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도 패자도 없는 진흙탕 현실

[CEONEWS=이재훈 기자] 서울 재개발 사업지 중 노른자위라 불리는 한남3구역을 둘러싼 빅3 건설사간의 과열경쟁이 결국 정부의 개입과 제재로 소강 상태에 빠졌다. 예정대로 연내에 시공사 선정을 강행하려던 재개발조합도 내년 5월 이후로 연기할 뜻을 내비친 상황이다. 총 공사비 1조8000억원을 웃돌고 총 사업비는 7조원 규모인 서울 용산구 한남3구역 재개발사업은 왜 이렇게 암초에 부딪히게 되었을까. 

또 시공사 선정과 관련해 현대건설이 재개발조합을 상대로 낸 입찰 무효 등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이 기각됐다는 소식에 서울 은평구 ’갈현1구역 재개발사업‘이 화제에 올랐다. 

갈현1구역 재개발사업은 갈현1구역 재개발은 총공사비 9200억원에 4116가구를 짓는 대형 정비사업이다. 이를 둘러싼 건설사간 수주경쟁, 현대건설과 조합의 대립 등도 문제지만 조합원들간에도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시공사 선정을 놓고 입찰 자격을 박탈당한 현대건설을 옹호하는 조합원과 이를 반대하며 롯데건설을 지지하는 조합원으로 나뉘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실마리를 어디서 풀어야 할지 모를 혼돈 양상이다.

이번호에는 서울 재개발 사업과 관련해 논란이 끊이지 않는 이유와 그 전개 양상을 분석하는 기획을 준비했다.

 

한남3구역 재개발, 빅3 건설사 사활을 건 격전지

9월 이전, 시공사 선정 문제로 시끌시끌

한남3구역 재개발조합이 본격적으로 시공사 선정에 나선 건 2019년 9월 2일부터다. 하지만 국내 재개발사업 사상 최대 규모라는 타이틀로 인해 대형 건설업체들은 훨씬 이전부터 수주전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한 지역 주민은 “시공사 입찰 공고가 나기 전부터 홍보요원인지 뭔지가 수백 명씩 몰려와서 북새통이었다”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실제로 현대건설, GS건설, 대림산업, 대우건설 등 대형 건설업체들이 한남3구역에 투입한 홍보인원만 300~400명에 이르렀다는 후문이다. 또 조합원을 대상으로 기존 시공 단지 투어를 하거나 식사를 제공하는 등 홍보활동도 적극적이었다. 

업계 관계자는 “이런 상황을 자초한 게 조합 탓도 크다”며, “한남3구역 수주전에 컨소시엄 허용 여부를 두고 조합이 공식적인 발표를 차일피일 미루는 바람에 건설사간 경쟁이 혼탁을 넘어 위법으로 치달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는 조합이 여러 업체가 공구를 나눠 시공하는 컨소시엄 방식 허용 여부를 입찰 공고문에 명시하지 않으면서 생긴 문제다. 한 조합원은 “건설사들이 경쟁을 피하기 위해 컨소시엄 구성을 통해 담합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를 반대하는 이유로 “컨소시엄 단지의 품질이 단일 시공 단지의 품질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게 일반적인 만큼 컨소시엄 구성을 허용할 수 없다”는 게 대다수 조합원의 생각이라는 것이다. 

조합도 당시 이런 분위기를 반영해서 컨소시엄 불허 쪽으로 가닥을 잡는 분위기였다. 

10월, 입찰제안서 마감 후 빅 3 건설사의 전쟁

10월 18일 입찰제안서가 마감되고 상황은 더욱 과열양상으로 치달았다. 
국내 최대 규모 재개발 사업이자 강북 최고 입지인 한남3구역에 자사 브랜드 깃발을 꽂으려는 현대건설, 대림산업, GS건설 등 빅 3 건설사가 본격적으로 나선 것이다.

현대건설은 현대백화점과 함께 단지 내에 현대백화점 계열사 브랜드 상가를 입점시키겠다는 계획을 내세웠다. 더불어 교육특화시설을 조성해 메가스터디, 종로엠스쿨 등 강남 대치동의 유명 학원들을 유치하겠다고 제안했다. 가구당 5억원의 최저 이주비를 보장하고, 추가 이주비도 지원하겠다고 명시했다.

대림산업은 이주비 100% 보장과 함께 임대아파트가 전혀 없는 아파트를 공급하겠다고 제안했다. 건립이 의무화된 임대주택을 통째로 매입해 민간임대주택으로 일정 기간 활용한 뒤 분양전환(소유권 이전)하겠다는 안이다. 특화설계로 한강조망권 가구 수를 조합 안인 1038가구에서 2566가구로 늘리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마지막으로 GS건설은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되지 않을 경우 일반분양 가격을 3.3㎡당 7200만원으로 보장해주겠다고 제안했다. 이는 주택도시보증공사가 강남권 일반분양 가격을 3.3㎡당 5000만원 이하로 억제하고 있는 것과 차이가 있다. 또 미분양이 발생할 경우에는 100% 대물 인수하겠다는 약속까지 했다. 반면 조합원 분양가격은 절반 수준인 3.3㎡당 3500만원 이하로 보장하기까지 했다. 더불어 상가 조합원을 위해 상업시설 분양가를 주변 시세의 110%를 약속했다. 이주비 담보인정비율(LTV) 90% 보장, 조합원 전원 한강조망·테라스·펜트하우스 보장 등의 조건도 내걸었다.

11월, 국토부와 서울시의 특별 점검

이렇게 빅3 건설사들이 과열 양상을 띄자 수주전이 국토부와 서울시가 나섰다. 건설사가 조합에 낸 입찰제안서에 불법 요소가 없는지 특별 점검을 결정한 것이다. 먼저 국토부는 GS건설이 제시한 ‘일반분양가 3.3㎡당 7200만원 보장’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을 위반한 행위라고 지적했다. 당시 국토부 관계자는 “분양가 보장처럼 조합원 분담금에 영향을 미치는 내용은 재산상 이익을 약속한 행위로 도정법 위반”이라고 말했다.

또 혁신설계안, ‘임대주택 제로’ 같은 내용도 건설사가 보장할 수 없는 제안이다. 당초 조합 설계안을 업그레이드한 혁신설계안은 서울시 심의 통과를 장담할 수 없는데다 인허가 변경 절차에만 1년 안팎의 시간이 걸린다는 현실을 무시한 것이다. 

이렇게 국토부가 나서서 빅3 건설사의 입찰제안서를 검토하자 재개발사업에 급제동이 걸렸다. 11월 26일 국토부와 서울시는 한남3구역 재개발사업에 대한 현장점검 결과를 발표했다. 정비사업 입찰에 참여한 3개 건설사의 법 위반 사례가 포착됐다.

12월, 컨소시엄 불가 선언한 조합, 상처만 남은 빅3 건설사

국토부와 서울시는 한남3구역 재개발사업과 관련해 건설사들의 제안내용 20여건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 132조의 '재산상 이익 제공 의사를 표시하거나 제공을 약속하는 행위'로 판단했다. 또 문제가 된 것은 건설사가 제시한 사업비와 이주비 무이자 지원은 직접적인 재산상 이익 제공이라는 점. 분양가 보장, 임대주택 제로 등 시공과 무관한 제안들이 재산상 이익을 간접적으로 제공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또 혁신설계안이 발목을 잡았다. 이 역시 서울시의 '공공지원 시공자 선정기준' 위반이라고 밝혔다. 

이 조사가 건설사들에게 타격을 준 건 정부가 입찰무효가 될 수 있는 사유에 대해 시정조치가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리고 관련 내용을 해당 구청과 한남3구역 조합에 통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일각에서는 시정조치가 권고사항이라 조합에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시공사 선정을 강행할 가능성도 있다고 봤다. 당장 조합측은 지난 11월 28일 1차 시공사 합동설명회를 강행했다. 

하지만 당시 문제는 이 경우 서울시가 향후 인허가 과정에서 허가를 내 줄 리가 없다는 점이었다. 특히 경찰 수사가 진행되면 입찰 참가 건설사들에게 제재가 가해질 것으로 전망했다.

한남3구역 재개발 사업 조합은 다음날인 11월 27일 오전 10시 긴급 이사회를 열었다. 이사회는 ”12명의 이사가 참여한 가운데 국토교통부와 서울특별시가 지적한 위반사항을 심각하게 받아들여 진행됐다“고 밝혔다. 이들은 '재입찰'과 '위반사항 제외 수정 진행' 등 두 가지 방안에 대해 논의했고 문제가 된 위반사항을 제외한 뒤 재개발사업을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12월 11일, 서울 용산구 한남3구역 재개발조합은 향후 시공사 재입찰공고문에 '컨소시엄(공동도급) 불가' 조항을 추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대형건설사의 단독 입찰로 컨소시엄 문제는 해결했다고 해도, 남아있는 현대건설, 대림건설, GS건설은 상처만 늘었다. 한남3구역 재개발조합은 12월 15일 예정됐던 시공사 선정 총회도 취소했다. 조합은 이른 시일 내에 대의원회를 열고 재입찰 공고 등 안건을 확정할 계획이다. 정비업계는 조합이 재입찰에 나서면서 시공사 선정은 빨라야 총선이 끝나는 2020년 5월 이후에나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갈현1구역 재개발사업, 15년 묵은 저주가 현대건설에게도...

2019년 12월 13일 시공사 선정과 관련해 현대건설이 재개발조합을 상대로 낸 입찰 무효 등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이 기각됐다는 소식에 서울 은평구 ’갈현1구역 재개발사업‘이 또 다시 화제에 오르고 있다. 

갈현1구역 재개발사업은 갈현1구역 재개발은 총공사비 9200억원에 4116가구를 짓는 대형 정비사업이다. 이를 둘러싼 건설사간 수주경쟁, 현대건설과 조합의 대립 등도 문제지만 조합원들간에도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시공사 선정을 놓고 입찰 자격을 박탈당한 현대건설을 옹호하는 조합원과 이를 반대하며 롯데건설을 지지하는 조합원으로 나뉘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실마리를 어디서 풀어야 할지 모를 혼돈 양상이다.

이 사업은 2005년 삼성물산과 GS건설이 시공사로 선정된 적이 있다. 하지만 법적 지위를 확보하지 못해 사업이 추진되지 못했다. 그러다 지난 10월 현대건설이 수주하는 듯 했으나 조합이 현대건설의 입찰 자격을 박탈하고 현대건설이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까지 내면서 사업은 동력을 잃어버렸다.

10월, 혼돈의 서막

이렇게 사업이 표류하게 된 과정을 종합해 보면, 지난 10월 11일 현대건설과 롯데건설이 입찰에 참가했다. 하지만 조합은 입찰 4일 후 현대건설의 도면 누락, 담보 초과 이주비 제안 등의 내용을 이유로 입찰무효를 추진하는 긴급 대의원회를 소집했다. 

10월 26일 열린 긴급 대의원회에서 현대건설 입찰 무효, 현대건설 입찰보증금 몰수, 현대건설 입찰 참가 제한, 시공사 선정 입찰공고 재공고 등 4개 안건을 모두 통과시켰다. 조합은 현대건설이 입찰 서류에서 건축도면 중 변경도면을 누락하고 담보를 초과하는 이주비를 제안하는 등 ‘중대한 흠결’을 초래했다고 주장했다. 문제 있는 입찰제안으로 조합 사업일정에 차질을 야기했다며 입찰 제한에 더해 1,000억원의 입찰보증금까지 몰수하겠다는 강경한 자세를 보인 것이다.

조합측은 입찰제안서를 마감한 후 현대건설의 입찰제안서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관할 지자체인 은평구청에 민원을 넣었다는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당시 은평구청은 입찰 박탈의 이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회신했다.

하지만 조합 집행부는 “대의원회에서 가결한대로 현대건설의 설계도면 상이 및 누락, 담보를 초과한 이주비 등 중대 흠결이 있었기 때문에 현대건설의 입찰 무효화 및 입찰보증금 몰수, 차후 입찰참가 제한을 공식화하고 시공사 선정을 재공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현대건설 측은 이같은 조합의 결정에 난색을 표했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설계도면 누락과 관련해 “입찰지침서에 조합 원안을 포함하라는 내용이 없어 특화설계 도면만 제출했다”며 “조합은 단 한번도 사실관계 확인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또 “담보를 초과한 이주비(최저 이주비)는 정부 고시에도 보장돼 있는 내용이라는 것이 당사의 입장이며, 국토부 고시 제2018-101호를 보면 재개발사업에 대해서는 추가이주비를 제안할 수 있고 최고한도가 정해져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대의원회의 결정에 반발한 조합원들도 조합에 소집결의서를 제출한 대의원 명단 정보공개 요청을 진행하는가 하면 ‘갈현1구역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를 구성, 조합을 상대로 비판의 수위를 높였다. 

지난 10월 30일 갈현1구역 재개발 조합 내부 소식통에 따르면, 대의원 4명이 조합에 사표를 제출했다. 이들은 지난 26일 열린 대의원회에서 현대건설 입찰 무효를 비롯한 4개 안건이 통과된 것에 대해 강한 불만을 표한 것으로 전해졌다.

갈현1구역 비대위 관계자는 “조합 임원들이 이미 시공사 입찰 전부터 경쟁 건설사를 갈현1구역 시공사로 내정해 놓은 상황이라는 의심이 든다”며, “조합원들의 표심이 입찰조건이 더 나았던 현대건설에 기우는 중이었는데, 입찰이 정상적으로 마감된 지 사흘 만에 조합이 일방적으로 입찰무효 결정을 내린 건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11월, 새로운 건설사들의 참전

11월에 접어들어 분위기는 또 다시 전환됐다. 11월 13일 GS건설, 현대엔지니어링, 롯데건설이 입찰 자격을 획득하며 3파전으로 확대된 것이다. 이들은 입찰보증금 1000억원 중 5억원을 납부했다. 당시 조합은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에 따르면 일반경쟁입찰에서 1개 업체만 단독 응찰할 경우 시공사 입찰을 다시 해야 하는 까닭에 이번에 현장 설명회를 다시 열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건설업계에서는 현대엔지니어링이 현대건설을 대신해 참여한 것 아니냐는 추측도 나왔다. 범현대 계열인데다 힐스테이트 브랜드를 공유하고 있기에 현대엔지니어링이 수주만 한다면 결국 현대건설의 가처분 신청도 번복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었다. 

또 GS건설 역시 뒤늦게 수주전에 뛰어들었다. 당시 GS건설 관계자는 “오랫동안 이 사업장에 관심을 뒀지만 한남3구역 수주전에 전력투구하기 위해 입찰을 포기했던 것”이라며 “갈현1구역 입찰 마감이 한남3구역 시공사 선정 이후로 늦춰졌기에 예비 입찰 성격의 현장 설명회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12월, 현대건설 효력정지 가처분 기각...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재개발사업

지난 12월 12일 서울서부지방법원 제21민사부가 현대건설이 갈현1구역 재개발 조합을 상대로 ‘입찰무효, 입찰보증금 몰수, 입찰 참가자격 제한 조치’ 등의 조치가 부당하다며 제기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법원은 판결문에서 “입찰참여 안내서 제5조 입찰에 특정한 하자가 있는 경우 대의원회의 의결로 해당 입찰을 무효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고, 위 규정을 위반한 경우 채무자의 결정에 이의없이 결정에 따르겠다는 이행각서를 제출하기도 한 점을 종합해 채권자의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밝혔다.

이어 “무효 사유가 있는 입찰을 적시에 배제함으로써 추후 발생할 수 있는 분쟁을 예고하고자 한 대의원회의 판단은 존중될 필요가 있다”며 “가처분 신청이 인용되는 경우 사업의 지연 등으로 인해 채무자가 입게 될 손해가 상당할 것으로 보이고, 결국 조합원들에게 전가될 우려가 있다”고 판시했다.

현대건설이 갈현1구역 재입찰에 참여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문제는 조합에 낸 입찰 보증금 1000억원에 대한 몰수 조치까지 따로 소송을 진행하고 있기에 이중고에 처해 있다는 점이다.

도시정비사업에서 건설사 간 과당 경쟁이 일어나는 건 결국 막대한 이익 때문이다. 하지만 과당 경쟁에 따른 비용은 결국 조합원과 일반 분양가에 포함되기 마련이다. 관계자들 간 첨예한 대립 양상을 보이고 있는 한남3구역과 갈현1구역 재개발사업이 예정대로 입찰을 마감할 수 있을지 지켜볼 시간이다.

CEONEWS는 국제 의료 NGO ‘한국머시쉽‘의 활동을 응원합니다.
저작권자 © 씨이오뉴스-CEONEWS-시이오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