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김지훈 기자의 ‘스크린 속 현실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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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김지훈 기자의 ‘스크린 속 현실 속
  • 김지훈 기자
  • 승인 2019.11.28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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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영화 『만추』
사진=김지훈 기자
사진=김지훈 기자

영화를 말하다

‘만추’는 1966년 故이만희 감독의 작품이다. 신성일, 문정숙이 주연을 맡았으며 휴가를 나온 여죄수와 쫓기는 위조지폐범이 나누는 3일간의 애틋한 사랑을 담고 있다. 섬세한 묘사와 수려한 영상미는 관객을 사로잡았으며 베를린영화제에 출품되었다. 불행하게도 지금은 원본이 유실되어 볼 수 없다. 
      
1972년 일본 사이토 고이치 감독의 ‘약속’이 처음으로 리메이크되었으며 1975년 남녀의 욕정에 초점을 맞춘 김기영 감독의 ‘육체의 약속’이 큰 인기를 끌었다. 6년 뒤 김수용 감독은 동명 ‘만추’로 리메이크하였는데 당시 김혜자는 40세의 나이로 열연을 펼쳐 마닐라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영화뿐만 아니라 드라마로도 제작되었는데 김수용 감독의 ‘만추’와 비슷한 설정으로 TV문학관에서 방영되기도 했다. 이후 긴 세월이 흘러 2011년 김태용 감독은 한국인과 중국인 그리고 시애틀이라는 캐릭터, 배경에 큰 변화를 주며 ‘만추’를 재탄생시키기도 했다.

오늘 소개할 영화는 1981년 정동환, 김혜자가 열연한 ‘만추’이다. 원본이 유실되어 보지 못한 천재 감독 이만희 작품을 제외하면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계절 역시 지금과 잘 어울린다. 가을의 흔적은 남아 있지만 날카로운 바람이 불어오는 지금과 영화적 배경이 닮아있다. 겨울을 맞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김지훈
사진=김지훈

리와인드

학창시절 영화에 미쳐있었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영화를 보거나 관련 서적을 찾아 읽느라 출석하지 않은 날도 많았다. 한국영상자료원 직원의 권유로 김수용 감독의 ‘만추’를 보게 되었다. 대화의 시작은 이만희 감독의 ‘만추’였고 “필름이 없는 것이 말이 되냐?”라고 푸념하며 안타까워하는 그의 모습이 강하게 머릿속에 박혔다. “그 정도로 뛰어난 작품인가?” 청년이 품은 의문은 영화를 본 후 감탄으로 바뀌었고 이후 모든 리메이크 작품을 찾아보기도 했다. 훌륭한 감독들이 리메이크하다 보니 하나같이 애간장을 녹이며 가을이 찾아오면 한 작품씩 골라보게 된다. 

시간이 흘러 군 말년 휴가를 나왔을 때 이 영화를 다시 보게 되었다. 극진히 환영하던 이등병 때와 달리 가족, 친구 모두가 소원해졌고 밖에 나가는 것도 귀찮아 휴가 기간 내내 영화를 보았다. ‘만추’가 남기는 여운은 이전보다 더 강했다. 전에는 느끼지 못한 감정들은 응축되다 결국 터졌다. 수렁에 빠진 두 남녀가 제한된 사랑을 한다는 것이 그렇게 안타까울 수가 없었다.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곧 부대로 복귀하는 나의 상황을 그들에게 이입했던 것은 아닐까?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군대로 복귀하는 남자와 여죄수의 이야기. 

사진=김지훈
사진=김지훈

스크린 속 현실 속

두 남녀의 비극적인 사랑을 찾아 강원도로 떠났다. 대지가 가을옷을 제법 예쁘게 차려입은 날이었다. ‘만추’의 촬영지는 명확해서 좋았다. 스크린 속에서 지명이 노출되는 부분도 있었고 여행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디인지 금방 알 수 있는 장소들이 영화적 배경이 된다. 영화는 동대구역 일대에서 시작되어 영주역을 거쳐 강릉역에 당도한다. 이 과정은 모두 생략했다. ‘만추’에서 기차라는 배경은 매우 중요하다. 남녀가 처음으로 만나 감정의 미묘함을 키워가고 결국 애정이 폭발하는 중요한 공간이다. 하지만 역만 한 장씩 찍고 오기에는 너무 긴 여행이 될 거 같았다. 재미있게도 2011년작 ‘만추’에서는 이전과 달리 버스라는 배경을 설정했다. 그렇다면 영화 속에서 버스를 타고 내린 이후 정동환과 김혜자의 발자취를 따라가기로 했다.      

강릉에서 버스에 오른 그들이 하차한 곳은 속초의 한적한 어촌마을이다. 속초로 오토바이를 타고 떠났다. 가는 길 단풍에 심취해 이곳저곳에 들러 사진을 찍다 보니 해질녘 숙소가 있는 설악산국립공원에 도착했다. 극심한 피로감에 취재는 힘들었다. 맥주 한 캔에 곯아떨어졌고 눈을 뜨니 이른 아침이었다. 서둘러 짐을 챙겨서 설악파크호텔로 향했다. 계곡 물소리를 따라 설악산 소공원으로 향했고 가는 길 지금은 폐쇄되어 예전의 명성을 잃은 호텔이 쓸쓸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입구가 봉쇄되어 들어갈 수 없었고 멀리서 사진만 남겨야 했다. 영화 속에서 그들이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눈 장소이다. 두 시간이면 돌아올 수 있다던 남자를 하염없이 기다리다가 여자는 떠난다. 노골적으로 설악파크호텔 간판을 노출 시키며 호텔을 배경으로 설악산 권금성과 화채봉 능선을 담아낸다. 설악산국립공원에 왔는데 발걸음을 돌리기가 힘들었다. 절정의 가을 단풍의 유혹은 토왕성폭포 전망대까지 등산하게 했다. 

사진=김지훈
사진=김지훈

숙소로 돌아와 장비를 챙겨서 떠난 곳은 청초호 인근 부두였다. 아직도 갯배가 오가는 이색적인 풍경을 담기 위해서다. 속초행 버스에서 내린 그들은 걷기 시작하고 일방적으로 말을 건네는 남자를 귀찮듯 뒤로한 채 여자는 갯배 위로 발걸음을 옮긴다. 지금도 사람들을 태우고 오간다. 당시에는 교통 역할을 담당했지만 현재는 관광용으로 오간다는 말이 정확할 것이다. 주머니에서 500원을 꺼내 그들처럼 갯배에 오른다. 느림의 미학은 이런 것이 아닐까? 갯배에서 내려 그들이 걷던 어판장부두를 걷는다. 지금도 출항해 물고기를 잡는 어부들이 종종 눈에 띈다. 1980년 초 당시 마을처럼 나무로 지어진 상가와 기와집들은 모두 사라지고 잘 정비되어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사진=김지훈
사진=김지훈

다음 행선지는 동명항, 영금정, 속초 등대이다. 갯배에서 바라보는 장면과 극 중 김혜자 어머니의 묘소장면이 촬영된 곳이다. 동명항은 잘 정비되어 유지되고 있었으며 저 멀리 대형 여객선이 정박하고 있어서 항구의 위상을 뽐내는 거 같았다. 영금정 역시 깔끔한 모습으로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평일 오후지만 많은 방문객은 분주하게 사진 촬영하며 각자의 추억을 쌓아갔다. 속초 등대로 자리를 옮겼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회의와 가족에 대한 죄책감에 오열하던 김혜자의 모습이 그려졌다. 바위 언덕에 억새가 많아 바람이 불면 휘날리던 당시와 달리 지금은 속초등대전망대로 이름을 변경하며 시야를 트기 위해서 잘 정비해놨다. 건물이 많이 세워지면서 황량함보다는 도심의 일부분으로 느껴진다. 주말이면 속초를 여행하는 사람들의 단골 관광코스가 된다. 묘소를 찾아 올라가는 장면에서 보이던 해변과 기와가옥이 인상적인 어촌마을은 지금 어떨까? 등대 해변이라 불리는 이곳은 주택과 상가들이 빼곡히 들어서며 관광지로 활성화되었다. 해변 모래는 많이 줄었고 방파제와 축대가 함께 늘어서 인공적인 삭막함을 자아낸다. 

사진=김지훈
사진=김지훈

스크린 속에서 호수를 등지며 명확하게 보이던 설악산을 담기 위해서 마지막 경유지 청초호를 찾았다. 바다와 호수를 오가는 어부들의 배가 카메라 뷰파인더에 쉴 틈 없이 들어오고 나갔다. 아쉽게도 미세먼지 때문에 영화처럼 명확하게 설악산을 담을 수는 없었지만 수줍게 드러낸 웅장한 산봉우리는 속초 시내를 억누르듯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예전의 황량함은 사라지고 호수공원이 들어서 속초 시민들의 쉼터가 되었다. 부두에서는 물고기를 가득실은 배가 정박하여 집화장으로 옮기기 위해서 분주하게 인부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영화 속과 꼭 닮은 장면도 연출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진=김지훈
사진=김지훈

여행의 시간

1박 2일 동안 영화 속 주인공이 되어보았다. 이동하며 단풍이 절정인 곳과 이미 져버린 장소를 오가며 극명하게 분위기가 달랐던 강원도의 절경에 감탄 또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정동환과 김혜자가 절정의 단풍 숲길을 걷는 장면과 출소 후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오지 못하는 남자를 기다리는 김혜자의 모습이 담긴 엔딩 장소를 찾기 위해서 혈안이었다. 사진을 들고 속초 시민과 상인들에게 수소문하기도 했다. 설악산국립공원, 영랑호, 청초호의 옛 모습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오토바이를 타고 비슷한 장소를 찾아다녔지만 확실하지 않아서 글을 쓰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현실 속 장면 역시 눈부시게 아름다웠기 때문에 이는 지금도 미련으로 남는다. 

기자의 여행 노선을 남긴다.

홍천 수타사 – 홍천강 발원지 미약골 – 칡소폭포 – 홍천 은행나무숲 – 설악산국립공원 – 국제모텔 – 설악파크호텔 – 육담폭포 – 비룡폭포 – 토왕성폭포전망대 – 갯배 선착장 – 동명항 – 영금정 – 속초등대전망대 – 청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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