% 급감했다. 이들 2개사를 제외한 코스피 상장사의 영업이익 감소율은 15.2%로 집계돼 '반도체 코리아'의 부진이 전체 실적 악화를 주도했음을 보여줬다.

지난해 12월부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력 제품인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반도체 가격이 내려가면서 이들 기업의 실적은 물론, 수출 실적도 부진에 빠뜨렸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11월 수출은 작년 동월 대비 14.3% 감소해, 12개월 연속 마이너스 행진을 이어갔다. 반도체 수출액은 지난달에도 30.8% 급감했다.

이로써 올해 수출은 2016년(-5.9%) 이후 3년 만에 역성장이 확실시된다.

삼성전자는 3분기 반도체 사업에서 영업이익이 3조500억원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2분기 3조4천억원으로 11분기 만에 처음으로 4조원대 아래로 떨어진 이후 추가로 하락한 것이다.

SK하이닉스도 3분기 영업이익이 4천726억원에 그쳐 13분기 만에 처음으로 5천억원을 밑돌았다. 올해 전체 영업이익은 작년의 7분의 1 수준인 3조원 안팎에 그칠 것으로 전망됐다.

이에 삼성과 SK의 총수들은 대내외적 불확실성이 증폭된 상황을 우려하며 대응 전략을 잇달아 주문했다.

SK 최태원 회장은 9월 미국 워싱턴DC에서 특파원들과 만나 "제가 SK 회장을 한 지도 한 20년 되는데 20년 동안에 이런 종류의 지정학적 위기라는 건 처음 맞는 것 같다"며 대응법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일본의 수출규제 강화 당시 현장경영 행보에서 '위기론'을 내놓으며 '컨틴전시 플랜'을 마련하라고 주문했다.

다만, 삼성전자의 반도체 매출은 17조5천900억원으로 전분기 대비 9% 늘어나면서 메모리 반도체 업황이 바닥을 통과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전문가들은 내년에는 5G 이동통신 보급 확대에 따라 메모리가 반도체 시장 회복을 주도할 것으로 보고 있다.

디스플레이업계 역시 중국업체들의 '저가 공세'에 밀려 상시 구조조정 체제에 들어가는 등 우울한 1년을 보냈다.

LG디스플레이[034220]는 올해 들어 3분기까지 누적 영업손실이 1조원에 육박하는 9천375억원을 기록했다. 적자 규모는 지난해 같은 기간(1천864억원)의 5배가 넘었다.

 

현대·기아차 회복 시동…외자계 3사는 내우외환

자동차업계에선 현대·기아차가 신차가 좋은 반응을 얻은 데다가 환율 뒷바람까지 받아 모처럼 실적이 회복세를 보였다.

북미에선 팰리세이드, 텔루라이드 등 스포츠유틸리티차(SUV)가 유럽에선 코나 전기차 등 친환경차가 판매 증가세를 이끌었다. 국내에서도 K7 프리미어 등이 인기몰이를 했다.

현대차는 올해 들어 3분기 누적으로는 판매 322만9천669대, 매출액 77조9천223억원, 영업이익 2조4천411억원의 실적을 기록했다.

기아차는 같은 기간 판매 204만3천780대, 매출액 42조410억원, 영업이익 14조190억원을 냈다.

글로벌 수요 감소로 판매는 주춤했지만, 판매단가가 높은 SUV와 친환경차 비중이 높아지며 매출액과 이익은 증가했다. 작년 동기보다 영업이익이 현대차는 27.0%, 기아차는 83.0% 증가했다.

다만, 세타2 엔진과 관련해 3분기에 현대차와 기아차에서 각각 6천억원과 3천억원이 품질비용으로 깎였다. 중국 시장에선 부진이 지속해 '장기전'이 되는 분위기다.

한국지엠(GM), 르노삼성차, 쌍용차는 사세가 크게 위축됐다. 한국GM과 르노삼성차는 노사갈등에 따른 생산 차질도 벌어졌다.

올해 들어 11월까지 국내외 판매가 작년 동기보다 한국GM은 10.0%, 쌍용차는 6.2%, 르노삼성차는 23.3% 감소했다.

한국GM은 차세대 크로스오버유틸리티 차량(CUV) 생산이 시작될 때까지 '보릿고개'이고 르노삼성차는 수출용 닛산 로그 생산 물량이 빠지며 일감이 비었다.

생산량이 줄어 인력을 재배치하려는 사측과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노측간 갈등은 첨예해지고 있다.

 

석유화학, 불황에 ESS 악재까지…항공·유통도 '위기의 1년'

석유화학업계는 유가와 정제마진 하락, 수요 감소 등 총체적 요인으로 작년보다 떨어진 성적표를 받았다.

SK이노베이션의 3분기 영업이익은 작년 동기 대비 60% 급감한 3천301억원에 그쳤다.

LG화학 역시 3분기 영업이익이 3천803억원으로 작년 동기보다 37% 줄었다. 석유화학부문의 수요 부진으로 영업이익이 감소했고, 배터리 부문에서도 ESS 화재 논란에 국내서 매출을 거의 올리지 못하는 등 3분기 누적 영업손실은 약 2천억원을 기록했다.

삼성SDI는 ESS 화재 여파에 원통형전지 시장 둔화에 따라 3분기 영업이익이 작년 동기 대비 31% 감소했다.

항공사들은 일본 불매 운동으로 일본 여행이 급감하면서 연중 최대 성수기인 3분기에도 실적이 악화했다.

대한항공은 3분기 영업이익이 작년 동기 대비 70% 급감했다. 국내 LCC 맏형 격인 제주항공은 올해 2분기에 적자로 전환한 데 이어 3분기에도 영업손실을 기록했고 아시아나항공 계열의 LCC 에어부산은 2분기에 첫 적자를 내고 3분기에도 영업손실 195억원을 기록했다.

오프라인 유통채널의 위기로 대형 마트들은 실적 악화에 시달렸다. 롯데쇼핑의 올해 들어 3분기까지 연결 영업이익은 24% 줄었다. 이는 롯데마트의 영업이익이 3분기에 61% 급감한 영향이 컸다.

이마트는 2분기에 영업손실 299억원을 내면서 신세계로부터 법인을 분리한 2011년 이후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했고, 3분기에 흑자는 냈지만 규모는 40% 줄었다.

 

불황 속 빛을 찾는 조선업계

글로벌 해운·조선 분석업체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한국 조선업은 올해 들어 11월까지 누적 수주량과 수주액이 712만CGT(표준화물선환산톤수)(168척, 36%)와 164억달러로 세계 1위다.

누적 수주량에선 2개월째, 수주액에선 4개월째 한국이 중국에 앞섰다.

한국은 올해 들어 수주량에서 고부가가치인 액화천연가스(LNG)운반선 비중이 38%로 높다.

조선업계는 2016년께와 비교하면 사정이 나아지긴 했지만, 올해 목표달성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9월 말 기준으로 세계 발주량이 40% 이상 줄어든 탓이다.

대우조선해양은 이달까지 중순까지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10척, 초대형 원유 운반선 10척, 초대형 컨테이너선 5척, 잠수함 5척, 해양플랜트 1기 등 약 59억5천만달러(약 6조9천823억원) 상당의 사업을 수주해 올해 목표(83억7천만달러)의 71%를 달성했다.

삼성중공업은 그나마 목표에 근접했다. 이달 초까지 71억 달러를 수주해 올해 목표 78억 달러의 91%를 달성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실적(63억달러)을 넘어섰다.

현대중공업그룹 조선3사(현대중공업, 현대미포, 현대삼호)는 11월 말 기준 수주 목표 159억달러 중 58%인 92억달러를 달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조선업체들이 저가수주분을 많이 정리했기 때문에 내년부터는 실적 개선을 기대해볼 만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중소기업들의 피해는 더욱 심각

지속된 경기악화로 국내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기업들의 피해가 커지고 있다.

특히 지난해에 이어 올해 영업이익이 크게 감소하면서 전체적인 성장세를 보인 대기업과의 격차가 더욱 벌어진 상황이다.

지난 12월 16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8년 기준 영리법인 기업체 행정통계 잠정 결과’에 따르면 전체 영업이익이 지난해와 비교했을 때 2.1%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소기업의 경우 매출액이 1.8% 증가한 것에 그친데 반해 영업이익의 경우 작년보다 14.2%나 하락하면서 불황의 직격탄을 맞았다. 중견기업 역시 매출액은 소폭 증가했으나 영업이익이 1.5% 감소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기업규모별 평균치에서도 기업별 격차가 더욱 뚜렷해졌다. 지난해 대기업 매출액은 기업당 평균 1조347억원으로 중소기업(26억원) 대비 396배에 달했다. 영업이익면에서도 대기업은 평균 815억원으로 증가세를 이어갔지만, 중소기업은 평균 1억원에도 못 미치면서 차이가 더 벌어졌다.

이는 지난해 주요 제조업 구조조정과 건설업 경기 부진, 원자재 가격 상승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제조업의 경우 매출액이 전년 대비 4.8% 감소했으며, 숙박음식업과 운수업도 각각 6.8%, 5.9% 주는 등 전반적인 불황이 이어졌다.

영업이익 하락세는 산업군별로 큰 편차가 나타났지만, 마이너스 성장이 여전한 상황이다.

전기가스업은 전년 대비 무려 55.8%나 순익이 감소했고 부동산업과 운수업도 각각 22.9%, 14.9% 영업이익이 줄었다.

이 같은 경기불황이 장기화되면서 부실 중소기업수도 증가하고 있다.

지난달 12일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부실징후기업 현황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경우 평가 대상 기업수가 지난해 2321곳 보다 16.67% 증가한 2708곳으로 집계됐다.

부실징후기업수도 올해 387곳으로, 지난해 180곳 대비 16.67%가 늘었다.

업종별로는 ‘기계장비’ 분야가 35곳으로 가장 많았고, 그 뒤로 ‘부동산’ 19곳, ‘자동차부품’ 17곳, ‘금속가공’ 17곳, ‘도매·상품중개’ 14곳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특히 지난 2015년 대비 ‘C등급’을 받은 중소기업 수가 70곳에서 56곳으로 줄었지만, D등급을 받은 기업 수는 올해 145곳으로 대폭 늘었다.

업종별로는 전반적인 업황 부진 등으로 기계 및 장비제조업 가운데 부실징후기업이 지난해 20개에서 올해 35개로 큰 폭으로 늘었다. 이어 부동산, 자동차부품, 건설 및 전자 등의 순으로 부실징후기업이 소폭 증가했다.

 

돌파구 필요한 2020 한국 경제

본지는 지난해 11~12월호에서 저성장 시대와 D의 공포, 점점 더 짙어지는 한국 경제의 빨간 신호를 다뤘다. 이는 곧 어느 하나 떼어놓을 수 없는 연장선상이다. 글로벌 경기둔화로 인해 직격탄을 맞은 해당기업들의 투자가 위축되고, 소비자들의 지갑이 닫히고, 장기불황으로 이어지는 지금의 상황을 타개할 돌파구가 필요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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